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우 Oct 20. 2024

고리 16.

16      




 유메가 아니었다 유메가 아니었다 

 그녀였다 그녀였다 

 나의 곁을 떠났던 그녀였다      


 너무나도 혼란스러웠다 반응하는데 까지 한 세기와도 같은 공백이 존재했다 어지럽게 느껴졌다 몸이 흔들리지 않았지만 유메가 아니라는 것에 머리가 아파왔다 머릿속에 들어있는 모든 것들이 빨려나가는 느낌을 받았다 어지럽다 못해 쓰러질 것 같은 느낌도 받았지만 눈앞이 어지럽게 돌지는 않았다 나는 그녀의 얼굴을 보고 있었고 그녀 역시 천천히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보았다 나와 눈이 마주쳤고 그녀는 마치 내가 올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는 듯 눈빛의 흔들림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확신하고 있었다 무언가를 내 안의 무언가를 확신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어떤 것을     


 그녀의 분위기가 달라져있었다 떠나기 전 담배와 술에 찌들어 습기 가득한 여름날의 빨래와 같이 추욱 늘어졌던 어깨라인 쉐잎은 곧게 펴져 있었고 척추부터 시작되어 목까지로 이어지는 기둥 같은 허리는 원상태로 돌아오는 데까지 큰 고통이 있었음을 가늠하게 만들었다 구부정하게 늘어진 그때의 모습을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건강해 보였다 눈빛 역시 건강한 신체에서 빗대어져 나오고 있었다 나는 잠잠 코 그녀를 쳐다보았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거니와 유메가 아닌 그녀가 있는 상황에 대한 불인 지에서 오는 지독한 불안감에 휩싸였다 다시 그때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 들었다 모든 것이 사라진 것 같은 그런 느낌 그런 종류의 느낌은 사람을 깊은 구덩이에 발로 차 빠뜨려 버리는 그런 느낌이다 아득한 공포 그리고 암담 당시와는 다른 그녀의 모습에서 더욱더 절망을 느꼈다 변하지 않은 것은 나뿐인 이런 절망스러움 시간이 꽤 흘렀음에도 나의 시간은 더뎠고 그녀의 시간은 가득하게 차 보였다 그것을 가늠할 수 있는 것이 없더라도 무형의 것이라도 알 수 있었다     

 

 오랜만이네     


무미건조하고 메마른 건초 같은 인사가 가게 안에 울려 퍼졌다 그 음성은 흔히 듣던 확실한 그녀의 목소리였다 그렇다 수많은 감각들이 수용하고 처리하고 있는 것들은 꿈이나 허상이 아닌 현실이라는 것을 정확히 일러주고 있었다 언제나 그녀의 목소리에서는 첫 단어부터 중간단어 마지막 맺음말까지 음정이 같게 느껴졌다 스타카토처럼 딱딱했다 그래서 그녀가 맞음을 그녀의 외형적 모습뿐만이 아니라 목소리에서도 그리고 분위기에서 마저도 알 수 있었다 나를 떠난 그녀가 분명하게 맞는 것을 


 나도 놀랐어 여기서 보게 될 줄은 그런데 있지 어쩐지 이곳에서 볼 것 같은 기분이었어 너를 말이야     


 그녀의 말 구성 역시 그녀였다 외국어스러운 한국말 마치 학교에서 배우던 영어 문법구조를 그녀는 한국어로 하고 있었다 혹 영어를 잘하는 것일지도 모르는 것이고 어쩌면 외국에서 오래 살다와 한국어에 대한 미흡함이 있을지도 모른다 각자의 집에서 서로의 생활 속으로 들어갔을 당시엔 그런 궁금증을 품을 일도 없었다 대화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질문이 있으면 답변을 했을 뿐이다 질문이 없으면 담배를 피웠다 대답할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담배를 피우지 않으면 맥주를 마셨다 맥주를 마시지 않으면 우리는 몸을 섞었을 뿐이다 유메를 쫓기 위한 기획은 무산되었다 그녀를 만남으로서 그녀는 마지막으로 떠나기 전 자신에 대한 궁금한 것이 없느냐 물었던 것이 기억났다 그녀는 혹시 궁금증을 유발하기 위해 나를 떠난 것인가 궁금했다 그리고 실제로 음성으로 물어볼까 싶었지만 그만두고 그녀의 말에 집중을 했다 그녀가 말을 꺼내려 입을 떼고 있었다     


