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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우 Oct 20. 2024

백색왜성 17.

17               




 하늘의 기울기가 점점 기울어져 갔다 그림자는 누군가 잡아 늘리는 것처럼 길어진다 햇빛의 각도는 지루하게 늘어지고 있었고 그만큼이나 하늘이 높아지고 있다는 증거였다 아침에 내리쬐던 햇빛은 차가움을 덥혀주는 존재가 되어갔고 달은 대지가 머금고 있는 열기를 식혀주는 상관관계를 정확하게 이루고 있었다 유메는 마지막 만남 이후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다 마케팅팀으로 찾아볼까 했지만 굳이 먼저 나서야 할 이유가 있을까 싶었고 또 유메를 찾아 나섰다가 자연스럽지 않은 상황을 맞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선뜻 아래층으로 내려갈 수 없었다 언제나 반복이었다 이제는 어두워진 아침에 눈을 떠 침대에서 벗어나 거실로 나온다 산세비에리아 잎에 얹혀진 먼지들을 꿩의 깃으로 만든 빗자루로 털고 흙에 정성 담아 물을 준다 부엌으로 가서 간단한 버터토스트를 만들어 먹거나 연어샐러드를 만들어 먹는다 그리곤 적당한 옷을 찾아 입고는 직장으로 출근한다 주말이면 소파에 누워 책을 보거나 산책하기 좋아진 날씨에 선글라스를 챙겨 바깥에 있는 의자에 앉아 시간을 보냈다 인생에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일방적인 전달은 받았으나 그것들은 나에게 어쩌라는 것인지 의문만 나에게 남아있다 궁금증을 남겨준 이들은 모두 눈앞에서 사라졌다 몇 달 전에 보았던 아이를 이 목록에 넣어도 되나 싶지만 그녀 유메 아이 그녀는 떠나간 것이라 표현하는 게 맞다 명확하게 그리고 대면하여 정확하게 전달했으니까 다시는 볼 일 없을 것이라고 유메 없어진 것이 아닌 그 이후 만나보지 못한 것일지도 모른다 한 번쯤 이자카야에 찾아가 보면 유메가 있던 자리에 이제는 유메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녀가 있을 가능성은 사라졌다 아이 다섯 살 근처로 추정되는 사내아이는 원래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아이에게서 무언가 친숙함의 느낌이 있기도 했다 얼마간 보아왔던 아이인 것 마냥 눈길이 갔고 이상함에도 눈길이 갔다 이 모든 인물들이 나에게 어떤 의미이며 어떤 흔적을 남겼을까 도무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내게 덩어리는 무엇이고 나를 떠난 것은 무엇이고 아이도 무엇인지 하루가 하루였고 내일은 또 다른 하루였을 뿐이다 변한 것들이 있어 보이지만 실제로 나에게 영향을 준 것이 없다      

