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우 Oct 20. 2024

백색왜성 18.

18     




 오랜만에 시간이 비워질 때마다 태워오던 담배가 생각났다 짙은 담배연기 창문을 열고 들이쉬고 내쉬어 나의 숨을 볼 수 있었던 담배가 그리워졌다 유메의 말을 다시 떠올렸다 그리곤 곰곰이 생각에 빠졌다 집으로 돌아와 옷도 갈아입지 않고 그대로 소파에 누웠다 에너지가 부족한 것은 아니지만 잠시 그렇게 있고 싶었을 뿐이다 그렇게 해도 삶의 굴레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분명 그렇게 생각했다 단면적인 불행이라 그리고 유메가 이것을 나에게 얘기하지 않으려 했던 것은 ‘불안과 생각은 사람을 잡아먹는다’ 이해가 가기도 하고 이해가 가지 않기도 했다 그리고 내가 그렇게 약하지 않게 느껴졌다는 말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나의 눈빛 걸음걸이 다른 행동거지에서 약하지 않음을 느꼈다라니 그녀의 존재가 궁금해진다 하지만 이제 다시는 유메를 보지 못할지도 모른다 유메는 자신이 원할 때 나의 앞에 모습을 보이고 자신이 필요치 않을 때는 모습을 보이지 않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것이 초월적이든 비인간적인 능력이든 간에 말이다 나는 분명 기묘한 일이 있기 전 유메를 한 번만 보았고 –그전까진 같은 회사인지도 몰랐다- 기묘한 일이 있은 후 자체적 정리가 될 때까지도 유메는 보이지 않았고 다시 그녀가 필요하다 생각했을 때 불쑥 등장해 더 당혹한 얘기를 꺼내곤 나의 현실에 재차 사라졌다 이것을 어떻게 인간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지 결론이 나지 않을 문제일뿐더러 이해란 것은 어쩌면 사치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녀는 그런 존재임을 사실 나는 알고 있는 것이다 인간이든 영혼이든 어떤 것이든 결국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은 단 하나도 없다는 것 그것이 진실이었고 그것만이 내가 알 수 있는 단 한 가지였다 어쩌면 내가 그녀에게 할 수 있는 것은 순응뿐이다 그녀가 나에게 온 것은 분명 호의적인 행동이기에 그것을 순응할 뿐이고 내가 그녀에게 마지막으로 고맙다고 한 것 역시 어쩌면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고 있는 그녀에게 나름의 존중을 표한 것이다 결국 이해를 할 수 있는 것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고 순응과 존중뿐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목욕을 하고 싶어 졌고 간단하게 요리를 해서 맥주 한 캔과 하루를 마무리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이 정리되어 감에도 담배를 피우고 싶은 욕구는 쉽게 떨치기 힘들었다 그러나 금연을 번복하고 싶지 않은 욕구가 더 강했다 내가 나 자신에 대한 약속을 거스르고 싶지 않았고 더군다나 직장에서 담배친구였던 그를 굳이 다시 보고 싶지 않기도 했다 그에게 다시 담배를 핀다고 설명하면 뻔한 조롱으로 참사가 일어날 것만 같았다 대신 냉장고에 있던 마른오징어 다리 하나 입에 오물오물 물고는 따듯한 물로 씻고 싶은 만큼 정성껏 씻었다 그렇게 하루는 쉬운 듯 어두웠고 새로운 듯 진부했다      