 떠나야만 했어 이유가 확실했어 분명하게도 당시 내겐 그런 의지가 있었어 떠나야만 한다는 의지가 그래서 더더욱이 아무 말도 하지 못했어 너에겐 미안하지는 않아 내 이유가 너무나도 명확해서 그런지 그 이유를 이제야 설명해 줄게 너무 늦었지만 그러면서도 지금이 제 때라고 느껴져 생각이 행동으로 옮겨지는 순간에는 불같이 큰 에너지가 필요로 하고 그 불에 의해 움직임이 실제 시작되고 나면 기차처럼 매섭게 몰아가게 되지 그래서 불이 식어가고 조금은 더 차가울 수 있을 때 얘기 할 수 있기를 고대했어 그렇지 않으면 좋지 못한 말만 나올지도 모르잖아 나는 벗어나고 싶었어 너의 곁을 아니 벗어나야 했어 우리는 분명 한 시대를 서로에게 기대고 빗대고 의지하고 투영하고 살아갔지 항상 같이 있었고 항상 같은 것을 했어 난 그래서 그 시대를 잘 지내 보냈을 수 있다고 생각해 분명하게 그것은 부정할 수 없어 그러면서 인간이라는 것은 참으로도 이중적이고 악독하다고 느껴 나는 그것을 내 안에서도 찾을 수 있었고 말이야 한 시대를 풍미했던 그런 기둥 같았던 사이가 한순간 지나버리니 기댈 수 있었던 기둥은 짐 덩어리였고 오히려 패악으로 몰아가는 듯 느껴졌어 바뀔 수 없음에 치를 떨었고 바뀌지 않음에 환멸을 느꼈지 우리는 그런 관계였어 서로가 서로를 잡아먹고 잡아먹는 살이 돋아나면 다시 먹어버리고 상처를 만들고 그 상처가 다시 아물기 시작하면 다시 짓누르고 뜯어버렸지 그렇게 우리라는 개념은 퇴화되고 멸망하고 있었어 그래서 나는 너의 곁을 떠난 거야 악하다고 느꼈어 그럼에도 나는 너에게 고마운 감정이 많아 분명 너는 나의 손을 잡아주었어 내가 어려웠던 나날들에 기둥이 되었던 것은 부정할 수 없으니까 말이야 하지만 어느 순간 이제는 내가 떠나야 할 때라고 느꼈어 그래서 너에게 물었지 우리 관계가 조금이라도 좀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질 수 있을까 하고 말이야 그때 우리는 담배를 피우고 있었지 둘 다 아 이제 난 담배 피우지 않아 단숨에 끊어버렸어 너의 집을 나오면서 모두 분질러 버렸어 그러곤 보이는 휴지통에 넣어버렸어 라이터도 말이야 조금 아끼던 브랜드의 라이터였지만 부러뜨려버린 담배들과 함께 휴지통에 던져버렸어 너의 집을 박차고 나오면서 나는 새롭게 될 수 있는 여건이 주어진 것이고 그것을 잡아야 내가 더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어 네가 나의 손을 잡아주던 그 시기 나는 죽음에 가까웠어 그래서 잡은 너의 두 손의 온기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지 뭐야 너의 집을 나서면서도 계속해서 집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수차례 뒤 돌아보았어 너를 다시는 못 볼 것 같아서 다시는 이 순간들이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게 될 것 같아 조금이라도 하나라도 눈에 담고 싶었어 그렇게 분명하게 너와의 시간 우리라는 시간은 중요했고 기억하고 싶었어 많이 달라졌지 그 순간부터 나는 나의 모든 것을 갈아치우고 싶어 졌어 심지어 이름까지도 개명해 버렸어 말해줄 만큼 거창한 의미가 있는 이름은 아니지만 이름을 바꾼다는 것 자체가 분명한 의지가 있었다고 말하는 거야 자 이렇게 그때 하지 못한 떠날 때 너에게 알려주지 못한 이야기를 조금은 추상적으로 조금은 직설적으로 얘기한 거야 이렇게 그리고 만나서 얘기할 수 있어서 나는 정말 기뻐 너는 뭔가 여전해 보여 여전히 뼈아파 보이고 여전히 깊은 심연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네 이제는 내가 손을 잡아 주어야 할 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어 그런데 지금 나는 그만큼 강하지 않아서 어려울 것 같다고도 생각하면서 말하고 있어