 오늘도 마냥 느낌 좋은 하늘이었다 낮이 되니 조금 더워지는 느낌이 들었지만 습도가 이전보다는 낮아지기도 해 길거리를 걸어 다니고 주변을 둘러보는데 기분이 말끔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집에서 재빨리 커피를 만들어 텀블러에 담아 밖으로 나왔다 그녀에게 통보를 들은 후 그녀와 마찬가지로 나 역시 나의 삶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었고 시간이 날 때마다 나에게 집중하려 한다 오래되어 낡은 차콜색 현관문을 밀어젖혔다 햇빛은 부지런히 그늘을 만들고 있었고 빛과 어둠의 경계는 내가 알던 것보다는 모호함이 깃들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늘은 해가 뜨면 뜰수록 햇빛에 밀리나 또 그 이상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빛은 그늘과 어둠에 잡아먹히기 때문이다 어느 하나도 강하지 않고 어느 하나도 약하지 않다 그것이 왜 지금 떠오른 것일까 노란색 반팔셔츠 가슴주머니에 넣어둔 선글라스를 꺼내 착용하곤 정처 없이 커피와 걸었다 다행히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 어떤 것도 혼란스럽게 하는 것은 없었다 그녀가 떠난 지 몇 달이 넘었고 이후 그녀와 마지막 만남은 또 한 달 정도가 흘렀다 생각보다 박탈의 감정과 기분은 쓰레기처럼 남아있지 않았다 오히려 비워진 부분에 공기가 통하기 시작해고 시원하게 느꼈다 오히려 그녀와 그곳에서 만나게 되었던 것은 무의식에 흐름이었지만 그녀는 어떤 이유에서 간에 알고 있었고 준비가 된 정리는 나름 큰 의미가 있었던 것이다 그럴만한 때였고 적절하게 이루어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이제는 그녀를 생각하면 노을을 바라보는 기분이 든다 나에게서 저어 멀리 있고 아련하고 아름다웠다 나와의 실제적 거리가 멀뿐만 아니라 큰 의미도 없는 그런 아름다운 기억의 아름다움 일 뿐 더 가까이 들여다보면 또 다른 면이 보이거나 아름다워 보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 노을을 보는 거리만큼 그 정도만 보이는 것 그녀는 이제 그런 존재다      


 몇 달간 집과 일 말고는 털보네 가게도 그녀와 유메가 있었던 이자카야에도 가지 않았다 집에 있거나 직장에 있거나 바깥 길을 걷거나 셋 중 하나 외엔 특별할 것도 없었다 그래도 특별할 것 없는 현실에 만족했다 마음속에 있는 짐의 무게는 분명 전보다 덜했고 나름대로 일상 속에서 더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꼭 특별해야만 하는 게 아님을 배우고 있다 랄까 담배도 뚝 끊어버렸다 담배는 아마 그녀와 마지막 연결고리였을지도 모른다 그녀와 모든 것이 마무리된 다음부터 담배연기에 대한 구역감이 생겼다 어떻게든 담배연기를 폐 속으로 집어넣으려 해도 폐가 아닌 다른 장기들이 극도로 거부하고 있었다 혹은 그녀가 끊었다고 하니 나도 이제는 내 쪽에서도 끊는 것이 맞겠다고 생각했던 것이 신체화적 반응으로 일어난 것일지도 모른다 직장에서도 항상 같이 담배를 태우던 동기에게도 담배를 끊음에 대해 알렸다 그리고 더 이상 담배연기도 맡을 수가 없게 되었다고 이야기하자 그는 나의 건강에 대한 염려를 했다 위 내시경이나 혹은 다른 검사를 좀 받아 봐야 하는 것 아니냐고 그는 나와 그녀에 대한 역사를 조금 알고 있는 사람이지만 더 깊이 그리고 관계에 대한 무형적 설명은 너무나도 어렵다고 느꼈기에 대충 얼버무리고 끊을 때가 되었다고 전했다 담배를 끊고는 그와도 자주 만나지 않게 되었다 다른 부서이기도 했고 담배 외에는 사실 끈덕지게 달라붙는 관계성이 있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인간관계란 담배와 같은 것이 아닐까 소모적이고 단절되어도 세상에 어떠한 일도 일어나지 않는 그래서 담배와 같이 시간을 보내던 그와의 단절은 그리 슬프지도 않았다 어찌 보면 담배라는 것이 상징성만 있었을 뿐 내가 담배를 태우면서 담배를 즐겼던 것인지 담배의 어떤 점이 좋았는지도 정확치 않다 그래서 더더욱이 담배를 끊어내는데 큰 무리가 없었다 그와 딸린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였고 조금 거슬리는 것은 항상 퇴근 후 역에서 내려 집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편의점에서 담배를 사곤 했었다 편의점의 주인이고 아르바이트생이고 항상 내가 동일한 시간에 동일한 물품을 원하고 동일한 카드 주고 동일한 포즈로 등장했기에 그들도 동일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동일한 행동으로 반응했었는데 담배를 끊고 방문한 편의점에 굳이 얘기를 했어야 하는 것이 불편하게 느껴졌다 주인 여자아르바이트생 남자아르바이트생 세 명에게 각각 말을 했어야 했다 그렇게 담배도 곁에서 떠나보냈다 좋은 일이겠지 하면서       