 아침에 이른 전화가 바삐 울렸다 알람이 울리기 전임에도 전화에서 느껴지는 다급함이 비전달적으로 나에게 전달되었다 눈을 뜨고 벽에 걸린 시계를 바라보니 여섯 시 해가 떠있는 것을 보니 아침 여섯 시임을 확신했다 어제 따듯한 물로 샤워를 하고는 몸이 나른함을 넘어서 노곤하여 입에 물고 있던 오징어를 냉장고에서 더 꺼내와 맥주 두 캔과 함께 천천히 먹고는 소파에서 자버렸다 기억이 선명하지는 않았지만 눈앞에 보이는 광경과 몸 상태를 느껴보곤 알 수 있었다 나름 맥주를 많이 마셔본 자가 가질 수 있는 견해였다 핸드폰에는 엄마라는 두 글자가 표시되어 있었다 엄마는 나에게 전화를 잘하지 않는 인물이다 불편한 것이 있어도 필요한 것이 있어도 전화하지 않는다 왜인지는 사실 잘 모른다 이전에 엄마와 대화를 했을 때에도 –마지막 대화지만 몇 년 전이다- 성향이 안 맞는다는 것을 일찍이 알았고 부딪히는 것을 피해왔었다고 한다 나는 그녀를 겁쟁이라고 느끼기도 한다 어찌 됐건 차임벨은 길게 두어도 끊기지 않았다 끈질기게 울리던 핸드폰을 들고 전화를 받았다 엄마의 용건은 그러했다 폐암을 진단받았었던 그 의사에게 다시 정확한 진단과 상황 그리고 이후 진행과정에 대해 설명을 들으러 갔었다고 그런데 알고 보니 폐뿐만이 아니고 여러 곳에 전이가 있었고 폐는 말기에 가까웠다고 했다 그 말은 즉슨 사실상 시한부였다는 것이고 이것은 장차 몇 달 전의 얘기라고 했다 나는 어이가 없었다 역시나 엄마는 필요한 것도 얘기하지 않았던 것이고 왜인지 모르지만 감추고 있었던 것이다 아들이 있음에도 알릴필요가 없다고 느끼진 않았겠지만 어떤 이유에서 간에 참으로 애석하고 안타깝게 느껴졌다 서로에게 얘기할 수 없음에 말이다 그래서 엄마의 전화 목적은 이러했다     


 지금 병원에 입원해 있다 그런데 상태가 좋지 않아 병원으로 좀 와야겠다     


였다 그러곤 뚝 끊었다 이런 상황에서 슬픔을 느낀다면 그것은 참된 인간일까 잠시 고민해 보았다 어떤 것에도 존중이 있는 것 같지 않은 대화였고 심지어 부모자식관계에서도 존중이 없는 것은 사실 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일단은 좋지 않은 상황이라기에 서먹한 나의 부모지만 어쨌든 나는 그들의 자식이고 그 빈자리를 항상 느끼지만 빈자리에 내가 있어야만 했기에 그제서야 나를 부른 것이리라 생각했다 바로 팀장에게 전화했다 새벽 여섯 시임에도 불안정한 상황은 불안정한 것이고 그것은 안정되리란 기대를 해서는 안되기에 빠른 결정이 필요했다 팀장은 잠에서 막 깬 듯 짜증스러운 목소리와 점잖음 그 어느 중간지점의 상태로 나와 전화했다 나는 사실대로 전달했고 연차를 써야 함을 말했고 역시나 팀장은 두뇌회전이 빠른 사나이였기에 칼같이 그리고 재빠르게 안부 위로 응원 허락에 대한 모든 의사를 표시했다 역시나 존중이 누락된 끊음으로 전화를 종료했다 아마 곧 출근일 테지만 조금은 더 베개와 씨름하고 싶었을 것이다 찌뿌둥한 몸을 일으켜 기지개를 시원하게 켠 다음 옷방으로 갔다 병원이라는 곳은 평상시 몸 상태를 더 갉아먹어대는 곳이다 환자든 보호자든 방문객이든 그래서 평소보다는 편하게 입어야겠다 싶어 카키색 카고 팬츠와 회색 긴팔 티셔츠를 입고 집을 나섰다    

  