      

 그녀는 기나긴 편지 같은 말을 속사포처럼 쏟아냈다 마치 크나큰 지진에 의해 생겨난 쓰나미처럼 모조리 쓸어 내버렸다 그리고 그렇게 논리 정연한 그녀의 말을 처음 들어보았다 분명하게 그녀의 말투 말하는 방식에는 불완전함이 존재했었다 그리고 현재도 그렇게 느껴진다 그러나 달라진 것이 있었다 확실함 그녀는 그녀만의 확실함을 확신하고 있는 느낌을 강하게 전달받았다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 정말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여전히 나는 그 자리 그대로인 것 같았다 그녀가 떠날 때 나에게 물었던 질문에 대한 대답을 나는 제대로 하지 못했다 유메에게도 마찬가지다 나는 분명하게 대답하지 못했다 어떤 것에도 나에 대한 확신도 없을뿐더러 불확실한 어떤 것에 대해 직면할 용기조차 없던 것이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그리고 현재가 과거가 된 이 시점에서의 새로운 현재에서도 말이다 그녀는 나의 반응을 살피지 않았다 그만큼이나 그녀는 자신의 생각과 의지와 그것을 행동을 옮긴 것에 확신이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나를 조금은 비참하게 만들었다 나와 관련된 이야기를 내뱉음에 있어서 나의 존재가 필요했지만 사실 그녀 앞에 놓여진 나는 편지지의 종이와도 같은 것이었다 생각을 마주 늘어뜨리고 담아둘 만큼 담아도 되는 감당하지 못해도 감당해야만 하는 편지지 같은 그런 종이 결국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변한 것도 없는 내가 변해버린 그녀에게 어떤 말을 건네어 줄 수도 없었다 상투적인 대답마저 나에게서 이미 떨어져 나가 버린 어떤 것에 대한 대답마저 불필요한 것임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그녀는 말을 마치고는 나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다가 그녀의 손을 바라보았고 손에 대한 관찰을 마치자 손톱 하나하나의 모양과 상태를 확인하고 다시 나의 얼굴을 보았다 눈이 마주쳤다 나의 눈에선 불투명함을 그녀의 눈에선 투명함을 확인했다 서로의 다름을 확인했고 그녀는 다시 확신한 듯했다


 마지막일 테지 잘 있어 베풀어 준 만큼 베풀지 못해 정말 미안해     


그녀의 마지막말로 그녀는 자신의 입장을 종료했다 컴퓨터의 종료버튼을 누르는 것처럼 정말 종료하시겠습니까에 대한 대답을 네로 마무리지었고 그녀는 다행히도 나에게 최대한 정중했다 감정의 동요는 보이지 않았다 그녀가 말한 감정의 고조를 넘어서 꽤나 식어버린 마음으로부터 시작되어진 전달이었기에 그녀는 나를 떠나 성인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것은 그녀의 몸 전체에서 보이는 기품에서부터 사실 말하기 전부터 파악할 수 있었고 그것을 실물적으로 귀에 들리는 말로 가슴에 남는 말로 나에게 전달을 했을 뿐이다 사실 말을 듣지 않고 그녀의 모습만을 보고 문을 열고 나왔어도 다시는 그녀와 마주칠 일도 그녀와 엮일 일도 그리고 다시는 과거로 돌아가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그렇게 확실하게 어떠한 부분이 나에게서 적출되고 박탈되었다



이전 15화 고리 15.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