여자 인생에서 평생 잊을 수 없는 순간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내가 임신 7개월 때. 그때도 명절이었을까?
착한 며느리 인척 했는 나는 남편과 함께 시댁에 전화를 드렸다. 정말 명절날마다 전화할 때마다 얼마나 심장이 쿵쾅 거리던지...
시아버지와 관계는 단 한 번도 좋은 적은 없었지만
그날도 역시나 했던 날이었다.
나는 그때 당시 아들을 임신했었고, 그 시댁의 첫 손주였다.
시아버지는 그날, 나에게 태어날 아기 이름을 지어주신다고 하셨다. 만약 내가 시아버지와 그전부터 좋은 관계였고, 그분이 내가 존경할 만큼 아님 적어도 나에게 그동안 예의를 지키면서 날 대했던 사람이었더라면 나는 정말 흔쾌히 부탁을 드렸을 것 같다.
하지만, 나는 매번 안하무인에 함부로 막말하는 그에게
내 소중한 아이의 이름을 지어달라고 하고 싶지 않았다.
왜냐, 내가 평생 부를 이름이고 내가 가장 많이 부를 이름이니깐.
나는 말씀드렸다
| 며느리 :
"죄송하지만 아버님, 저희가 생각한 이름이 있어서 그걸로 하고 싶습니다."
시아버지는
| 시아버지 :
"그럼 너희가 정한 이름 리스트를 보내보아라. 내가 그 안에서 정하겠다"라고 하셨고
| 며느리 : "그러시면 저희가 정한 이름 리스트를 아버님 어머님 그리고 저희 친정 부모님께 보내서 양가가 만족하는 이름으로 정할게요."라고 말씀드렸다.
내 아이는 우리 부모님에게도 첫 손주이기에 나는 당연히 그래야 된다고 생각했다.
시아버지는 본인이 한발 물렀는데 자기 뜻처럼 되지 않은 며느리의 모습에 1차 화가 나셨던 것 같다.
두 번째는 아이가 태어나는 달이 9월이었는데 갑자기 일방적인 통보로 1월에 아이를 보러 오시겠다는 말씀을 하시는 거였다. 나의 스케줄과 남편의 스케줄은 전혀 고려하지 않으신 채로.
그때 당시 나는 조교로 일 하고 있었는데
1월에 오신다고 했던 날짜는 겨울 방학이 끝나고 학기가 시작되는 그쯤이었다.
첫 시부모 방문인데 나는 일을 해야 되는 상황이고, 아이도 있고 나는 많은 고민을 하였다.
첫 번째 걸림돌은, 그의 성격이 보통이 아닌데, 지금도 한국에 전화하면 저렇게 함부로 해서
내 마음을 힘들게 하는데, 내가 그가 왔을 때 과연 감안하고 지낼 수 있을까?
애 앞에서 저 사람과 안 싸우려나?라는 생각이었고
두 번째는, 내가 조교일도 해야 되고 갓난아기도 봐야 되는데 내가 며느리로서 그들의 식사를 차릴 수 있으며, 과연 며느리 노릇을 할 수 있을까? 그땐 학기 중이라 어디 다 같이 여행 가기도 어려운데
그들은 그걸 많이 바랄 텐데
정말 많은 생각들이 들었고 정말 많은 고민 끝에 정중하게 말씀드렸다.
| 며느리 :
아버님, 정말 죄송해요. 아기 보러 오시고 싶으신 마음은 너무 잘 알겠어요. 하지만 저랑 남편이 그때는 학기 중이고 너무 바쁜 시기라..
멀리까지 오시면, 제가 며느리로서 더 잘해드리고 싶은 마음이 큰데, 그 시기에는 제가 신경을 많이 못써드릴
것 같아요. 혹시 저희가 여름 방학하는 시기에 오셔서 저희랑 같이 여행도 하시고, 함께 지내시면서 아이도 보시고 하는 건 어떠실까요? 제가 방학에는 여유가 있으니 더 잘 모실 수 있을 것 같아요.라고 말씀을 드렸더니
자기가 가겠다고 맘먹었는데 못 오게 한다고 앞뒤 다 자르고 그 부분에 2차 화가 나셨다.
시아버지는 갑자기 남편한테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면서 또 흥분 버튼을 켜시더니
나를 대상으로 욕을 (1818) 하시며, 쌍욕을 하시고
| 시아버지 :
"두 번 다시 너희한테 가는 일 없어!! 인연 끊어!!" 하고
"또" 본인 할 말만 하고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으셨다.
정말 나로서는 이해가 전혀 안 되는 상황이었다.
뭐 시댁 식구들과 남편의 말을 인용하자면, 나에게 직접적으로 욕을 하진 않았다고 주장하던데
(그럼 간접적으로 하는 건 괜찮은 건가?)
임신 7개월 만삭 임산부를 향해 욕을 하다니.
그동안 참고 있던 화가 (임신에서 더 그랬을 수도..) 올라왔다. 나는 시아버지께 연락을 드렸다. 너무 화가 나서 그가 전화를 받으실 때까지 했다.
그리고 전화를 받으셨을 때 말씀드렸다.
| 며느리 :
"그렇게 인연 끊자 인연 끊자 매번 말씀하시는데, 끊으세요. 당장. 그리고 임신한 저한테 욕하신 거예요?"
아버님은 아이 보실 필요도 없으실 것 같네요. 저도 아이 보여드릴 생각 이제는 전혀 없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한 번 더 저에게 그리고 제 가정에 이렇게 함부로 하시고 소리 지르시는 일 한 번 더 생기면, 전 더 이상 좌시하고 있지는 않겠습니다"
라고 말을 전달하고 나도 내 할 말만 하고 전화 끊었다.
정말 남들은 10개월 마음 편하게 이쁨 받으면서 임신 출산한다던데 나는 뭐지? 이런 생각이 들면서 그때처럼 서러웠던 적도, 그때처럼 화났던 적도 없었던 것 같다.
그때 생각을 하면 내 아이에게 뱃속에 있을 때 좋은 감정, 좋은 상황들을 못 해준 거에 많이 미안하다.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화가 난다.
그의 무례함의 끝은 여기서 끝나진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이건 빙산의 일각이구나 싶다.
아마 한국에 있었음 난 그의 많은 무례함을 더 많이 마주 했어야 했을 것 같다. 그런 걸 받아들이지 못하는 내 성격은 그 와 더 많은 트러블이 있었을 것 같다.
한편으로 외국에서 살고 있는 상황이 나를 구해주고 있는 상황인 것만 같았다.
내 남편은, 할 말 다 하는 와이프와 화만 내고 있는 그 시아버지 사이에서 중간에서 갈피를 못 잡고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한 달 뒤,
시어머니와 남편의 통화에서 나는 아주 소름 돋는 사건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