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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우 Oct 20. 2024

백색왜성 21.

21     




집으로 돌아온 뒤 세 달간 여행한 짐들을 정리했다. 긴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으나 짧은 시간이 소요되지는 않았다. 그간 비운 집에는 새로운 규칙이 생긴 것처럼 이전에 있던 위치에 그대로 둘 수가 없었다. 옷들도 다른 위치에 두어야 할 것 같았다. 집은 상처받은 것 같이 느껴졌다. 내가 안은 상처를 이 집에 두고 나는 유럽으로 도주한 것 마냥. 변화된 나. 그에 맞춰 또 변화된 집. 많은 구멍들이 나있었다. 나에게도 집에게도. 그래서 다시 제자리를 찾도록 정리하고 또 정리했다. 여행 짐엔 신발 한 개 면바지 세 개 셔츠 한 개 후드티 한 개 자켓 한 개였기에 그것만을 정리하는 데엔 시간이 쓰이지 않았으나 모든 것을 정비하고 정립하는 데에 쓰인 시간은 많았다. 많은 것들을 다시 어루만졌다. 그럴 여유도 있었다. 일을 가야 하는 것도 아니고 어딘가에 쫓기거나 누군가가 이젠 나를 떠나버릴 일도 없다. 엄마가 남아있지만 엄마는 무척이나 건강하다.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지금 이 이상으로 나에게서 그 어떤 것도 떠날 일이 없다는 것이 나름 마음의 안정을 주었다. 옷들을 모두 새롭게 정비했다. 버릴 것들을 모두 버렸고 둘 것들은 제 위치를 찾아주었다. 신발들도 신지 않은 신발을 모두 봉투에 싸두었다. 버릴 예정으로. 더 이상 화이트칼라로 일하지 않을 것이기에 구두들은 모두 깨끗이 닦고 포장했다. 집을 얼추 정리하고 거실로 나와 보니 산세비에리아만큼은 제 위치를 잘 사수하고 있었다. 보지 못한 사이에 조금 더 자란 듯했다. 엄마가 보살펴주었을까. 잎에는 조금 더 푸릇한 생기가 감돌고 있었다. 새로운 생명력이 발현되어 새로운 힘이 생겨난 것처럼. 산세비에리아만큼은 변함없이 그 자리에 둘 수 있었다.  

   

많은 것들을 정리하고 난 뒤 캔 맥주라도 사기 위해 집을 나섰다. 유럽에서 여행하는 동안 마셨던 값싸고 질 좋은 맥주가 그립기도 했다. 분명 편의점의 맥주는 그 맛을 내지 못하겠지만 나에게 기록된 과거로 인해 좋은 기억과 함께 음주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슬리퍼를 신고 가볍게 상하의 셋업 운동복을 입고 나섰다. 가는 길에 털보 네도 잘 있나 보려는 의도도 깃들어 있었다. 발걸음은 털보네로 향하고 있었다. 이쯤이면 털보는 아마 커피를 볶고 있거나 색다른 디저트를 만들어보기 위해 노력하고 있을 시간이었다. 그러나 도착한 털보 네는 털보 네가 아니었다. 털보는 어디론가 없어졌다. 단정 지을만한 요소가 많았다. 털보네 커피숍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가게가 있었던 곳에는 공허만 있었다. 공허함만이 그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커피를 내리기 위한 도구들과 기계 기구 그리고 로스터기까지 모조리 없었다. 전기선이 여기저기 나뒹굴고 있고 전기선 사이로 구리들이 보일만큼 빠르게 마무리가 되어진 듯했다. 나머지들도 마찬가지다. 바닥에 흩날려진 시멘트 가루들. 천장에 그대로 노출된 배관들. 전면 창문에 로스터기 배관구멍이 뚫린 그 모습 그대로였다. 자세히 보니 비어진 건물 안에는 벌레들만 있었다. 의문이 들었지만 의문을 가지지 않기로 했다. 그는 어디론가 떠나야 했을 것이고 떠났을 뿐인 것이다. 떠나야 했기 때문에 떠난 것. 그뿐.      


