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궁금한 것이 없어 나에 대해, 너는 말이야
그녀가 말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랬다. 그녀가 좋아하는 담배가 무엇인지 그녀가 즐겨 입는 신발에 브랜드에 대해서는 묻고 또 물었지만 그녀가 어디에서 태어났는지 또 어떤 환경에서 자라 왔는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물어본 적이 없었다. 사실 그녀도 그런 점에 있어 질문하지 않았기에 나도 자연스럽게 자연스러운 행동으로 이어진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변명이 하고 싶었다.
궁금하지 않은 게 아니고 아직 안 물어본 게 아닐까?
매일 똑같은 걸 묻는 것도 이젠 물리지 않나 싶어서.
마지막 그녀의 질문 같지만 물음으로 끝나지 않은 말이 일종의 퀴즈를 내는 것 같았다. 생각해 보니 여자들은 모두 그랬다. 직진해서 이야기를 건네는 것이 아닌 항상 유인구를 던지곤 한다. 그럴 때는 누군가를 함정에 빠트려 난처하게 만들거나 애매모호한 상황을 만드는 자체를 즐기는 듯했다. 세상에 만나보지 못한 여성들이 많음에도 나의 세상엔, 적어도 내가 만난 여성들은 그랬다. 어쨌든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사실 그것은 나 자신 때문이라고 얘기하고 싶었다. 내가 가진 나만의 세계에서 쉽게 빠져나올 수가 없어 물어보는데 애를 먹고 이내 그만두는 경우가 많았다고. 나는 이 마음속의 말들을 역시나 입 밖으로 꺼내기 어려웠다. 어떤 이유에선지는 모르지만.
그냥. 뭐 자연스럽게 알아가게 되지 않을까. 싶어.
그녀는 골똘히 무언가 생각하는 듯했다. 혹 아무 생각 없이 담배의 향과 맛을 음미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오묘하고 도착지 없는 대화와는 다르게 싸구려 매트리스에 누워 두 뼘 정도 되는 작은 창으로 보인 파랑 하늘은 깊게 맑았다. 여름하늘은 언제나 깊이 맑다고 느낀다. 또 다른 파란색의 한축인 바다와는 다른 깊은 색을 자아낸다. 동해바다에 가면 보이는 바다는 어두운 깊음이 있다. 그곳에 무엇이 존재하는지 상상할 수 있는. 그러나 그 상상은 언제나 공포스럽고 부자연스럽고 조직되지 않은 구현되지 않은 이상한 생각으로 도달한다. 그러나 여름의 하늘이 보여주는 맑은 깊음은 언제나 설렘을 만들어냈다. 그래서 오묘한 대화 속, 시선이 닿는 대로 보이는 여름하늘이 있었기에 미지의 대화에서도 자연스럽게 누워있을 수 있었다. 불편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녀가 몇 분이고 특별한 대답 없이 그리고 담배 한 개비를 천천히 그리고 아름답게 음미하는 것을 보고 별생각 없겠거니 하며 벌떡 일어나 냉장고로 향했다. 며칠 전에 넣어둔 칼스버그 맥주가 먹고 싶어졌다.
맥주 먹을래? 하고 그녀에게 물었다.
...
그녀는 여전히 담배를 음미하고 있다. 그렇다고 나는 규정했다. 답이 없었기에 사실을 알 수는 없었다. 그 순간 나는 그녀의 모습에서 파아란 깊음이 보았다. 그러나 결이 달랐다. 하늘에 보이는 아련하고 맑은 깊음이 아닌 동해에서 볼 수 있는 어두운 깊음. 모든 것이 빨려 들어가 빠져나오지 못할 그런 깊음이 보였다. 그런 파란이 보였다. 너무 파래서 그 내면에 무엇이 존재하는가 볼 수 없는 그런 어두움. 깊은 파란색. 그래서 내가 묻는 질문에 대답을 하지 않음에도 나는 자연스레 손과 행동을 거두고 냉장고 두 번째 칸에 놓인 칼스버그 한 캔을 꺼내 들어 기분이라도 상쾌하게 하고자 캔을 땄다. 캔 맥주가 따지는 소리는 언제나 청아하다. 청아한 소리와 함께 그녀의 어두운 파란색도 조금은 쾌청하게 느껴지길 바라며 시원하게 보관되었던 맥주를 들이켰다. 맥주 캔을 따던 청아한 소리만큼이나 너무나도 시원했다. 그래서 잠시나마 그녀의 어둡고 푸르른 존재를 곁에 두고도 숨을 쉴 수 있었다. 잠시 잠수부가 생각이 났다. 무언가를 찾아 헤매는 잠수부. 찾아야 하는 무언가는 깊은 물속에 사람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 의뢰받아 물건을 찾는 잠수부도 있다. 어쨌든 어떤 유형이든 잠수부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다. 안산에 대학교를 다녔다. 그리고 해군 UDT SEAL에 하사관으로 복무했던 친구가 있다. 그는 잠수부다. 안산은 내가 대학교를 다니던 두 번째 해, 깊은 참사를 겪었다. 그 참사 속에 수많은 잠수부가 있었다. 그런 잠수부인 친구가 얘기해 준 것이다.
그곳에 잠수하는 것은 자살행위야. 서해라 물의 결도 매우 좋지 않고 개흙 때문에 시야도 좋지 않아. 잠수하고 손을 눈앞으로 가져다 놓아야 손이 보일까 말까 하는 정도로 시야가 좋지 않아. 부대에 잠수 명령이 왔어. 나랑 동기들은 해내야만 한다는 무의식아래 잠수했는데. 정말 끔찍했어. 그래서 나는 더 잠수를 하지 못하겠다고 생각했어. 죽을까 봐. 그런 와중에 대 선배가 잠수도중 익사하셨지 뭐야. 난 아직도 그때 잠수를 생각하면 죽음이 먼저 떠오르곤 해.
나는 그의 잠수에 대해 한마디도 꺼내지 못했다. 그날 그해 안산이 겪은 참사를 몸과 정신으로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잠수부친구의 얘기는 내 마음 깊숙한 곳에 도달되었다. 참사와 잠수. 무언가와 직결되는 연결성이 있게 느껴지곤 한다. 최근에 세계 곳곳에서는 이따금 참사가 일어난다. 지진 해일 붕괴 전쟁. 그럴 때 나는 항상 잠수부인 친구의 말이 먼저 떠오른다. 지금 갑자기 잠수부에 대한 생각이 떠오른 것은 왜일까. 생각이든 주체는 나지만 생각이 솟아올라 기억을 끄집어낸 것도 나지만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다. 혹은 아직 내가 내 생각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모르는 것일 지도. 깊은 것에 의해 꺼내어진 생각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