 병원은 본가 근처에 있었다 나름 대학병원급인지라 입구에서부터 누구에게 왔고 목적은 무엇이며 마스크는 있는지 환자가 아님에도 아픈 증상이 있는지 여러 명에게 물음 당했다 겨우겨우 병원정문 그리고 안내데스크 승강기 병동간호사 등등 여러 인물을 거쳐 아버지가 있는 병실로 안내받을 수 있었다 그곳에는 몇 달 사이 부쩍 시간이 흘러버린 것 같은 아버지가 있었다 쉽게 알아볼 수 없는 형체로 말이다 나는 그 몰골을 보고는 더 이골이 났다 이런 상태임에도 아들에게 말하지 않는 부모에게 더욱더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느꼈다 그들은 왜 이러는 것인지 이렇게 좋지 못한 순간에 어울리는 격렬하고 불안한 감정을 느꼈다 아버지는 코에 얇은 투명색 호스를 하고 있었다 그 호스는 물이 담긴 플라스틱 원통에 연결되어 있었고 물통은 또 벽에 박혀있었다 내가 들어왔음에도 아버지의 눈빛은 흐릿했고 기력은 쇠약해져 눈을 뜨고 있는 것 자체가 신기하게 여겨졌다 분명 지금 상황은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최악의 상황에 가장 가까운 것 일 테고 그 최악이라는 것은 아마 죽음이라는 명의 끝 지점일 테다 그것을 나는 알았음에도 불안정하고 분노가 치밀어 오름에도 슬픔과 관련된 감정엔 동요하지 않았다 부모 그들만의 숭고한 완고함에 치를 떨고 있던 것이다 그 옆에 있는 엄마는 나름 나를 환대하는 듯했지만 그것도 불완전했다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고 사실은 자신의 배우자의 생을 볼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 정신과 마음에 모든 부분을 사로잡아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침대에 누워있는 듯 앉아있는 듯 눈빛이 흐릿하게 쇠퇴해진 아버지를 보았다 


 아버지는 언제나 강건했다 눈빛이 또렷했기에 청년시절 어르신들이 무엇을 하는 사람이냐고 물어보기도 했다고 영웅담처럼 말하곤 했었다 청년의 모습을 본 것은 아니지만 청년의 모습을 띈 아버지를 몇 십 년간 보았었다 정말이지 언제나 건강했고 정신은 또렷했으며 어느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그리고 실제로도 지지 않은 그런 심신의 소유자였다      


 질병과 시간에 육체는 한낱 껍질에 불과하던가 질병에 맞서지 못한 육체는 모든 것을 앗음 당했다 분명 내가 알던 아버지는 아니었다 내가 알던 아버지는 이미 산화해 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푸른빛이 빛났다 이미 다 타버린 완전한 불처럼 푸르렀다 실제로 그의 몸도 푸르게 느껴졌다 양팔에는 굵디 굵은 주삿바늘이 꽂아져 있었고 그 위로는 굵은 주사를 견딜 수 없었던 것 같은 푸른 멍이 퍼져있었다 그러고 보니 몸에 있는 멍 때문에 실제로 푸르게 보인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병실 창밖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병실로 들어와 병실을 이루고 있는 모든 것을 휘감았다 특이하게도 이 병원은 병실마다 각기 다른 풍경이 전등 옆에 달려있었다 의도한 것인지 혹은 이 병동만 그런 전통을 가진 것인지 알 수는 없었다 바람은 역시나 풍경도 휘감았다 바람을 맞이한 풍경과 그 풍경이 속한 병실은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아버지가 있는 병실엔 승려들이 들을법한 풍경소리가 가득 울렸다 마치 이 모든 이들의 고통을 대신 표현해 주듯 잔잔했지만 강렬했다 때로는 다른 병실에 있을 풍경들과의 음 조화로 인해 울음처럼 들리기도 했다 서로가 서로의 음을 보조해 주었고 착각일지도 모르지만 흩날리는 풍경 음은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돌보고 있었다 아버지를 둘러쌌고 엄마를 둘러쌌다 옆에 누워있는 의식이 없는 –혹은 자고 있는- 환자 간호사들 다른 보호자들 모두를 감싸곤 위로해 주는 소리 같았다 그 소리 안에서 나는 나름의 평정을 찾을 수 있었다     

 

 아버지와는 대화를 할 수 없을 것 같아 엄마 옆에 앉아 잠시 시덥잖은 대화를 나누었다 최근 들어 기침의 상태가 계속해서 안 좋아졌다 가끔 피도 섞여 나왔고 정신을 차리지 못할 때도 있었다 분명한 것은 상태가 좋지 않은 것은 확실하다 미리 얘기하지 못한 것은 미안하다 경황이 없었고 너도 바빴을 거라 걱정시키지 않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그 말들이 오히려 나를 세게 찔러댔다 그와 더불어 큰 무력감을 느꼈다 그 어떤 것도 나의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없기에 다시 뒤로 돌릴 수 있는 것도 없거니와 다시 뒤로 돌릴 일들도 딱히 반기지 않은 나에 대해 환멸을 느꼈다 엄마가 말한 것에 특별한 대답을 하지 않았다 대답을 할 것도 없었다 추임새 같은 대답들만 하고는 다시 오겠다 얘기하고 일어섰다 병실을 나가려던 중 아버지를 한번 뒤돌아 바라보았다 아버지는 지그시 눈을 감고 있었다 눈꺼풀이 조금씩 움직이는 것으로 보아 잠에 든 것 이거나 고통을 삭히는 중인 듯했다 엄마말로는 의식이 또렷하지 않아 대화는 거의 하지 못하고 있다 했다 이 모든 것들은 진실로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다시 풍경소리가 듣고 싶었지만 바람은 사그라들어 어디론가 날아간 듯했다     


