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다음 날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병실 문을 딛고 나간 나를 기억한다 싸늘했던 나의 발걸음을 기억했다 그럼에도 나는 눈물이 나지 않았다 아침이 되어 다시 엄마의 전화가 울렸다 무슨 일인가 싶었기도 했지만 그 전화를 받기까지 꽤나 오랜 시간이 흘렀다 쉽게 전화를 잡을 수 없었다 무엇인가 알 수 있었다 랄까 무형의 무언의 어떤 것이 분명 무엇인가가 쉽지 않은 일이 닥친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전화벨은 쉽게 끊기지 않았다 받기 싫은 마음에 두어도 두어도 계속해서 울렸고 작은 기물을 통해 엄마는 나를 애타게 찾고 있었다 겨우 마음을 다 잡고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엄마는 역시나 무덤덤했다 그저 병원으로 당장 오라고 했을 뿐 나는 인사를 한 것인지도 어떤 대답을 한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눈에 보이는 옷을 주워 입고 제대로 입은 지도 모르겠는 상태로 병원을 향해 달렸다 실제론 내가 달린 것 같지만 버스가 달렸고 지하철이 달렸다 그 속도는 무뎠다 내가 향하고 있는 마음의 힘보다 느렸고 그럼에도 무던히 그리고 꾸준히 가고 있었다 시간은 흐르고 흘러 나를 병원 앞으로 인도했다 다섯 개의 계단을 올라서기 어려웠고 정문을 여는 데에도 꽤나 시간이 걸렸다 실제로 힘이 없어 오르지 못하고 밀지 못한 것이 아니고 누군가가 나에게 알리고 있었기에 쉽게 들고 밀치지 못한 것이다 재빨리 승강기를 탔다 다행히도 시간이 꽤나 이른 때라 승강기엔 흰 가운을 입은 여자만 타고 있었다 승강기 안의 시간도 너무나 무던했다 내가 원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시간을 달리고 있었다
아버지 병실 앞에 섰다 간호사들은 내가 누군지 알고 있었고 나를 막거나 어디서 온 사람이냐 기침 같은 증상은 없냐 체온을 재거나 나의 길에 걸림 길을 두는 행위 따위는 하지 않았다 병실 앞에 선 순간 알았다 이곳을 떠났다는 것을 병실 속에선 많은 울음소리가 있었다 병실로 들어서니 아버지의 형제인 고모와 작은아버지 그리고 아버지의 조카들과 그의 형수들 그리고 그들의 자녀들이 있었다 그들의 울음소리였다 내가 들어선 순간 모든 것이 페이드아웃 되었다 울음소리도 발걸음 소리도 전등이 깜빡거리는 소리마저도 다가섰다 아버지가 있는 침대까지 다가갔다 찬찬히 다가갔지만 그 사이에 차가워진 그의 얼굴을 볼 용기가 나지 않아 바닥을 보고 걸었다 침대 앞에 다다라서 얼굴을 들었고 생각보다 편 온한 얼굴을 한 사내가 있었다 마치 잔잔한 잠을 자고 있는 한 사내 콧잔등의 털은 움직이지 않았고 그를 둘러싸고 있던 치료제와 수액은 모두 제거되어 있었다 그의 코에 매달려 있던 작은 호스도 없었다 마치 그는 완치된 기쁨에 젖어 잠이든 암환자 같았다 엄마는 그 옆에서 내가 아닌 자신의 배우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눈가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지만 염두했던 탓인지 눈물이 있음에도 왠지 말라 보였다 다른 일을 걱정하고 있어서 그런 것인지 사내의 죽음을 어느 정도 감당하고 있는 것인지는 내가 알 수 없었다 사내를 보았고 다시 엄마를 보았다 엄마는 나를 쳐다보곤 아버지가 마지막 했던 말을 나에게 전했다
미안하다
라고 했다 한다 엄마에게도 그럴 것이고 나에게도 그럴 것이라고 엄마는 말했다 나는 미안하다는 말이 허공으로 떠돎을 감지했다 그 순간 바람이 창문을 타고 들어왔다 역시나 풍경들을 세차게 흔들었고 그에 맞추어 무엇인가를 알리듯 시끄럽게 울려댔다 그러면서 다시 페이드인 많은 울음소리가 들렸다 사내의 동생의 울음일 것이며 사내의 조카의 울음일 것이며 사내의 아내의 울음이었다 나에겐 굳은 심지만 있었다 나는 속이 울렁거리는 느낌도 가슴이 먹먹한 느낌도 느끼지 못했다 나와 혈육 관계적으로 떨어진 누군가의 죽음을 알리는 것 같았다 누군가가 죽었다는 것을 분명 알겠는데 무감각했다 그렇게 아버지는 떠났다 나의 곁을
