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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겨우 유메라는 어떠한 인물과 얽힌 일을 글로 혹은 누군가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의지는 아니지만 풀어낼 수 있는데 까지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오랜 시간이라 함은 실제 십 년에 가까운 시간이 걸렸으니 말이다. 유메는 나에게 꿈같은 어떤 것을 선사했다. 그것이 꿈이 아님은 분명하지만 그것을 꿈이 아니라고 표현하기엔 무언가 비현실적인 부분이 많다. 그리고 더욱이 너무나도 초월적인 면이 많고 현실에 빗대어 설명하기엔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너무나도 많다.
마지막으로 유메를 만나고 난 뒤 꽤 오랜 시간이 지나 우연히 지나가며 본 이자카야는 사라졌다. 털보의 가게와 동일하게 바닥엔 떨어진 전깃줄들과 하얀 먼지뿐이었다. 유메는 당연히 없었다. 유메는 나에게 무엇인가를 전달했고 그것은 일어나야 할 일이었지만 그것으로 인해 나의 삶은 많이 변화했다. 수많은 상실이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상실이라는 것은 슬픔과 관련된 어두운 것이라고만 생각헀었다. 상실. 단어자체로만 따져도 좋게 보일 수도 좋게 느껴질 수도 없는 말이다. 그런데 나는 상실을 겪고는 나의 가슴속에 응어리진 실타래가 길게 풀어져 단순한 선이 되었고 그 선은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줄 같은 것이 되었다. 당시 많은 상실로 가슴 깊이 큰 구멍이 났다. 그것은 아직도 메워지지 않았다. 십여 년이 흘렀음에도 그곳에 어떤 것을 넣을 수도 어떤 것들이 채워지지도 않은 것이다. 그런데 그 구멍은 나의 숨과 정신과 의식이 흐르는 공간이 되었다. 누군가에게 눈으로 보여줄 수 없는 무형의 것이지만 분명 그 구멍이 존재하지 않아야 할 것들로 메워져 있었음은 확실했다.
아직도 이따금씩 그 해를 생각하곤 한다. 그 해의 여름. 매우 따가웠고 매서웠다. 그 안에서 나는 누군가를 만나 같은 슬픔을 부둥켜안고 서로를 껴안았다. 나와는 다르게 상대방은 고통받지 않게 되었다. 미안하다고 했다는 것은 기억난다. 그리고 그 사람은 나의 곁을 떠나 더욱 빛나는 모습이 되었다. 첫 번째 상실이 있은 이후 짧은 시간 안에 아버지가 세상 등졌다. 아버지와 나와의 사이엔 깊고 널찍한 강이 존재했다. 그 강을 서로 건너고 싶어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둘 다 겁쟁이 었던 것 같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말이다. 그리고 아버지가 떠날 때까지 나는 그 강을 건너지 못했고 아버지는 건너지 못한 채 떠났다. 나는 그제야 그 강에 발을 담가 보았고 생각보다 강은 너무나도 얕았다. 그리곤 강물에 깊숙이 잠겼고 한 사내를 애도했다. 두 번째 상실이 있은 후에야 아버지에 대한 부정을 부정하지 않으며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그리곤 주변에 많은 것들이 정리되었다. 그것 또한 크게 봤을 때 상실에 포함된다고 회상한다. 스스로 상실을 만들었고 자연스럽게 그렇고 그렇게 되었던 것도 있고. 그리곤 나의 가슴엔 큰 구멍이 생겼다. 상실. 유메는 나에게 일어나야만 하는 일이라고 얘기했다. 그리고 필요한 것이라고. 나에게. 다시 복기해 보니 정말 그랬다. 정말로. 이후 항상 꾸던 악몽은 사라졌고 그 이후 나는 나만의 길을 떠날 수 있게 되었다. 회사 속에서 정해진 규율과 규정에 붙잡힌 생활에서 벗어나보니 어른들과 상사들이 입이 닳도록 얘기하던 불행은 세상 어디에도 없었다. 오히려 상실이 있은 후 나는 나를 더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 분명한 것은 어떤 것이든 잃어보고 경험해 보니 내가 살아가고 있던 세상은 너무나 좁고 이후의 삶은 너무나도 넓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종종 그때를 생각한다. 일본인 여자. 유메. 그리고 수많았던 상실. 그리고 상실로 발생된 나의 변화. 그럼에도 변한 것은 없는 세상. 그 안에 나. 과거의 나.
거대했던 변화는 결국 다시 돌아 세상 속에 있었고 그것은 어떤 것을 유발했지만 어떤 것을 유발하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일어나야만 했던 것이었고 그것은 나에게 변화를 발생시켰지만 변화는 세상에 어떤 영향도 주지 않았다. 세상은 세상일 뿐.
그래서 나는 더욱더 그날의 여름의 시작점에 서 있어보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