 나를 이루는 것만 같던 많은 것들이 나에게서 배출되었다. 아니 나에게서 사라졌다. 그것이 나는 어떤 것을 상징하는지 의미를 파악할 수 없었다. 의미를 파악할 필요가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애초에 그런 것이 존재하지 않을 것일지도. 의미 말이다. 생각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저 멀리 떠났고 오는 대로 순응함과 동시에 혼란의 덩어리 속에서 헤엄치고 있었지만 나름의 길을 잃지 않았다. 그것이 중요했다. 내가 나의 길을 잃지 않은 것. 중심을 잡기 위해 수년간 피워온 담배를 끊었고 몇 년간 다닌 회사를 퇴사를 했고 한 번도 가지 못한 동경의 여행을 떠났고 돌아왔다. 돌고 돌아 나는 제자리에 있는 것이 맞았다. 변한 것은 없다. 분명하게 변한 것은 없다. 사라지고 생겨나고 생명이 부여되고 죽음이 무엇인가를 앗아가도 모든 것은 제자리에 있다. 변하지 않는다. 유메는 나에게 이런 것을 알려주기 위한 전달자였을까. 유메에게 이제는 왜 나에게 그런 것들을 전달하고자 했는지 궁금해졌다.      


 궁금해짐과 동시에 유메와 처음으로 어떤 것을 전달받았던 가게 앞에 도착했다. 여전히 가게는 그 모습 그대로였다. 몇십 년이 지나도 이 가게와 주인은 세월과 함께 공존하고 살아가고 있을 것 같았다. 주인이 생을 마감하더라도 누군가에 의해 이곳은 동일한 목적과 방향을 유지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가게 안에는 유메가 있을까. 나는 유메에게 무엇을 물어보려 하는가. 갑자기 나의 인생에 등장하여 내 인생의 많은 것들을 배출하게 만든 그녀는 애초에 무슨 목적이었는지 궁금하다는 게 맞을까. 아니면 유메는 인간인지 초월적인 존재인지 물어보고 싶은 것일까. 아니면 유메에게 언제부터 그 회사를 다니고 있었냐고 물어보며 알리바이를 맞춰보고 싶은 것일까. 가게를 들어서면 분명 유메는 있을 것이다. 유메는 가게 문을 열고 문이 몇 초간 천천히 닫히도록 설계된 혹은 고장이 난 문이 닫힌 뒤 왼쪽 코너 옆 이인석자리에 벽 쪽에 분명하게 있을 것이다. 분명히. 나는 유메에게 얻을 것이 있는가. 사실 유메는 나에게 준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배출시켜 준 존재다. 아니면 처음부터 예견된 그러니까 예정된 일이었는데 유메가 완충작용처럼 놀라지 않도록 나에게 이끈 것일지도 모른다. 결국 일어날 일은 일어난 것이고 유메는 그저 전달을 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메에게 물어본 것은 없지만 답변을 들은 것처럼 나의 궁금증은 사라지고 말았다. 혹은 유메가 초월적인 존재여서 내가 가게 앞으로 온 것을 이미 알고 있었고 아니 가게로 올 것을 이미 오래전부터 예견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어느 지점으로 도달한 나에게 이것 또한 전달만 했을 뿐일지도 모른다. 인간의 방식이 아닌 초월적인 방식으로. 그래도 나는 인간이기에 항상 나의 직관과 직감을 믿으면서 살기엔 부족하다. 가게로 들어서야겠다.라고 생각했다. 서로 다르지만 서로를 보완하고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들인 세 개의 돌계단을 찬찬히 밟고 가게 문을 열었다. 가게 내에는 역시나 푸른색 일본 전통 의상 상의와 앞치마 그리고 푸른색 반다나를 머리에 묶은 일본인 주인이 있었다. 그도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이 눈으로 인사했다. 그리고 그의 눈은 창가로 향했다. 그의 눈 역시 나의 앞에 놓인 것들을 나에게 안내를 해주었다. 분명 그의 눈은 문 옆 창가로 향했다. 그를 제대로 본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세 번 정도 오고 가면서 그를 똑바로 마주한 것도 처음이다. 그 역시 내가 유메에게서 느끼는 무언가 초월적인 것이 느껴졌다. 그 사이 몸이 무거운 문은 제 시간이 맞추어 닫히고 있었고 닫히는 문틈 사이로 코너 그리고 여성의 머리카락이 보였다. 시간은 상대적으로 느리게 흘렀다. 문은 느껴왔던 시간의 흐름보다 두 배정도 느리게 닫히고 있었다. 내가 느끼는 상황에 대한 인지는 더욱더 느렸다. 하나하나 나에게 들어오고 있었다. 모든 감각들이 살아 숨 쉬고 있었다. 내 눈에 들어오는 문. 코로 느껴지는 숯불 향. 귀에 들려오는 일본가요. 피부로 느껴지는 메마르고 시원한 가게의 온도. 이전까지 느껴보지 못했더라면 못 느껴보았을 오감의 개안과도 같았다. 삶은 이렇게 흐르는 것이라고 알려주는 듯 나의 오감 모두 수축과 확장을 거쳐 제자리를 찾은 것이다. 이윽고 문은 닫혔다. 닫히던 문이 있던 그곳에 유메가 가지런히 앉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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