 다행이도 유메를 보았다 기묘한 일들이 있었고 기묘한 일에 얽힌 그리고 열쇠를 쥐고 있었던 것은 유메였다 나는 유메의 흔적을 좇아 이른 새벽 가게에 갔었고 그곳에서 기묘한 일을 겪고는 내 안에 무언가 비워졌지만 그마저도 나쁘지 않은 채 오히려 좋은 선물은 받은 것처럼 살게 되었다 유메가 너무 궁금했었으나 그 느낌마저도 시간이 지나며 퇴색되었다 유메가 나에게 말을 걸기 전까지 유메를 본 기억은 없었으나 유메를 만나고 난 뒤부터는 유메가 나의 깊은 곳을 건드렸고 그렇게 남은 흔적은 꽤나 짙었다 그럼에도 시간은 분명하게 그런 흔적들도 옅어지게 만들었다 퇴근길에 나서며 이제는 유메를 승강기에서 만나게 될 걱정을 하지도 않게 되었을 때쯤 느슨한 꿈처럼 유메를 다시 만났다 그날은 유독 팀장이 야근을 하겠다며 나머지 팀원들만 먼저 퇴근하라고 했던 날이었고 그중에서도 연차를 쓴 두 명의 직원들이 있었기에 나보다 일 년 후배인 여직원과만 퇴근길에 올랐던 날이었다 둘만 나서는 길에 조금은 신경이 쓰였지만 –후배가 꽤 이쁘다고 종종 생각했던 탓일까- 항상 퇴근이 그렇듯 문을 박차고 나서자마자 같은 부서임이 누구에게도 알려지면 안 된다는 느낌을 뽐내며 승강기에 탑승했고 나는 왼쪽 구석 후배는 오른쪽 구석으로 자리를 잡았다 물론 후배와의 관계가 좋지 않은 것도 아니지만 좋은 것도 아님에는 분명했기에 승강기라는 한정되고 규정된 공간에서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적절한 거리라고 생각이 들어 나름 이 상황이 편안했다 십 이층에서 탄 승강기가 막 속도를 올리려 웅웅 거리는 모터소리가 났으나 이내 잦아들었다 분명 멈추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다 속도를 점점 낮추더니 후배 앞쪽에 있는 디지털 전광판에는 두 개의 아라비아 숫자 일이 가지런히 깜빡였다 십 일층에서 문이 열린다는 뜻이었고 그때까지도 나는 별 감흥 없이 퇴근하며 오늘은 맥주를 사가지고 가야겠다는 가벼운 생각만 있었다 그 순간 문이 천천히 열렸고 유메를 포함 마케팅팀 전원이 탑승했다 일본인 두 명 –유메 포함 – 프랑스인으로 추정되는 여성 한 명 한국인 두 명 미국인으로 추정되는 남성 한 명이었다 총승강기엔 여덟 명이 탑승한 뒤 재차 모터는 제 역할을 하겠다는 듯이 윙윙 소리를 내며 세차게 하강했다 유메는 본인의 일본인 팀원과 업무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지 서로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태도로 탑승했고 프랑스와 미국인으로 추정되는 남녀는 서로 많이 친밀한 듯 의지할 사람이 서로인 듯 가벼운 제스처와 함께 경쾌한 대화가 오고 갔다 한국인은 한국인스럽게 좌우로 나뉘어 승강기 문 앞에 서 앞만 바라보았다 같은 나라에 속해있을지라도 같은 직장에 속해있을지라도 각국의 문화를 보여주는 느낌을 받아 이 작은 승강기 안임에도 이국적이었다 마치 멕시코 호텔에 있는 로비 승강기 안에서 이들을 만났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느낌이었다 물론 복장을 서핑 쇼츠나 하와이안 셔츠로 바꾸어야 하겠지만 말이다      


