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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항상 앉아있던 자리 그 자리에 가지런히 앉아있었다. 연필이 책상 위에 당연시 올려두어져 있는 것처럼 그녀는 그곳에 있어야 할 자리이기에 있는 느낌이었다. 그 감각은 마치 꿈을 꾸는 듯했다. 사실 알고 있었음에도 현실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감각으로 꿈이라 믿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유메는 눈앞에 있었고 현실임에도 그리고 분명 감각의 개안이 있었음에도 하늘을 유영하는 꿈을 꾸는 듯 붕 떠있는 느낌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오랜만이네요
그렇죠 재영도 잘 지냈나요
말씀해 주신 것처럼 정말 많은 일이 있었어요 그런데 일어나야 할 것 만 같았어요 이제 와서 돌아보니 말이에요 그랬어야만 하는 일들 유메가 사실 개입한 것은 전혀 없다고 결론지었어요 그저 유메는 전달했을 뿐이죠 미리 그렇죠
맞습니다 전달자 역할을 했어요 예측 아니고 예지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있는 사실을 알려준 것이죠
생각했던 것이 맞았다 그것이 잘 된 일인지 모르는 것이 나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일들로 인해 무언가 제거된 느낌을 나는 느꼈어요 유메가 처음 제가 말해주었던 무엇이 모두 제거된 것일까요
그건 모릅니다 말했듯이 예측 예지가 아니었어요 하지만 이제는 제가 재영에게 전달할 것은 없어요 그것은 분명해요
나는 유메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 속에서 이전과는 다른 이상함을 느꼈다 그녀의 이국적인 말투가 아닌 그녀 자체에게서 초월적이라고 느꼈던 부분이 아닌 이상함을 감지했다 그녀의 점이 사라진 것이었다 분명 그녀의 얼굴엔 점이 많았다 이 자리에서 몇 달 전 바로 이곳에서 나는 그녀의 얼굴을 마주 보며 그녀의 얼굴에 새겨져 있던 점들의 개수를 세어보았었다 –지금은 기억나지 않지만- 하지만 지금 그녀의 얼굴엔 점이 없다 분명하게 있던 것이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아 제 얼굴에 점 사라졌어요 저도 상황파악이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분명 없어졌어요 저도 인지하지 못했어요 어느 순간 깨달았을 뿐입니다
잠시 침묵이 일었다 둘 중 누구도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식탁 위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식당이었지만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 더 자연스러웠다 그저 떡갈나무 테이블의 나무의 결만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 뒤에는 아이보리 색 벽이 있었고 그녀의 옆에는 투명한 유리창이 있었다 깨끗한 창이었다 깊은 투명함이 깃든 유리였다 가게 안엔 유메와 나 그리고 사장을 제외하곤 아무도 손님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지 않았다 침묵 속에서 침묵임을 감지하지 못한 채 시간은 흐르고 있었다 시간이 흐른다는 것은 유메 뒤에 시계가 있었기에 그리고 시계 속 초침의 움직임을 보고 있었기에 알 수 있었을 뿐이다 유메의 점이 사라진 것은 나와 관련이 있을까 있겠지 그녀의 점은 어쩌면 나와 관련성이 있어진 순간부터 하나둘씩 생겼을 지도 혹은 내게 쌓인 덩어리의 무게나 개수마다 하나씩 추가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어쩌면 나의 수용체이자 전달자였고 그 모든 것은 일어나야만 하는 일들이었다는 것을 모든 것들이 말해주는 듯했다 유메는 나의 생각이 어디론가 떠돈 뒤 다시 의식 앞으로 도착할 때까지 아무런 움직임도 반응도 하지 않았다 그저 정면에 있는 나를 응시했다 나의 눈을 응시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나의 안에 그녀가 말했던 ‘무엇’의 존재여부를 파악하고 있는 것일지도 정말로 그녀의 점과 나의 ‘무엇’엔 어떤 연결점이 존재했고 무엇이라는 덩어리가 어떻게 된 것인지는 전혀 알 수 없지만 그녀의 얼굴에 빗대어져 생각해 보면 그 무엇이라는 것에 실체가 있었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
가게를 나왔다. 마지막 유메 얼굴에 있던 점이 없어짐을 확인하곤 그리고 기나긴 침묵을 거쳐 이제는 일어나서 떠나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일어나 가게를 나왔다. 다시는 가게를 가지 않게 될 것이라 생각헀고 다시는 유메를 보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것은 분명 현실이다. 유메는 꿈같은 존재였을 뿐. 이제는 꿈에서 깨어 현실에서 살아가야 하는 일만 남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