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가치

by 지우

사랑이란 무엇인가. 사랑을 생각하는 나. 나는 사랑을 느낄 수 있나. 내가 느낄 수 있는 사랑이란 무엇인가. 나의 배우자. 나의 딸. 나의 직업. 오늘의 날씨. 오늘의 바람. 오늘 처음 듣는 음악. 오늘 신는 신발의 색. 오늘 처음으로 먹는 커피. 수많은 사랑의 요소들이 나를 스쳐 지나간다. 스쳐 지나는 가는데 어쩐지 잡기 힘들어 보인다. 사랑이란 무엇일까. 나는 어떤 것을 사랑하는가. 나는 사랑이라는 것을 알까. 사랑이라고 착각하는 것을 아닐까. 내가 생각하는 사랑이란 무엇일까.


사랑의 정의를, 사랑의 형태를 나는 규정힐 수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사랑을 정의할 수 없다. 아무리 느껴보아도 사랑의 형태를 사랑의 모양을 사랑의 모습을 나는 그릴 수 없다. 그렇다면 사랑이라는 것은 존재하는 것일까. 사랑이라는 건 허울일 수도 있지 않을까. 내가 잡을 수 없다면 내가 보유할 수 없다면 내가 그것을 정확하게 정의할 수 없다면 그 형태를 내가 알 수 없는 것이라면 사념의 덩어리이지 않을까. 사랑이란 내가 아끼는 것의 어느 끝지점일뿐인가.


그럼에도 정말 털끝하나 알 수 없다고 해도 나는 사랑을 아무리 부정하려야 부정할 수가 없다. 내가 그것의 모양과 형태를 알지 못하고 정의를 내릴 수 없더라도 분명하게 나의 가슴을 뭉근하게 적시는 무형의 어떤 것임은 알고 있다. 미시적 어떤 것. 사랑의 형태를 시간이 지나며 셀 수도 없이 많이 느껴왔고 정의는 내릴 수 없지만 정의 내릴 수 없음에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느끼던 거겠지. 그래서 사랑은 무언가다. 아무 가사도 없는 노래 같은 것. 무언의 늪에서 헤매고 방황하고 휘몰아치는 바람에 길을 잃어도 그 속은 사랑임을 알 수 있는. 그 무언 속에서 분명하게 느껴지는 무엇인가 있다는 것 정도는 안다고 할 수 있겠다.


다행히도 알 수 없는 가치는 알고 있는 가치보다 더 뛰어날 수 있다고 믿는 편이다. 알고 있는 가치는 이미 규정되었기에 이미 틀이 짜여 있기에 확장될 수 없다. 부여된 것은 생명력이 종료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사랑의 가치를 가늠해 볼 수는 있겠지만 알 수 없음에 감사하기도 한다. 내가 모르는 어떤 것에 나는 더욱더 확장될 수 있을지 모르니까. 사랑이란 실로 어떤 것을 확장하는 힘을 가지고 있음에 분명하니까. 그런 경험을 했고 그렇게 살아가고 있고. 그래서 사랑은 위대하다.


결국 사랑을 느낄 수 있는 마음을 지니는 것이, 사랑을 정의할 수 없는 사람임에도 사랑을 알 수 없다는 느낌에도 중요하다. 사랑을 느낄 수 있는 마음. 어떤 허울도 상관없고 그저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 그리고 사랑은 영원한 것이 아님에 그리고 사랑은 불변함의 영역이 아님을 역시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 그리고 나는 언제나 사랑을 할 수 있고 새로이 시작될 수 있다고 믿는 마음. 그런 마음이 나를 숨 쉬게 한다. 그런 마음이 또 어디선가 날아들 사랑에 대해 환대할 마음이 생기곤 한다. 그런 마음. 그런 마음을 위해 시간을 내어 책을 보고 시간을 내어 운동도 하고 시간을 내어 글도 쓴다. 그렇게 확장되어 가는 마음속에 언제나 사랑은 살아 숨 쉴 수 있고 확장될 수 있다고 믿는다.


다른 한편으론 사랑의 가치를 논할 나는 그럴 가치가 있는가이다. 나는 그럴 가치가 있는가. 나는 그럴 수 있는가에 대한 생각. 어떤 사랑의 가치를 논할 수 있는 나는 그럴 수 있는 자격이 있는가. 사랑을 느끼는 것도 다른 한편에선 규정을 짓는 행동 아닐까. 사랑에 대해 알지 못함을 알고 있어도 사랑을 온전히 받아들임에도 온전히 알 수 없음에 어떤 것도 나는 규정할 수 없고 어떤 것도 정의할 수 없는 무력감에 빠지곤 한다. 그럴 땐 항상 책을 보지 못하고 글도 쓰지 않았고 몸도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고 나의 주변을 정리하지 않음에서 나오는 무력감이다.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신호에서 생겨나는 무력감.


그 모습은, 그런 모습을 띈 나를, 나는 그런 나를 사랑할 수 없는 것 같다. 그런 모습도 사랑할 수 있는 내가 되기를 기대하고 고대하고 준비하지만 참으로 어렵다. 내가 나의 모난 곳까지 보듬고 부드럽게 만들어 줄 수 있는 그런 강인한 나. 언제나 실패하기 마련이다. 내가 나를 보듬어주는 것은 정말로 나에겐 어려운 일이다. 그럴 때 하는 행동은 핸드폰을 멀리한다. 나의 약속을 한다. 그리고 그 약속을 지키려 한다. 오늘 하루 인스타 보지 않기. 카카오톡 알림을 꺼두고 세상과 단절하기. 역시나 책을 보고 운동을 한다. 하루하루 그렇게 살다 보면 동일한 나의 모습에도 내가 나를 사랑하지 못하는 모습에도 그런 나약한 나임에도 그렇게 누추한 나임을 알고 있어도 조금씩 희망이 보인다. 결국 그 모든 행동도 내가 나의 사랑을 얻기 위함이다. 시간은 걸리지만 사랑엔 시간이 필요한 셈이다. 그런 셈을 하다 더해지고 곱해져 내가 나를 조금은 사랑할 수 있게 되기도 한다.


이 모든 미련한 생각에도 사랑의 가치는 분명 나를 살아 숨 쉬게 한다. 아침에 일어나 처음으로 맞이하는 딸아이의 눈망울. 배우자와 같이 도란도란 앉아 식사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 것. 하루를 시작하며 열어본 창에서 느껴지는 한기를 느낄 수 있는 나의 건강. 또 하루를 맞이할 수 있게 눈을 뜰 수 있게 살아가는 나의 몸. 오늘은 빨간색, 다음날은 카키색, 다음날은 검은색, 다음날은 체크무늬신발을 고를 수 있는 나. 오늘은 뉴에이지, 오늘은 락, 오늘은 힙합, 오늘은 팝을 선택할 수 있는 나. 이 모든 선택과 함께 매일의 나를 이룰 수 있는 나. 그것은 사랑이겠지. 내가 나를 향한 사랑. 내가 내 몸을 향한 사랑. 내가 내 정신을 향한 사랑. 잡을 수는 없지만 그 순간만큼은 취했더라도 내가 나를 사랑하기에, 나는 사랑을 안다고 할 수도 있겠지. 그 가치를 나는 위대한 것이라 여기는 것이겠지.


사랑의 가치는 이루 말할 수 없지만 나의 생명과도 같다. 나를 숨 쉬고 움직이게 만드는 그런 가치. 숭배적인 그런 위치. 사랑의 가치는 생명과 동등하다. 그 역시 나를 숨 쉬고 움직이게 하니까. 나에게 사랑은 분명 위대한 가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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