 유메는 본인과 동일한 국적의 팀원과 대화를 나누다 문득 잠시 대화를 멈추자는 듯 고개움직임이 있은 뒤 천천히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처음 봤던 그 눈빛과 동일했다 그제야 나에게도 유메가 눈에 들어왔다 유메가 처음 승강기에 탈 때는 하나의 일본인임을 인지했을 뿐이었다 유메임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었다 길게 늘어뜨렸던 머리카락을 어깨에 닿는 중단발로 잘랐던 탓일지도 모르겠다 나름 그 모습이 그녀와 잘 어울렸다 프로다우면서 여성스러웠다 그녀의 점들이 뒤에서 보아도 이전과 비슷했지만 무언가 다르게 느껴졌다 그녀의 점을 내가 세어보기도 했지만 그 수를 적어두거나 그려두거나 할 만큼 관심을 둔 것은 아니고 나 역시 기억력이 수준급이 아니기 때문이었을 테니까 그녀는 잠시 내게 눈인사를 하곤 다시 자신의 팀원과 일적인 대화를 이어갔다 승강기는 여전히 웅웅 거리는 모터소리를 일관적으로 뱉어내고 있었다      


 일층에 다다라서 승강기 모터소리는 멈추었고 이윽고 일층입니다 라는 안내음성과 함께 문이 열렸다 승강기에 탄 마지막 순서대로 내리기 시작하여 처음에 탔던 내가 마지막에 내리게 되었다 후배는 이미 저 멀리 가있었다 역시나 우리 팀다운 행동이었으나 팀이라고 부르기엔 역부족이 아닐까 생각도 들었다 심지어 발걸음을 어찌나 재촉하던지 먼저 내린 마케팅팀도 모두 앞질러 가고 있었다 회사 내 경보대회가 있다면 우리 팀이 우승일 것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을 만큼 빠른 걸음이었다 그와는 다르게 여유로운 마케팅팀은 걸음의 수와 폭 그리고 속도까지도 비슷하게 얼추 팀과 비슷한 색으로 퇴근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옅은 부끄러움이 느껴졌다 우리의 팀에 관한 부끄러움은 아니고 내가 가진 무의미한 틀 때문이었다 생각은 많지만 그것이 꼭 의미를 찾는 것으로 귀결되지 않는다 그저 뇌가 한 영역을 쓰고 있다 뿐이지 누군가에게 좋은 영향을 또 다른 누군가에게 친절을 베풀 수 있는 만큼의 지능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부끄러워졌다 나만의 온건한 완고함은 누군가에겐 강한 벽이 되었으리라 싶다 생각하니 수치스럽기까지 했다 그럴 의도도 없었고 그럴 목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누구도 탓할 수 없는 나이기에 저 멀리 소인의 크기처럼 보이는 여후배와 손바닥으로 모두 가릴 수 있을 만큼의 거리에 있는 마케팅팀을 보며 참회에 가까운 회개를 했다 그 순간 마케팅팀은 더 이상 같은 걸음을 할 수 없었는지 승강기에서 나뉘어 있던 소규모의 팀 형태로 –일본인은 일본인들끼리 프랑스인과 미국 그리고 한국인- 찢어지며 인사를 나누었다 그 모습 또한 꽤나 이국적이었다 우연히 만난 승강기의 인연이 출국 공항까지 이어져 출국장에서 서로의 안녕을 빌어주는 모습 같다랄까 생각보다 나의 삶 근처에서 새로운 것을 찾아볼 수 있는 광경이 있다는 게 다른 색채로 다가왔다 모두 인사를 마치곤 유메도 다른 일본인 팀원에서 인사를 하고 있었다 아니면 아직도 그 둘만의 회의를 하고 있던 아니면 도쿄의 자신만이 알고 있는 이자카야를 공유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유메가 데려가는 이자카야는 믿을 만하기 때문에- 대화를 마치는 듯 유메는 나를 향해 뒤돌아보았다 나도 유메를 보았다 유메는 나를 향해 걸어왔다 그녀의 얼굴엔 희로애락에 맞는 주름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무표정한 것도 아닌 미묘하고 섬세하게 감명 깊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결단 아닌 결의도 아닌 단순 나에게 가겠다는 의지만이 담긴 얼굴이었다 나는 걸음을 멈추었다 이전만큼 유메의 당돌함 혹은 조금은 당혹하게는 하는 능력을 맞이해 보아서 그런지 당장의 행동에도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몰려오는 파도에 자신을 맡기는 서퍼처럼 순응하고 이해하려 했다 걸음을 멈추는 순간에 가을바람이 선선히 나를 감쌌다 이제는 그 바람에서 서늘함보다는 신선함을 느꼈다 그리고 비어진 나의 마음 어디 한 구석에도 그 바람이 통하고 있는 것인지 응어리진 혹은 찌꺼기 같은 한숨을 한번 토해냈고 마음이 조금 더 한결 단단해진 듯 느껴졌다      


