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에 관하여
일을 쉬는 날이면 우선적으로 달리기를 하는 편이다. 날이 심하게 더워도 날이 심하게 추워도 해야 할 일을 우선적으로 처리하는 것이 내게 이롭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처서가 지나 무덥던 여름이 조금 지나간 것 같다. 바람이 확실히 서늘해졌고 그늘은 바람보다도 더 서늘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해는 여전히 강렬하다 못해 찌르는 통증을 피부에 안긴다. 그래도 바람을 믿고 달려보기로 했다. 아직 해가 나의 머리 위에 위치하는데 까진 시간이 남은 것 같아서 말이다. 아이를 일찍이 어린이집에 등원시키고 집으로 돌아와 주섬주섬 달리기 할 옷을 입고 몸을 풀어본다. 달리는데 빛나는 햇빛에 의해 눈이 불편할 수 있으니 짙은 선글라스도 챙겨 나갔다.
하늘은 굉장히 쾌청했다. 구름은 아직 여름이 끝나지 않았다는 듯이 뭉게뭉게 거대하게 모습을 띄고 있었다. 아직 하늘의 높이는 가을답지 않긴 하네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시원한 바람은 나를 스쳐갔고 그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의 색은 푸릇하던 초록색을 지나 짙어지고 짙어지고 있었다. 불행하게도 나는 엄마에게 색각의 유전자를 물려받았다. 적록색약. 그래서 가을이 무르익는 산의 색채를 쉽사리 눈치채지 못하는 편이다. 그럼에도 색의 농도감은 어느 정도 경험칙으로 알고 있었다. 분명 하늘은 지상에서 더 멀어지고 있고 그렇다는 것은 가을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이며 햇빛의 강도는 지금보단 희미해져 갈 것이다.
그늘아래에서 달리고 싶었으나 햇빛이 허락하지 않았다. 달리는 중간중간 뭉게구름이 해를 가려 그늘이 질 땐 힘듦이 가시는 듯하다 구름이 지나가고 아스팔트바닥의 열기가 뿜어져 나오면 너무나도 힘든 운동시간이었다. 달리기는 계절에 큰 영향을 받는 운동이다. 물론 계절의 변화를 온전히 몸으로 느끼며 운동할 수 있지만 더울 때는 몹시 덥고 추울 때는 무언가 잘려나가는 듯하게 느껴지곤 한다. 달리기를 4년째 하고 있음에도 여름의 한복판과 겨울의 중심에서의 달리기는 정말 고되다. 오늘은 그래도 습도가 높지 않아 적당히 달릴 수 있었지만 몸에 쌓이는 열기가 잘 빠지지 않아 힘들기는 매한가지였다.
달리는을 하는 동안의 기억은 달리기가 끝나고 쉽게 사라진다. 무엇을 생각했는지 무엇을 보았는지 잘 모르겠다. 힘들다와 수고했다의 그 중간지점의 감정만 남아있다. 달리기를 마치고 조금 걸어서 집으로 들어가려 일찍이 어플의 달리기 종료를 눌렀다. 집까지는 약 1km 정도 걸어야 할 것이다. 달리기를 막 마치고 숨을 고르고 숨을 고르면서 흐르는 땀을 닦고 달리는 다리에서 걷는 다리로 전환되는데 시간이 좀 필요했다. 그러나 그 시간이 끝나고 내가 본 것은 세상의 아름다움이었다.
아무도 없었다. 산책로에는. 아마 꽤 더운 날씨이기에 지금 달리기를 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더욱이 아름다움의 실체를 전심으로 느꼈다. 바람은 거세지도 약하지도 않게 버드나무를 흔들고 있었다. 버드나무에선 떨어질 나뭇잎들이 두세 개 정도 핑그르르 떨어지있었다. 개울가는 눈이 아리도록 맑았다. 당장이라도 나의 열기를 식히러 모든 운동복을 벗어던지고 뛰어들어가고 싶을 만큼 맑았다. 그 옆으론 검은 나비들과 검은물잠자리 두 마리가 서로 짝을 지어 서로의 길로 날아다닌다. 춤을 추듯 유혹을 하듯 팔랑거리는 그들의 날개질과 떨어지는 버드나무잎은 대조적인 힘을 느낄 수 있었다. 햇빛은 흔들리는 나뭇잎들의 사이로 살짝씩 지상에 개울가에 나뭇잎에 나의 몸에 나의 눈에 저 멀리에 이 가까이에 비쳤다.
그리고 그 길 위엔 나밖에 없었다. 그 길 위 정말 나만 존재했다. 진정 세상에 나만 존재하는 듯한 쾌락적인 종말적인 느낌이었다.
그런데 난 그게 너무나도 아름다워 눈물이 고일 뻔했다. 주책이다 싶어 감정을 다스렸다. 그리고 잠시동안의 아름다움을 가시는 듯 저 멀리서 유모차를 끌고 오는 누군가를 보아 그 세상은 지나갔다.
아름다움이란 무엇일까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은 정말 가까운 곳에 있구나라고 쉽게 답변했다.
아름다움이 닿을 곳에 있다는 것은 축복이라고 생각했다.
아름다움은 또 다른 성질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아름다움은 그저 외관적인 아름다움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름다움은 눈에 들어오는 것을 넘어선 무언가를 느낄 때 비로소 아름다움의 울림을 전달받을 수 있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것 역시 아름다움이 가진 하나의 단편적인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경험한 나만의 세상 역시 절대적임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시 느끼고 싶었다.
벅차오르는 아름다움의 감정을 다시 한번 느끼고 싶었다.
니체가 말한 정오. 삶에서 단 한순간의 쾌락을 느껴 정말 좋다.라고 느꼈다면 세상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자가 아니다. 단 한순간이라도 긍정했다면 고통으로 가득 찼던 삶 또한 다시 해낼 수 있다.
길었던 우울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매일 울며지냈지만
나 또한 이 정오를 다시 느낄 삶의 시작점에 있다면.
나 또한 니체의 정오와도 같이 긍정하겠다.
아름다움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