장례는 단촐했다 장례식장과 장례지도사들이 모든 것을 통솔해 주었기에 상주인 나와 어머니는 딱히 무엇을 하지 않아도 됐다 아마도 그들은 상주들이 겪을 슬픔에 동참하여 아픔을 나누어 부담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에게는 슬픔이라는 감정이 없었다 떠오르지 않은 것일지도 모르지만 표면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삼일 동안 누구에게도 말을 하지 않았고 아버지의 영정사진도 보지 않았고 그렇다고 자리를 뜨지도 않았다 그렇게 삼일은 지났고 아버지가 원하던 수목원으로 화장된 유골과 함께 향했다 큰 버스가 필요하지 않았다 흔히 장례식장에서 준비해 주는 거대한 버스 말고 그보다 반 토막정도 작은 버스에 나를 포함한 모든 가족이 탑승했다 수목장을 할 수목원으로 안내할 기사가 창문 바깥에서 우리에게 정중한 모습 와 표정으로 허리를 굽혀 인사를 약 2초간 한 뒤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운전석에 탑승했다 이후의 일 역시 장례식과 동일하게 운전수에 의해 착실히 그리고 완벽하게 진행되었다 아버지가 꼽아놓은 나무 밑에 아버지의 유골은 안치되었고 다른 무덤들처럼 묘비가 있거나 표시를 해 두지는 않았다 그저 이 숲이 아버지일 것이라 그리고 그렇게 스스로도 말했다 모든 것을 마치곤 고개를 들었을 때 숲 속의 바람이 통하고 있었다는 것을 느꼈다 바람은 언제나 나무들 사이로 옮겨 다니고 있었고 돌고 돌아 제자리로 돌아오듯 끊임없는 바람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바람은 어디서부터 온 것일까 아버지가 떠난 날 병원에서 느낀 바람은 어디서 온 것일까 같은 바람일까 문득 궁금해졌다 아버지는 바람이 되고 싶었던 것일까 사내는 지금쯤 어디에 있을까 사내는 이제 아프지 않을까 이전에 가지고 있던 강인한 눈빛을 다시 찾았을까 이제는 그곳에서 평온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뿐이었다
다시 롤케이크 같은 토막의 버스를 타고 다시 장례식장 근처로 돌아왔다 다시 돌아와 상조에서 빌려준 콘크리트처럼 뻣뻣한 구두를 신고 땅을 디뎠다 아무것도 변한 것은 없었다 단순하게 사내만 이제 세상에서 볼 수 없는 존재만 되었다 그에 따른 나의 변화를 내가 감지할 수 없었다 그저 별일 아니었다는 듯이 가로수들은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고 흔하디 흔한 오후 가을의 모습을 띄고 있었다 엄마는 집에서 쉬어야겠다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집까지 택시를 타고 가라 하였지만 나의 말에 대답 없이 그녀는 재빨리 걸음을 옮겼다 한시라도 이 공간에서 벗어나고 싶었을 것이다 아버지가 환자일 때 입원해 있던 병원 산하 장례식장이었기에 그녀는 더 이상 머무르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는 집으로 떠났다 삼십여 년을 같은 핏줄이란 명목 하에 유지되었던 우리 가족은 붕괴된 듯했다 아버지라는 기둥이 실존하지 않게 되니 남은 두 사람은 남 같았다 가족은 가족인가 라는 생각과 함께 택시를 탄 그녀와는 다른 나만의 집으로 향했다 삼일동안 어떤 일이 있었는지 손에 잡히는 현실감이 없어 나의 집으로 가는 것 말고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토록 자신이 속한 공간에 영향을 미치던 사내가 세상을 등졌지만 세상엔 아무 일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더 현실적이지 않음을 느꼈다 그래서 나는 더욱이 집으로 가기 위한 발걸음을 현실적으로 옮겼다 현실임을 깨달아야겠다 현실이겠지만 현실에 대한 감각을 놓치고 있었다 많은 일들이 너무나도 짧은 시간 안에 일어났고 그 일들은 현실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들과 현실적이나 지금 현재에는 존재하지 않는 일들로 가득했다 현실감을 쫓았다 걸을 수 있으니 걸었고 무엇인가를 만질 수 있으면 만졌다 걸어가는 길에 길게 늘어진 느티나무 잎사귀들이 보여 두 팔을 들고 스치듯 느티나무를 쓸었다 두 팔에 나뭇잎들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 감각도 오래 