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물을 만났다. 푸른색이었고 여느 강과는 다르게 안개 낀 바다를 보는 것 마냥 수평선이 희미하게 보였다. 되돌아올 수 없는 강일까. 나는 오른발을 강에 담갔다. 그 강의 온도를 확인했다. 강은 생각보다 차갑지 않았다. 강이 생각보다 차갑지 않아 놀랐고 그와 동시에 안심했다. 어쩌면 나는 강을 건널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왼발도 강에 담갔다. 온전히 느껴지는 강물의 온도에 더욱더 마음이 편해져만 갔다. 이대로 강을 건널 수 있다면 그간 내가 겪어왔던 삶의 고통이 정말로 사라질까 하는 기대감에 부풀었다. 풍선만큼이나 부풀어진 나의 기대는 진실이길 빌었다. 살아가던 고통의 양이 내가 버틸 수 있는 양을 넘어선 지 오래였고 내가 버틸 수 없어 뻗었던 손을 잡아준 이는 없었다. 있었어도 내가 몰랐을지도. 보통 강은 걸어 들어갈수록 깊어기지 마련인데 이 강은 그렇지 않았다. 발목아래 언저리에서 찰랑이는 미온수의 강물은 여전히 나를 안도하게 만들었다. 생각보다 쉽다.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생각보다 편안하다. 이대로 가다 보면 세상이 달라지겠지. 이대로 걸어가다 보면 내가 안고 있던 무게도 덜어지겠지 했다.
지금 내가 밟고 있는 나의 세상에 내가 없다면 세상은 달라질까. 전혀. 지구는 여전히 자전하고 공전하고 있을 것이다. 물은 그대로 물이고 산은 산이다. 내가 밟던 땅은 누군가 밟아도 무너지지 않을 것이고 나라는 그대로 온건히 국민들을 자국 속에서 평안하게 만들 것이다. 바람은 계절에 따라 따듯하기도 차갑기도 시원하기도 뜨거울 것이다. 누군가는 물리적인 시간의 흐름대로 나이를 먹을 것이고 누군가는 새로 태어나고 누군가는 또 세상을 등질 것이다. 나 하나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은 먼지가 이곳에서 저곳으로 이동할 뿐. 어느 곳에 미치는 영향이 없음에 분명하다. 그런데 나는 왜 강을 건너지 않았는가.
강은 분명 나에게 안정감을 주었다. 너무 따듯하지 않고 나의 체온과 비슷했던 그 온도. 어릴 적 아버지와 같이 가던 목욕탕엔 미온탕이 있었다. 보통 펄펄 끓어오르는 온천물 같은 탕에 많이들 들어가지만 나는 미온수를 좋아했다. 너무 따듯하면 머리가 어지럽기도 했는데 미온수는 모든 것이 자연스러웠다. 그때의 경험 때문인지 적당한 온도인 강에 선뜻 발을 담갔다. 계속해서 걸어 나가도 어느 누구 막지 않았다. 누군가 나를 구하지 않았고 누구도 나를 부르지 않았기에 소풍 나온 어린아이처럼 강에 발을 담그고 있었다. 걸었고 또 걸었다. 걷다 보니 어디가 어디인지 알 수 없었다. 안개가 가득해 강에 발이 담겨있는 것도 감각적으로 알고 있었지 눈에 보이는 것은 뿌옇다는 시각적 감각뿐이었다.
잠시 우뚝 섰다. 장승처럼 땅에 박혀버린 것 마냥 우두커니 아무것도 바라보지 않았다. 나는 여기 왜 있을까부터 고민했다. 많은 세월 무감각의 세상 속에서 살았다. 감흥도 없고 기쁨도 없고 슬픔도 없는. 혹은 기쁨을 느끼지 말아야 했고 슬픔도 공감하지 말아야 하는 세상 속에서 살았다.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죽음에 가깝고 누군가는 그와 대극점에 있는 것처럼 기뻐했다. 혼돈 속에서 침묵. 그 시간은 길었다. 그 시간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몰랐다. 시간이 너무나도 흘러 내가 나 스스로 아프다는 것을 인지하곤 약을 처방받아먹기 시작했다. 감각의 실이 풀려 감각이라는 것을 감각하는 듯 착각했다. 기쁨을 인지해서 기쁨인 것이지 기쁨을 내가 느끼는 것 같지 않았다. 슬픔 역시 그러했다. 감각의 이상.
