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11.

젊음

by 지우

마흔이라는 나이. 중학생 때부터 난 언제나 마흔을 꿈꿨다. 언제나 더 젊고 싶다의 감각보다는 언론 시간이 흘러 마흔이 되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곤 했다. 누군가에겐 지금 나의 나이가 젊다. 또 누군가에겐 지금 난 늙은 사람이라고 한다. 물론 장난이라고 하지만 맞는 이야기다. 남자로서 서른다섯이라는 나이는 사회생활에선 10년 차정도. 사회생활 이전의 관계는 같이 나이를 먹어간다. 친구는 정신세계가 동일하지만 분명 나이는 같이 먹는다. 가족은 서로 간의 갭차를 유지한 채 또 역시 같이 나이를 먹어간다. 사회에선 나이에 관한 관계형성이 친구, 가족과는 다르다. 지속적으로 새로운 나이의 인물을 만나고 관계성이 형성된다. 또 관계성이 있던 어떤 인물과 단절되기도 한다. 그래서 신입들에겐 늙은 사람으로 얘기되곤 한다.


젊음이란 좋을 것일까. 중학생 시절 난 무엇 때문에 마흔이 되고 싶었던 걸까. 그 감각이 또렷이 기억나진 않는다. 그저 마흔이라는, 당시 나와는 굉장히 먼 어른 같은 나이였기에 상징적 발언이었을 것이란 추측도 해본다. 젊음은 분명 좋은 것이다. 어릴 적엔 달릴 때 앞도 뒤도 안 돌아보고 최고 출력으로 그러니까 온 힘을 다해 뛰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그럴 공간도 없다고 느끼고 그럴 시간을 분배해 주기에도 벅차다고 느낀다. 그리고 젊음으로 실패는 부끄럽지 않았던 것 같다. 실패라고 생각해 본 적도 없는 것 같다. 게임에서 져도. 축구에서 골을 넣지 못해도. 좋아하는 이성에게 말을 걸 용기조차 못 가질 때도.


그럼에도 지금의 나 역시 마흔을 지향한다. 당연히 인간은 태어나서부터 죽음을 향해 달려간다. 그 속도는 늦추거나 빨라지기도 한다. 그러나 시간의 흐름은 생에서 사로 흐른다. 이 정도는 진리의 법칙이라고 해도 될 만큼 나에겐 이견의 여지가 없다. 나를 포함해 세상에 존재하는 인간이라는 영장류는 모두 태어났을 때도 지금 이 순간에도 내일 눈을 떠도 죽음이라는 것에 한 발짝 가까워지고 있는 시간 속에 살고 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내가 그토록 바라던 상징적 '마흔'에 도달할 날도 사실 멀지는 않았다.


나에게 마흔이란 무엇일까. 인체적으로 물리적으론 그저 나이 듦 뿐인데. 뭐가 좋다고 나는 마흔을 그토록 기다리는가. 나는 그 감각을 기대감으로 인지하고 있다. 중학생 시절엔 분명 상징적 나이 듦을 말했지만 그 이유는 불명확하다. 그러나 지금 나에게 나이 듦이란 하루하루 변해가는 혹은 성장하는 내가 기대된다랄까. 조금은 사치스럽고 꽤나 얼굴 붉어지는 말이지만 나에겐 분명하다. 지금의 내 모습에서 하루하루를 쌓아나가 마흔이 된다면, 그때의 나를 지금의 내가 볼 수 있다면 얼마나 멋질까 라는 허황된 기대다.


굳이 겸손을 떨며 허황된이라 표현했지만 나는 정말로 나의 마흔이 기대된다. 과거 나이가 드는 것은 내게 기대감으로 인식되지 않았다. 그저 떡국을 먹었을 뿐이고 오히려 어깨가 무거워졌다. 연봉이 올라간다든지 내가 타고 다니는 차를 더 좋은 차고 바꿔야 한다든지. 더 좋은 옷을 입어야 한다든지 아니면 누구나 바라는 해외여행을 수시로 간다든지. 그런 세상에 기준에 나를 끼워 맞추던 시절엔 시간의 흐름이 그다지 기대되지 않았다. 그럴수록 오히려 젊음이 좋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젊어서 무언가를, 타자가 보기에 무언가를 해낸 모습을 가진다면 젊음의 가치는 굉장히 높아지기 마련이다.


사실 냉정하게 젊음의 가치를 내가 스스로 느끼지 못한 것도 있다. 워낙 아버지라는 굉장한 온실 속에서 살아온 나였기에 젊었을 때 무언가 스스로 해내고자 이루고자 하는 욕망조차 없었다. 물론 아버지가 잘못했다는 것은 아니지만 고생을 덜 하고 살았던 것도 맞는 말이다. 그렇다고 고생을 해야 젊음의 가치가 높다는 말은 아니다. 하나 나는 젊음의 힘을 그리고 젊음의 가치를 나 스스로 잘 이용하지 못했다는 것엔 분명하다고 느낀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나는 과거를 후회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죽음으로 가는 시간 동안 내게 남은 시간을 온전히 사용하려 노력할 뿐이다. 과거에 나의 젊음을 돌아보았자 이미 지나버린 시간은 나에게 다시 기회를 주지 않는다. 그래서 후회도 하기 싫고 다른 선택을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의 궤변을 늘어놓지 않으려 한다. 지금의 나 역시 누군가에겐 젊다. 젊음은 분명 상대적이다. 마흔이 될 나보다 지금의 나는 젊다. 이제 서야라도, 지금의 내가 느낄 수 있는 젊음의 가치를 최대한 이용하려 한다.


그런 결과가 아마 지금의 내가 마흔의 나를 기대하는 것 아닐까. 이것과 결부된 나의 버킷리스트가 있다. 마흔이 되어 철인삼종경기에 나가는 것. 철인삼종경기를 하고 있는 나를 상상하고 있자면 막연하면서도 자신 있으면서도 떨린다. 그래서 수영을 배우고 그래서 더워도 추워도 열심히 나가 달린다.


내가 나의 미래를 기대한다는 건 그래도 지금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증거일 테다.


물론 나의 최선이라는 것은 누군가에겐 기본값이겠지만 나는 나를 믿는 편이다.

이렇게 나를 믿는, 나를 기대하는 마음 아래 시간이 쌓이면


정말로 마흔에 난 철인삼종경기를 완주할 수 있지 않을까


오 년이 지난 나지만 더 건강한 나겠지

오늘도 나를 향한 기대감에 행복한 꿈을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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