 재영 그날 이후 많은 일들이 있었지요 내가 보고 경험하지 않았지만 저는 알고 있어요     


 유메는 여전히 의지가 가득한 그러나 결의와 결단의 얼굴이 아닌 무표정에 가깝지만 그렇다고 차가운 얼굴이 아닌 모습으로 내 앞에 말을 했다 나는 그녀를 보았다 그녀의 눈동자와 콧잔등 그녀의 점들까지 그녀가 자른 머리카락의 결도 바람에 의해 느끼고 있었다 그녀는 여전히 느낌 좋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프로다움 타국에 와서 조국을 그리워하겠지만 그런 것을 티 내지 않고 자신의 할 일을 꾸준히 하는 그런 류의 프로 떠벌리지 않고 받들지 않고 자신이 가진 페이스를 자신에게도 누구에게도 베풀 수 있는 그런 옹골진 강인함 그녀를 만난 뒤 그녀가 어떤 일을 했는지 찾아본 적이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산문집을 여러 권 국내로 들여왔는데 그 과정에서 하루키와 컨택하기 위해 미국 하와이 괌 여러 곳을 따라다녔다고 한다 내가 알기론 하루키는 누군가와 지속적으로 거리를 좁히는 것을 싫어하고 모습을 공개적으로 내비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데 말이다 어쨌든 성공적으로 일본에만 있던 하루키 산문집을 한국으로 들여오는 데 성공했고 하루키의 광팬들은 우리 회사를 꽤나 매니악하게 좋아하고 항상 기대하는 마음이 있다고 들었다 그녀의 얼굴에서 그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해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모든 것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그런 얼굴을 지녔다 내가 이전에도 유메를 보았을 때 이런 감정이었는지 떠오르질 않는다 그저 한 일본인 여성이 나에게 엉뚱하게 느껴질 만한 기묘한 이야기를 건넸고 이후에도 그 기운이 이어지듯 기묘하고 오묘한 설명되지 않는 그런 경험을 했다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 내가 유메를 만나고 겪은 경험에 대한 설명을 해야 하나 싶었지만 유메는 알고 있다는 듯 나에게 온 것이고 이미 알고 있을 것이라는 확신도 비언어적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많은 일이 있었지만 다 해결되지 않았어요 재영의 무게는 조금 더 가벼워질 필요가 있어요 내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경험해서 알 거에요 분명 가벼워져야 한다는 것을     