약은 그다지 나를 낫게 만들어주지 않았다. 오히려 나를 더 약하게만 만들었다. 약에 의존했고 약이 없으면 아무것도 느낄 수 없을 것 같아 약에 집착했다. 약 없이 내가 살아갈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의사 역시 수개월간 약을 먹어야 함을 수차례 나에게 얘기했다. 나는 그 인고시간을 견딜 힘이 이미 소실되었다. 있는 것이 사용된 소진의 개념이 아닌 있는 것이 존재하지 않게 된 소실. 감정은 감정이 아니었고 겨우겨우 약으로 일깨워진 감각은 인공적이었다. 약으로 만들어진 인공적인 감각. 그것을 느끼는 내가 너무나도 역겨웠다. 구역감에 시달렸고 구역감에 시달리면서도 감각하고자 약을 먹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약에 익숙해진 난, 나의 세상이 평온하게만 느껴졌다. 이대로 살아가면 괜찮을 것인가. 그러다 자의로 약을 중단했다. 좋지 않은 증후와 징조들이 계속해서 일어났다. 감각은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슬픔은 더 깊은 슬픔으로 기쁨은 미쳐 날뛰는 폭죽으로. 백과 흑. 명과 암. 두 가지 대극점에서 나는 쉴 새 없이 등락을 했다. 그러다 들은 생각은.
'아 그만하고 싶다.'
그러다 강을 만났다. 강은 나를 감싸안는 온도와 내가 나를 보지 못하도록 만들어 줄 수 있었다. 그렇게 느꼈다. 내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 어쩌면 더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강을 만나며 강을 경험하며 더 확실하게 확신했다. 그러다 우뚝 섰다. 우뚝 선 나는 어떤 것을 생각했을까. 세상에 있는 나의 필요성? 가족? 모르겠다. 어떤 이유에서든 간에 나는 걸어왔던 대로 강을 다시 되돌아갔다. 대지로. 강을 걸어가는데 강이 점점 차가워지고 있음을 느꼈다. 걸어왔던 길 대로 걸어가는데 강이 다시 나를 되돌아가지 못하게 만드는 것처럼 점점 서늘해졌다. 다시 강을 걸어 나가고 싶어졌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세상에 나 하나 없다한들 어떤 것도 문제 되지 않겠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이제는 다시 되돌아가기에 늦었을지언정 이제는 다시 살아가고 싶다고 외쳐본들 다시 되돌아갈 수 없기를 바라기도 했다. 그리고 시간은 어떻게 지나갔는지 내가 강을 건넜는지 다시 되돌아갔는지 그 중간 부분의 기억은 굉장히 희미하다. 마치 신생아적 기억을 되살리려 노력하는 것처럼 너무나도 희미해서.
강을 만난 지 일 년이 되었다. 지금 나는 내가 살고 있는 집과 동네, 개울가와 등산로, 하늘과 산 모두 그대로이다. 여전히 나는 살아있다. 강이 어디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그때 강을 건넜다면. 여전히 세상은 그대로겠지. 강을 건너는 것도 어쩌면 기대심리였을지도 모른다. 내가 강을 건넘으로써 누군가 아프길 바랐는지도 모른다. 간절히 뻗은 손을 잡아주지 않은 누군가 깊이 애통하고 비애하고 자책하고 고통을 겪기를 바랐던 것 같다. 어쨌든간에 다시 잘 살고 있다. 그러나 강을 만난 것은 좋은 경험이었다. 다시는 되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느꼈던 그때. 세상에 내가 어떤 존재인지 세상에 내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외부도 아닌 내부. 세상의 의미는 내 안에 있었다. 다시 돌아보니 내가 나를 돌보지 않았던 것이고 내가 나의 손을 잡아주지 않았더라. 세상엔, 내가 아닌 외부에 존재하는 세상엔 내가 설령 없다한들 여전히 태양을 중심으로 지구는 공전하고 달은 지구를 중심으로 공전하고 봄이 와 세상을 녹이고 여름이 되어 세상을 끓게 하며 가을이 되어 세상을 식히고 겨울이 되면 세상을 얼게 만든다. 순리는 변화하지 않고 진행된다.
내가 없는 세상. 세상은 내 안에 있음을 인지한다. 세상엔 내가 없어도 상관없다. 그러나.
내 안에 내 세상이 없는 것은 강을 만난 다음 허락되지 않는다.
건강하고 더 건강하게 내가 나의 손을 잡는 것.
내 안에 세상은 내가 없어선 안된다.
그것을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