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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아침에서야 몸을 일으켰다. 전날에 먹었던 맥주기운에 찌들어 몸뚱이가 부서져가는 느낌이 들었다. 다량의 맥주를 들이켜어서인지 침대인 줄 알았던 소파에서 밤새 잠들어버렸다. 몸이 몸 답지 않았다. 장마 속에 몇 날 며칠 젖어 버린 골판지 같다. 겨우겨우 일으킨 몸을 질질 끌고 뒤집어지고 있는 속을 달래기 위해 부엌으로 향했다. 전날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싱크대에 남아있다. 또 술기운에 싱크대에서 담배를 태운 것인지 여기저기 흩날린 허연 담뱃재들과 반쯤 태워진 카멜담배 두 개 그리고 칼스버그 맥주캔 여섯 개. 두 캔은 어디 갔을까 궁금해 냉장고를 열어보니 다행히도 냉장고 안에 있다. 난장판인 부엌을 정리답지 않은 정리로 눈가림을 한 뒤 라면이나 하나 끓여 먹자 했으나 끓임과 동시에 속이 뒤집혀 싱크대 속으로 냄비 채 뒤집어 버렸다. 오늘 하루는 요양이나 하자 싶어 집 근처 카페로 소설가 박완서 씨의 책을 집어 들고 나섰다. 집 근처 카페엔 털보가 있다. 털보라고 부르는 이유는 얼굴에 털이 많기 때문이다. 면도를 해도 몇 시간 후면 턱과 볼을 다 뒤덮을 만큼의 수염이 나곤 한다. 그럴 때면 털보는 전기면도기를 들고 사라지곤 했다. 그런 가게다.
털보네 카페는 집 문밖을 나온 순간부터 걸어서 오 분이면 도착하는 거리에 있다. 털보네 다섯 평 카페는 내가 방문했던 카페 중 가장 작다. 그만큼이나 털보가 쓰는 에스프레소 머신이며 커피를 정교하게 갈아주는 그라인더며 잔들이며 모든 것들이 보통의 가게들보다 소형에 가까웠다. 그런 소형의 기구들이 모인 소형카페라. 어쩐지 어울리는 듯 보이지만 그 안에 털보사장이 있는 것이 조금은 이질적인 느낌을 주었다. 털보네 카페는 항상 털보밖에 없다. 손님이라는 존재를 손님인 내가 본 것이 기억 상으론 몇 달 전이다. 털보는 그래서인지 내가 갈 때마다 아주 반갑게 나를 맞이한다. 외출하고 돌아온 주인을 반기는 강아지처럼. 매일 창문만 바라보는 것인지 집을 나와 코너를 꺾으면 바로 털보네 카페유리창이 보이는데 내가 보이기도 전에 항상 손을 흔들고 있다. 손을 항상 흔들고 있어서 내가 코너를 돌자마자 그렇게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나는 첫 번째 강서구 친구를 털보로 두게 되었다. 왼손에 박완서의 ‘나목’ 오른손엔 아이스 라테를 두고 왼손에 있는 활자를 한 줄 읽고 오른손에 있는 라테를 한입 마시고를 반복했다. 그러던 중 나와 비슷해 보이는, 아니 나와 닮아 보이는 여성이 지나갔다. 온몸엔 기운이랄 것이 없었다. 혹 술을 많이 먹은 것인지 정말 힘이 없는 것인지 어깨가 축 처져있었고 두 다리는 의지대로 앞으로 나아간 다기보다는 넘어질 수 없어 어찌어찌 버티다 떨어지는 걸음 같았다. 기괴한 느낌이었다. 그러나 그 기괴함에서 나를 보았다. 한 없이 약하고 나약하고 힘없고 힘이 빠져있는 모습. 동공에는 빛이 사라진 지 오래고 그저 먹고 자고 싸고 살아갈 뿐인 그런 인생. 나를 제삼자의 모습으로 바라보니 가만히 앉아있을 수 없었다. 내가 벌떡 일어나자 창밖만 바라보던 털보가 깜짝 놀라며 짧은 육두문자를 날렸다. 다행히도 나 이외에 손님이 없는 것이 이 가게의 위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뛰쳐나갔다. 나와 비슷한 사람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싶어서. 내가 느낀 직감을 확인하고 싶었다. 한 생명체에서 나의 모습을 본 것이 분명했기에 망설일 것도 없었다. 어디 가냐며 말로 붙잡는 털보를 뒤로하고 가게 문을 박차고 나갔다. 그런 사이 내가 봤던 환영 같았던, 분명 나와는 다르지만 나 같았던. 내가 나를 놓친 듯, 그녀 역시 사라졌다. 워낙 골목길이 많은 동네이기에 사라진 것이 정말 사라진 것은 아니겠지만 분명 내가 쫓던 존재는 사라졌다. 구부정한 채 실존과는 반대된 걸음을 하던 여성은 보이지 않았다. 더 쫓아갈 이유가 없어졌다. 당장 만나지 못한다면 더 나서서 나의 모습을 관찰할 필요가 없다고 느꼈다. 어쩌면 두려웠을 지도. 환영이나 짧은 꿈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다시 터덜터덜 털보네 가게로 들어가며 생각했다. 내가 보았던 것이 참인지. 환영을 본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환시라는 것이 있지 않은가. 하지만 나는 조현병을 진단받은 적은 없다. 아니 내가 주워들은 바에 의하면 꼭 질병이 있어야만 환각을 느끼는 것이 아니었다. 무언가를 깊이 갈구하거나 어떤 대상을 매일 생각하고 그 존재만을 쫓는다면 실제 존재하지 않는 것을 뇌에서 이미지화하여 실제 있는 것처럼 볼 수 있다고 했다. 뇌 과학적으로 말이다. 그래서 나는 내가 보았던 것을 진실이라고 믿었다. 이런 생각이 다다를 때에 털보네 가게 문에 부딪혔고 털보는 가게 문이 부서졌을까 싶어 인상을 찌푸린 채 나에게 푸념을 털어놓았다. 설령 가게 문이 이상해졌을지라도 털보는 나에게 진실된 화를 낼 수 없는 존재였다. 내가 유일하게 이 가게를 지키는 사람이자 가게의 존재여부를 지켜주는 존재임과 동시에 나는 그의 유일한 친구였기 때문에. 썩어버린 우유로 만들었을 법한 라테를 먹어주는 손님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