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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호출이 있었다. 본가에서 나와 독립하여 살고 있다. 그렇게 살아간 세월이 몇 달뿐이지만 혼자인 나를 즐기는 편이다. 나만의 방을 갖고 싶기도 했고 아버지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사실은 후자의 마음이 더 컸다. 언제나 나의 삶엔 아버지란 그늘이 존재했고 그랬기에 성장기의 삶은 시원했다. 그러나 성장기를 지나 성년이 된 이후엔 어쩐지 그늘이 답답하게만 느껴졌다. 그늘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이 너무나도 궁금했다. 나의 모든 행동과 모든 말 그리고 생활의 작은 부분들까지 큰 나무의 그늘이 침투하여 서늘하다 못해 이제는 춥게 느껴지기도 했다. 나만의 햇빛을 찾아야겠다고 결심했다. 결정의 계기가 될 만한 사건이 따로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그저 햇빛을 봤을 뿐. 햇빛이 궁금했을 뿐이다. 그리고 이제는 성년, 성인이 된 나에게 삶의 주권은 나이며 삶의 결정에 따른 책임 또한 내가 짊어져야 된다고 생각했다. 언제나 크고 시원한 고목 밑에서 햇빛을 두려워함과 동시에 궁금해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하루는 아버지에게
이제는 독립해 혼자 나가 살아보겠습니다.
라고 얘기했다. 의외로 아버지는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래? 그럼 생활비도 알아서 하겠다는 거지?
라는 경제적인 질문만 했지 집을 나가는 것에 대한 의문이 존재하는 것 같지 않았다. 불쑥 꺼낸 얘기였기에 그랬을지도 모른다. 혹은 너 같은 애가 나가 봐야 고생이지 하는 느낌이 있었을지도. 그래서 나는 삼 십 년 동안 비가 내리면 비에 젖지 않게 뻗은 나뭇잎과 언제나 등을 기댈 수 있었던 나무의 곁을 떠났다. 한동안은 햇빛이 굉장히 아파왔다. 가끔 나뭇잎을 비집고 들어오는 햇빛이야 단순히 눈으로 보던 아름다움의 개념이었지 해가 직접 모든 것에 맞닿는 온도와는 거리가 멀었다. 직접 맞아본 햇빛은 참으로 많이 아팠다. 독립 후 안착하기로 한 지역 역시 별다른 이유가 없었다. 친한 친구 곁에서 살고 싶기도 했고 살아보지 못했던 곳에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리고 공항도 가깝고 서울의 중심부 까지도 가깝고 무슨 일이 생겨 흑석동에 있는 나무의 곁으로 가기에도 그리 멀지 않은 거리였다. 사실 지도를 보고 눈에 보이지만 너무 눈에 띄지 않고 적당히 사람들이 있는 곳에 살고 싶었을 뿐이다. 강서 공항동은 나에겐 살아보지 못한 매력이 많은 동네였다. 매력과는 다르게 그곳엔 아무것도 없다. 노인들만이 살고 있는 낙후된 도시였다. 작은 공원들이 많았으며 길은 정돈되지 않아 삐뚤빼뚤했다. 나무들과 풀들은 인간들의 손에 관리되지 않아 삐죽삐죽 가지가 나있었다. 아스팔트길도 이따금씩 없었고 흙길이 오래된 구옥을 감싸고 있는 모습도 종종 있었다. 역사가 담길 길 같았다. 그런 길을 걷고 있자니 본가 근처의 정돈된 느낌과는 색다름을 느낄 수 있었다. 햇빛의 고통은 점차 나에게 익숙해지고 있었고 새로이 정착한 곳의 길 역시 하늘 역시 나에게 무르익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차근차근 나의 새로운 나무를 가꾸고 다듬고 만들어나가고 있었다. 지금의 이 순간들은 꼭 우연인지 우연이 아닌지 판단이 잘 되지 않는다. 본가에서 떨어져 나온 것은 우연일까. 필연일까. 우연이라기엔 모든 것들이 사실적이었고 우연이 아니라기엔 너무도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삶은 언제나 이런 식으로 흐르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이제야 내가 삶을 지각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이렇게 삶은 정착하기도 하고 새로운 만남을 갖고 새로운 마음가짐을 품고 새롭게 일궈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