남지 않았다 스쳤을 뿐 다시 제자리였다 아니 어쩌면 스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생각이 만들어 낸 환각일지도 모른다 계속해서 걸었다 발에 느껴지는 감각도 분명했다 꽤나 두꺼운 면양말을 신고 있었고 그 아래로 검은색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이전에 상조회사에서 빌린 구두의 감각마저 남아있었다 구두는 꽤나 신경질적으로 단단했기에 아직도 그 여운이 남아있던 것이다 그 느낌이 마치 아버지가 나의 발을 붙잡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래서 운동화를 신고 있는 발에 느껴지는 감각에 더욱 집중하기 위해 걷고 또 걸었다 아직 가을이 닿지도 않은 것 같은데 벌써부터 계절 변화의 준비를 마친 나뭇가지들이 바닥에 떨어져 있었고 나뭇잎도 흩날리며 걷는 나를 휘감싸안아주었다 꽃잎들도 떨어졌다 끝없이 떨어지고 있었다 나뭇잎과 꽃잎이 아니라면 흙먼지 같은 알 수 없는 가루들도 떨어지고 있었다 한시도 기다릴 수 없다는 듯이 나의 눈앞에는 모든 것들이 떨어지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내 몸속에도 무엇인가가 떨어져 나간 느낌이 들었다 버려졌다고 표현해도 되고 제거되었다고 해도 될 만한 무엇인가가 몸속에서 떨어졌다 과거 목공에 관심이 많아 목공용 풀을 자주 만졌었다 목공 풀은 팔이나 다리에 붙어 시간이 지나면 그 뭉텅이가 다른 접착제들과는 다르게 메말라 툭하고 떨어진다 의도가 없어도 그 덩어리들은 떨어진다 그러면 붙어있던 그 부위의 감각은 왠지 모를 시원한 감각이 존재했었다 지금의 느낌이 딱 그랬다 가슴속 혹은 그보다 깊은 어딘가에 덩어리가 떨어졌다 어디론가 더 깊숙한 곳으로 떨어졌다 싱크홀이 갑자기 생겨 구멍이 뚫린 곳에 그 위에 존재했던 모든 것들이 떨어져 존재여부를 알 수 없게 되는 것처럼 떨어졌다 시원함 그러나 시원함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것이 목공용 풀이 떨어진 것과의 차이였다 그래서 떨어졌지만 무엇인지 더욱이 존재여부를 알 수 없었다 갑자기 달리고 싶어졌다 무엇인가가 나에게 떨어진 뒤 약간의 가벼움을 느끼게 가벼움을 만끽하고자 달리고 싶어졌다 달려본지가 언제인지도 모를 만큼 달리는 느낌을 잊었었다 그래도 달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두 다리를 힘차게 구르기 시작했다 발에 닿는 감각에 힘을 더했다 최대한 힘차게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최대의 힘으로 내달렸다 끝없이 달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실제로 꽤나 달렸음에도 숨이 차거나 죽을 것처럼 가쁜 느낌이 들지 않았다 이대로 계속해서 달려서 집으로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계속해서 달렸다 끊임없이 달렸다 무언가에 쫓겨서 달리지 않고서야 이렇게 달릴 수가 없을 것이다라고 느낄 만큼 계속해서 달렸다 점점 다리와 팔에는 힘이 빠지고 있었고 힘이 빠지고 있는 만큼 더욱 힘차게 달리기 위해 온몸에 힘이 들어가는 기묘한 구조가 되었다 그래도 계속해서 달렸다 어디까지 달린지도 모르게 길은 길었다 아니면 달리기 실력이 좋지 못하여 실제 거리는 짧게 달린 것일지도 모른다 끝끝내 더 이상 달리지 못하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뚝하고 멈추었다 달리기를 그리곤 눈물이 떨어졌다 뚝 끊어졌다 분명 내 삶의 무엇인가가 떨어진 것이 끊어졌기에 떨어진 것이리라 눈물은 바닥으로 떨어졌고 한 방울에서 그치지 않아 이제는 광대와 볼을 타고 흘러내려 턱과 목까지 눈물이 흘러내렸다 우뚝 선 그 자리 그 위치 그대로 주저앉아 울었다 나의 기둥이었던 자를 위해 그의 두 손이 나의 첫 저울이었을 사내를 위해 그의 두 눈이 나의 나침반이었을 그자를 위해 그자에 하나뿐이었을 사랑이 나였을 것이라 생각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자리에 주저앉아 우는 것뿐이었다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