그녀의 말을 듣고는 언제나 그랬듯이 정확하게 대답하지 못했다 어떤 대답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어떤 반응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그저 우둔한 아이 같았다 그녀는 아마 대답을 기다리는 것이 아닐 것이다 그녀는 전달자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고 그것이 어디서 기원하는지는 내가 알 필요는 없다 어쩌면 그녀는 나의 구원자일지도 모른다 분명하게 나는 그녀에게 영향을 받고 그녀의 영향력으로 나는 점점 더 인생에 보지 못하던 부분을 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대답하지 않고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혹은 영적이거나 초월적인 존재로서 내가 그녀를 바라보고 느끼고 있을지도 모른다 현실적으로 설명이 가능한 영역에서는 이미 벗어났고 이해하려 하기보다는 그저 받아들이고 순응하는 쪽이 더 옳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녀가 보는 것은 나를 넘어 나의 속 과거와 훗날을 모조리 볼 수 있는 존재였고 내가 오롯이 할 수 있는 것은 파도타기 말곤 아무것도 없었다 인생이 그런 것인가 흐름에 맞추어 춤을 추는 것이지 언덕이 나오면 걸어 올라가는 것이지 파도를 이기려 언덕을 파내려 흐름을 바꾸려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아니 알고 있었다기보다는 이것 또한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나에게 파도이자 음악이자 오름 같은 것이라고 내가 대응하고 대적하고 뒤집을 수 있는 상대가 아님을 말이다      


 앞으로 더 큰일이 올 거예요 그러나 그것은 필요한 것이에요 재영에게 그래서 미리 알려주고 싶었어요 알리는 것이 맞는지 아닌지 고민했어요 불안과 생각은 사람을 잡아먹어 그래도 재영은 확실히 약하지 않게 느껴지곤 해요 당신의 눈빛과 걸음걸이 그리고 내 이야기를 듣는 모습에서요 그래서 당신에게 말해주기로 결심했어요      


 ‘큰 일’이라고 말한 것이 불행일까요?     


 네 재영에겐 불행입니다 단면적으로는 그러나 확실한 것은 그래야만 한다는 것이에요 재영에게는


 먼저 말해주어서 고마워요 진심으로요     


잠시 시간차를 두곤 대답했다 그녀는 희미하게 입꼬리가 올라갔고 눈도 살짝은 작아진 기분에 미소를 지은 듯했다 내가 진심으로 고맙다고 한 것에 아마 답변에 관한 미소를 지은 것이었다 전달자였던 그녀는 그녀의 임무를 완수하곤 자신의 갈 길을 갔다 나는 그녀의 말을 들었다 그것은 분명 불행과 관련된 이야기였다 단면적으로는 그런데 단편적으로 가 맞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말한 단면과 내가 생각하는 단편 사이에 어떤 괴리가 있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녀는 틀린 말을 한 적이 없고 장난이나 허구와 관련된 이야기는 하지 않으니까 단면이 맞을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케이크를 칼로 가르면 단면적인 것 그 단면만을 가지고 케이크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그녀가 말한 말의 단면을 들여다보았다 불행이 올 것이다 단면적으로는 하지만 일어나야 하는 것 불행이 불행이 아니라는 말일까 단면적으로 그러니까 칼 같은 것으로 자르면 불행이겠지만 그것을 이어 보면 먹기 전 케이크와 같은 좋은 것일까 그렇더라도 불행은 불행이 맞지 않나 불행이 메워진다 해서 불행이라고 하지 않는 것은 너무 타자의 입장에서만 생각된 이야기지 않을까 그러는 사이 그녀는 사라졌다 내 시야에서만 사라진 것이지 그녀가 없어지거나 증발한 것은 아닐 테다 그녀는 분명 존재하는 존재였고 영적이거나 초월적으로 보여도 그녀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어쩐지 그녀의 말로 불안이나 생각이 확장되어 내가 흔들리지 않을 것만 같았다 오히려 그녀가 나의 세계를 확장시켜주고 있고 그에 따른 과정은 과정일 뿐이라고 하는 것 같았다 역시나 직감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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