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휴대폰은 삼성 갤럭시다. 통화 중 녹음은 아주 고마운 기능이다. 내가 자주 쓰는 앱은 ‘클로버노트’다. 녹취 파일을 올리면 자동으로 문자로 변환시켜 주는 기특한 앱이다.
방송작가는 대본만 쓰는 줄 알았더니 취재까지 하다니... 방송작가는 못하는 게 없고, 안 하는 게 없다. 당연히 수시로 전화해서 취재하고 녹취를 딴다. 취재 없이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은 드물다. 야외 촬영 프로그램은 현지 사정을 취재해서 촬영 구성안을 써줘야 하고, 토크쇼는 출연자들과 인터뷰를 해서 질문을 효과적으로 배치한다. 하물며 드라마 작가들도 엄청나게 취재를 한다. 취재를 잘해야 최소한의 어긋남을 줄일 수 있다.
취재는 대개 막내 작가의 몫이다. 막내 작가들이 1차 취재한 것을 살펴본 뒤 부족한 부분을 선배 작가들이 채워 넣는 경우가 많다. 굵직한 시사 프로그램이나 다큐멘터리는 아예 취재 작가가 별도로 있다. 제작 여건이 되고 제작 시간이 충분하면 직접 취재 현장을 가겠지만, 나처럼 매일 프로그램을 하는 제작팀에겐 현장 취재는 엄두를 못 낸다. 대신 전화 통화나 메일이 그 역할을 한다. 그런데 이렇게 접촉하는 건 두 번째 문제다. 제일 먼저 닥치는 건 취재원의 연락처 알아내기다. 그나마 유명인사들은 인맥을 동원해 알아낼 수 있지만, 대부분은 백지상태에서 시작한다. 당연히 구글링은 기본이고, 연락처를 알아내기 위해선 경쟁사의 작가나 기자에게 물어보는 것도 주저하지 않는다. 겨우겨우 얻어낸 연락처로 전화를 돌렸는데, 계속해서 나의 전화를 거부하면 힘이 쫙 빠진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전화하고, 문자 남기고 별별 짓을 다한다. 제일 상대하기 힘든 직군 중 하나는 경찰이다. “안녕하세요, 저는 000 프로그램 작가입니다.” 이 말이 끝나자마자 전화선 너머 경찰은 가해자 정보나 사건에 대한 확인을 요청하면 개인정보보호법상 불가능하다며 딱 선을 긋는다. 기분이 나쁜 건 피디나 기자라고 하면 응대라도 해주는데, 작가라고 하면 아예 말도 못 붙이게 하는 경찰들이 많다. 아니, 작가는 왜 안 되는데라고 따져 묻고 싶지만 부탁하는 처지라 끝까지 공손하게 대한다.
취재를 허락해 주면 일단 녹음부터 한다. 나의 기억력을 신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받아 적는 것도 한계가 있다. 예전엔 전화기에 녹취기를 달아 썼지만 스마트폰이 생긴 후 그런 수고는 덜었다. 취재를 할 때 가장 중요한 건 취재원과의 신뢰를 쌓는 일이다. 직접 얼굴을 대면하지 않고 전화로 그걸 쌓는 건 쉽지 않다. 일단 통화할 때 일단 많이 듣는 편이다. 방송에서 2,3분 정도 녹취를 쓰기 위해선 30분 넘게 통화한다. 더군다나 제보 같은 경우는 일반인이 많기 때문에 다른 길로 새지 않도록 귀를 단단히 잡고 있어야 한다. 가끔 통화하고 나면 진이 다 빠져서 넋을 놓기도 한다.
취재의 기본은 우리가 학교 때부터 배워온 육하원칙에서 시작된다. 여기서 가지치기를 어떻게 치느냐에 따라서 취재를 잘하느냐, 못하느냐가 달렸다. 작은 단어, 무심한 문장 하나에서 시작된 가지에서 시작했는데 나중에 보니 잎이 수북하게 달린 경우도 종종 있다. 물론 그런 일은 어쩌다 한 번이다.
취재하면 사람들은 대부분 기자를 떠올린다.그러나 기자만큼, 아니 기자 이상으로 작가들도 취재를 많이 하고, 잘한다. 현장에 나갈 여력은 안되지만, 그래도 ‘방구석 취재’만큼은 분명 방송작가가 최고라고 자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