 병원을 들른 사이 어느새 어둑어둑 해졌다 여름의 한복판에 있을 때엔 이 시간 즘이 되어도 해가 꽤나 어스름히 비추어 나의 그림자도 확인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정말 자세히 보아야 그림자가 보일 듯 말 듯 하다 구름이 많은 것인지 먼지가 많은 것인지 하늘엔 별들이 보이지 않았다 그 순간 내가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했다 예수가 태어난 때 예수에게 가기 위한 동방박사들이 별을 따라간 것처럼 내가 별을 삶에서 중요시한 적은 없지마는 분명하게 지금 이 순간 길을 잃은 심정이었다 누군가에게 가고 있던 중이었을지도 모른다 난 어디로 가고 있었던 것일까 가슴이 조금 답답해져 왔다 숨을 쉬는 데에 막막한 느낌마저 들만큼 가슴이 쿵쾅거렸다 어깨는 꼬부라져 말려들어가 흉곽을 더 조였고 숨을 쉬지 못하게 될까 공포심이 들었다 방금 병원에서 나왔고 조금만 걸으면 응급실이 있다 그곳으로 가기에도 벅찼다 형태 없는 두 손이 폐를 콱 잡아 일말의 공기도 나에게 허용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오른쪽 옆 조형물에 오른손으로 기대었다 무슨 조형물인지 몰라도 굉장히 차가웠다 청동인가 철인가 청동으로 했을 리는 없다 지금 세상에선 녹슬고 말아 버릴 테니까 식은땀이 흐르는 이마를 왼 손바닥으로 작게 쓸어 올린 다음 현실을 생각하기로 했다 공황장애일 터 정신건강에 관심이 많은 터라 대처법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나의 공간을 상상하자 내가 지금 딛고 있는 세상을 생각하자 그러면서 나의 숨을 천천히 고르게 쉬어보자 나는 지금 병원 앞에 있다 병원 정문을 걸어 나왔고 시간은 일곱 시다 그것은 병원정문 앞 기다란 조형물에 달린 높다란 시계를 통해 본 시간이었다 분명히 일곱 시라는 것이다 조금의 오차는 있을지언정 실제 시간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부들거리는 왼손으로 왼쪽 뒷주머니에 있는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핸드폰의 화면을 켰다 디지털 화면에 보인 숫자는 현실이다 나의 발은 대리석을 밟고 있다 실제 대리석은 아니겠지만 대리석 같이 조형한 값이 너무 싸지도 너무 비싸지도 않은 계단 위에 서있다 계단은 총 다섯 개 다른 길에는 휠체어가 올라갈 수 있도록 만든 아스팔트 길이 있다 나는 분명 지상을 딛고 있는 것이고 나의 운동화를 거친 발바닥의 감각은 땅 위에 서 있음을 직시해 주었다 현실이 맞다 나의 손의 감각을 느꼈다 분명 차갑게만 느껴졌던 오른손의 감각은 이제 나의 온기가 전달돼 미지근해졌다 그럼에도 나의 손에는 아직 냉기가 남아있었다 뼛속 깊이 철 구조물의 냉기가 나에게 남은 것이다 그 순간 숨이 제 숨으로 돌아온 것을 느꼈다 지긋한 공포심에서 벗어났다 변한 것은 나의 옷 땀으로 젖었고 머리카락 역시 땀으로 얼굴에 덕지덕지 붙었으며 손과 다리에 힘이 꽤나 빠졌다는 감각뿐이었다 시간은 십분 남짓만 흘렀고 세상이 변한 것은 없었다 계단이 무너지지도 나의 숨이 끊어지지도 아버지가 죽음을 맞이한 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현실은 차가움을 유지했다

이전 17화 백색왜성 17.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