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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우 Oct 20. 2024

백색왜성 20.

20     




 사표를 냈다. 팀장은 나에게 이유를 묻지 않았다. 회사 내에서 아버지의 부고를 전한 것은 나의 팀장뿐이었다. 그래서 나에게 이유를 묻지 않고 그저 바라보았다. 그리곤 ‘알겠어.’라 했고 ‘조속히 처리할게.’라고 했다. 나는 그의 조속함을 믿었다. 그 분야로는 꽤나 권위가 있는 사람이었기에. 


 유메를 한 번쯤 볼 수 있을까 하곤 나의 자리를 정리하고 짐을 챙겨 승강기에 올라탔다. 유메를 볼 수는 없었다. 그녀는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이 회사에 들어온 이유는 나에게 전달할 것이 있었을 뿐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 직감은 진실이 될지 거짓이 될지는 유메에게 직접 묻지 않는 한 아무도 알 수 없는 것이었다. 승강기는 아무런 제동 와 제약을 받지 않은 채 일층으로 향했다.     


 며칠간 집을 정리했다. 창문을 닦았다. 여름의 해가 너무나도 따갑고 매서워 차마 창문 근처에 있을 수도 없었다. 그만큼 창문은 시간의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청소용 걸레가 없었기에 욕실수건 두 개를 버려야 할 만큼 많이 쌓여버린 먼지를 열심히 닦아냈다. 청소를 하며 산세비에리아를 보았다. 여름 내내 자리를 옮겨주지 않아 많이 뜨거웠을 텐데 그럼에도 타 죽지 않고 그 자리 그대로 있었다. 잎사귀 하나하나 구석구석 잘 닦아주었다. 그리곤 부엌과 욕실도 구석구석 정리하고 닦았다.      


 비행기표를 예약했다. 일주일 후 런던으로 출발하는 비행기다. 런던을 가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다. 빠르게 다른 곳을 가야 할 필요성을 느꼈기에 빠르면서 적당한 가격인 런던행을 선택했다. 런던에 간 김에 좋아하던 축구를 볼 수 있을까 생각했던 것도 한몫했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일주일 뒤에 런던을 갈 것이고 집은 긴 시간 비어둘 것이라고. 한 달에 한번 정도 집에 도착하는 우편물 관리해 달라고. 엄마는 알았다고 했다. 어쩐지 엄마의 목소리에서 나의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빈자리와 빈자리.      


 일주일이 지나 런던으로 향했다. 짐은 단출했다. 돈은 부족하지 않을 것이다. 먹을 것을 축내는 인간도 아닐뿐더러 퇴직금이 여행하는 동안 들어올 것이기에. 배가 고프면 빵이 있을 것이고 목이 마르면 물이 있을 테다. 런던은 춥고 비가 자주 내렸다. 그럼에도 런던에 있는 원주민들은 우산을 쓰고 다니지 않았다. 이국에서 느끼는 이국적임은 이질적이었다. 나만 그렇게 느끼는 것이겠지만. 런던에 있는 미술관과 축구장 그리고 여러 곳의 펍을 돌아다녔다.      


 비 오는 런던을 며칠 있다가 파리로 이동했다. 파리에 있는 미술관을 돌아보고 싶었을 뿐이었다. 루브르를 일주일간 구경했다. 이후엔 오르셰도 일주일간 구경했다. 파리엔 그  외 어떤 것에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내 눈엔 에펠이 지은 철제구조물이 당시 국민들이 비난한 것만큼이나 보잘것없어 보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파리 이후 여러 나라들을 떠돌았다. 관광이라기 보단 그저 상주였고 상주라 함은 호텔이 아닌 누군가의 집에 머물렀다. 누군가는 사람이었지만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이기도 했고 전혀 모르는 사람이기도 했다. 터키인들이 대체로 많았고 중국인들도 꽤나 많은 숫자가 그들의 모국과는 다른 세상 곳곳에 뿌리를 내리고 살고 있었다. 그들은 중국인이라기도 모호했고 터키인이라고 설명하기에도 모자랐다. 국가의 고유적 민족성이 붕괴되고 있는 현장을 경험했을 뿐이다.     


 이후 덴마크의 코펜하겐 스웨덴의 스톡홀름 아이슬란드의 레이캬비크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 슬로베니아의 류블랴나 크로아티아의 자그레브 그리고 스플리트 이탈리아의 바리와 로마 스위스의 베른 스페인의 바르셀로나를 거쳐 처음 도착한 런던으로 이동했다. 그 기간은 장차 세 달이 걸렸다. 동경했었던 유럽을 가고 싶었던 유럽을 과거형이었던 유럽의 땅을 밟았고 밟고 싶었던 곳을 밟았을 뿐인데 세 달이 훌쩍 지났다.    

  

 퇴직금과 저축예금 두 개에 해당하는 비용은 비행기와 함께 저 멀리로 사라져 버렸다. 한국으로 돌아왔다. 유럽은 생각보다 먼 거리였고 유럽은 이제 과거가 되었다. 나에게 과거란 무엇인가. 많은 것들이 과거가 되었다. 지나간 연인. 나를 낳고 기른 부. 그리고 유럽. 더 많은 것들이 나의 과거로 기록되었다. 그것도 꽤나 짧은 기간 동안. 일 년이 채 지나지 않았지만 일 년 안에 기록된 과거의 양은 체감상으로 일 년 치는 아니었다. 삶은 언제나 고통이라는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언제나 기억 속에 살아간다는 말도 맞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과거와 미래가 아닌 현재를 바라보고 살아가야 한다는 말도 맞다. 절대적인 것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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