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님, 유병언 사체 찾았대요. 뉴스 특보 해야 하니까 이따 새벽 4시까지 나와요.”
“지금이 몇 시인데... ” “아, 일단 나와요. 그런데 이 시간까지 안 자고 뭐 해요?”
새벽 한 시에 전화해서 섭외하는 작가와 그 시간에 작가 전화받아주고 새벽 4시에 나온 양 모 변호사의 협업으로 뉴스 특보는 무사히 나갔다.
작가들이 원고를 쓰는 것만큼 힘든 것, 섭외다. 아직도 내가 하기 싫은 일 중 하나, 섭외다.
“아휴 참~ 선생님 아니면 누가 이 문제에 대해 얘기하겠어요?”
“제가 질문지도 방송 전에 다 보내 드리니까 편하게 오시면 된답니다. 하하하”
“진심으로 감사해요~. 제가 이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호호호”
평소 목소리보다 톤이 하나, 아니 두 옥타브 정도 올라간다.
싹싹하고, 사근사근하고... 내가 이렇게 말 잘하는 사람이었던가?
웃음소리는 또 얼마나 다정한 지... 내가 이렇게 잘 웃는 사람이었던가?
전화를 끊고 나서 나 스스로에 대해 놀란다. 목이 아파 물을 연거푸 들이켜지만, 그래도 섭외가 됐으니 만세다.
“작가님 목소리, 참 좋네요.”
“목소리가 좋으니 어떤 분인지 궁금해지네요.”
전화선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에 반했다며 상대방이 계속 만나고 싶어 하더라. 그런데 만난 후 직접 얼굴을 본 다음 상대방이 시큰둥하더라. 그 후로 누가 얼굴 보자고 해도 끝끝내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다.. 방송 작가들 대부분이 갖고 있는 경험담이다. 목소리를 떠나서 뒷자리가 익숙해서 인지, 얼굴을 드러내는 건 어색하고, 앞에 나서는 건 불편하다. 작가는 전화기 선 너머에만 있는 사람이다.
“이번에 안 되면 다음에라도 출연 부탁 드릴게요.”
“그 방송국은 참 예의가 없네요. 국장도 아니고 어떻게 (감히) 작가가 섭외 전화를 합니까?”
거절을 당하면 속이 쓰리다. 그나마 예의 바르게 거절을 하면 좀 낫다. 상대방이 대놓고 무시하고, 거칠게 말을 뱉고, 예의 없이 전화를 툭 끊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작가가 전화했다고 노발대발하는 사람들도 있다. ‘급 낮은’ 작가 주제에 자기한테 전화를 했다는 거다. 어쨌든 거절을 당해도 작가는 절대로 화를 내지 않는다. 공손함을 갖추고 다시 전화를 건다. 그래도 받지 않으면 이모티콘 듬뿍 담은 문자를 보낸다. 운이 안 좋은 날은 하루에 수십 번의 전화를 했지만 끝끝내 안 된다. 섭외가 안 되면 내 탓인 것 같아 자책하고 또 자책한다. 방송하는 사람끼리 하는 말이 있다. “그래도 방송은 나간다.” 섭외가 안 되면서 위기에 닥치지만, 결국은 어떻게든 섭외가 되니 기이한 노릇이다.
“아, 이 사람 별로야. 다른 사람 없어? 유명한 000 있잖아, 그런 사람 좀 해봐.”
“아니, 모 프로그램 작가는 단박에 섭외했다는데, 우리 작가들은 왜 못 해?”
“000, 내가 키웠잖아. 너희들이 못하니까 내가 직접 해보지.”
어렵게 섭외됐다고 보고하는데 이런 말을 툭툭 뱉는 윗사람들 혹은 피디들이 있다. ‘그럼 너님이 한번 해보라고요.’ 이 말이 튀어나오기 직전이다. 모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은 적재적소의 섭외를 참 잘한다. 전화번호 하나 찾기도 힘든 인물까지 척척 해낸다. 알고 보니 그 팀은 섭외 전담 피디들만 다섯 명이나 된단다. 전에는 섭외할 때 힘들면 피디나 작가들 모두 달라붙어하곤 했다. 그런데 언제부터 섭외는 다 작가의 몫이 됐다. 많은 사람들의 전화번호는 작가의 재산이다. 예전에는 두툼한 명함첩이나 출연자 연락처만 써 놓은 수첩은 필수였다. 가끔 선배 작가들이 은퇴하며 넘겨주는 수첩은 최고의 선물이었다.
“공문 보내주시면 검토해 보고 연락드릴게요.”
“질문지 오늘까지 꼭 보내주세요.”
공공기관이나 대기업을 통해 섭외 전화를 하면 절차가 좀 복잡해진다. 대부분 공문을 원하기 때문이다. 허둥지둥 회사 이쪽저쪽을 왔다 갔다 하며 공문을 작성해 보냈는데, 퇴짜를 놓기도 한다. 대개 국회의원이나 정치인들은 질문지를 요구한다. 부랴부랴 질문지 보냈는데, 막상 당사자들은 질문지를 무시하고 하고 싶은 말만 하고 간다. 권위나 허세에 찬 사람들일수록 요구 사항이 많다. 방송 출연할 때도 달고 오는 식구들도 많다. 대기실이 좁다고 그렇게 말했는데...
섭외의 기술.. 사실 ‘없다’. 그냥 전화하고 또 전화하는 것뿐이다. 굳이 덧붙이자면, 끝까지 전화기를 놓지 않는 집요함, 끝까지 싹싹한 목소리를 유지하며 통화를 마무리하는 평정심, 오늘 안 돼도 내일 다시 도전하는 용기.. 이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