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
침묵하기란 꽤 어려운 일이다. 침묵이 주는 순간이 생각보다 어둡기 때문일 것이다. 혹은 침묵을 하지 않는다면 생길 일이 더욱 어둡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침묵이 어두운 것과 연관되는 것과는 별개로 침묵 그 자체는 생각보다 중립적이다. 중립적임은 침묵적 성향을 띰을 어느 정도 인정하는 바이다. 분쟁에서의 침묵은 중립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 중립적 침묵은 방관이나 경시하는 태도는 아니다. 그저 말할 수 없음에 혹은 잘 알지 못함에 혹은 말을 하는 것보다 침묵이 더 중요한 것을 전달해 줄 수 있음에 침묵하는 것일 뿐이다.
침묵이 주는 꽤나 강력한 효과와는 별개로 침묵이라는 것은 생각보다 경시받는다. 정치인들이 어떤 논란에 있어 침묵하는 것을 보면 대게 겁쟁이 취급을 받거나 위선자로 추락된다. 혹은 어떤 자리에서 말을 하지 않고 침묵을 지킨다면 재미없는 사람으로 치부되거나 분위기를 읽지 못하는 사회성의 결여자로도 취급받곤 한다. 그러나 침묵의 힘을 정말 느껴본 자는 좀 더 풀어서 말하자면 침묵이라는 것의 힘을 느껴본 적이 있는 사람은 침묵에 묻힌 진실성을 보곤 한다.
물론 올바른 침묵에 관해서의 이야기다. 올바른 침묵. 그 뒤엔 진실성이 내포되어 있다. 진실은 논쟁이 붉어져도, 시간이 지나서 파악된다 해도, 그 시간이 길어 오해를 쌓아둔다 해도, 긴 시간이 품은 검붉은 부정을 씻어내 준다. 침묵은 그만한 가치가 있다. 아무리 현명하고 지혜를 오래도록 쌓아온 자의 말도 누구에게나 현인의 말로 들릴 수는 없다. 날카로운 칼이 되어 누군가를 베어내기도 하고 독사의 독침처럼 누군가를 부정하게 만들 수 있다. 그것이 전 우주적인 시점에서 진실인 것은 상관없이 언어라고 하는 말이라는 것이 자신 속성은 절대적일 수 없다.
그래서 말은 언제나 조심해야 한다. 차라리 제대로 말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침묵을 지키는 것이 말을 하는 것보다 더 귀한 대접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정말 쉽지 않다. 우리는 침묵을 해야 하는 연습이나 침묵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어디에서도 배울 수가 없다. 침묵이라는 가치를 어디서나마 들었고 그 침묵을 실제로 적용해 보고 그 파동을 느껴본 자만이 체득하는 유형의 기술이랄까. 우리는 자라면서 수많은 침묵하지 않는 자들의 말을 들어왔다. 진실성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 언어적 기교만 부리는 사람들을 수도 없이 봤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진실이든 아니든 무한히 언어로 풀어진 문장은 스스로를 찔러댄다.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보아도 침묵을 잘 지킨 사람을 찾아보긴 정말 어렵다. 그리고 최근엔 그것이 더 어려운 것이라 느껴진다. 소셜미디어의 채널은 끝없는 확장 중이며 스스로의 고립을 지향하고 자신을 돌보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한들 그것을 오히려 알리는 사람도 많다. 침묵을 여전히 알려주는 사람을 굉장히 적고 침묵을 실제로 적용할 수 있는 사회의 형태도 아닌 것이다.
사회의 형태와 맞물려 침묵은 사실 눈에 굉장히 잘 띄지 않는다. 침묵은 단순하게 보자면 말을 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하루를 살아가며 말을 하지 않는 시간이 생각보다 길다. 그러기에 침묵이 필요한 순간에 침묵을 한다기보단 자의적 타의적 상황적으로 침묵이 계속해서 진행되기에 어떤 것에서 누군가가 침묵을 한 것인지 그저 말을 하지 않은 것인지 쉽게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침묵을 잘 찾아보면 생각보다 많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누군가가 자신의 말을 삼키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그 자는 침묵이라는 기술을 아는 자다. 혹은 웃으며 힘든 고객을 상대하는 서비스직의 웃음을 본 적이 있는가. 그 역시 침묵의 힘을 알고 있는 자다. 혹은 분쟁이나 어려운 상황에서 차분히 기다리는 자 역시 침묵을 경험해 본 자이다.
침묵은 자신을 위한 것일 수도 또 타자를 위한 것일 수도 있다. 혹은 양쪽을 위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섣부르게 말을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 침묵은 당장의 효과를 얻기는 어렵지만 자신으로서 파생될 문제를 발생시키지 않을 수 있다. 대게 섣부른 말을 뱉음으로써 판을 더 키우는 행동을 하곤 한다. 침묵이 주는 가상의 어두움이 두려워서 그럴 수도 혹은 침묵으로 인해 발생하는 공백이 자신의 무지라고 생각하는 것일지도.
그 어두움을 맞이해야 침묵을 사용할 수 있다. 그리고 침묵을 사용하다 보면 생각보다 관계성에 문제가 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침묵으로 발생하는 어두움은 가상임을 알 수 있다. 그 어두움에 빛을 비추면 쉽게 사라진다. 그 빛은 진실이다. 거짓은 빛을 발생시킬 수 없다. 거짓의 침묵은 가상의 어두움이 아닌 정말 칠흑 같은 어둠이다.
나 역시 말로 문제를 많이 일으켰었다. 말로써 나를 추락시켰다. 잘해오던 것도 말을 함으로 스스로를 망가뜨렸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진실을 믿기 시작했다. 나를 헛된 말로 포장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리고 오해가 있는 것은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라 믿었다. 진실은 빛임을 침묵으로 이해했다. 침묵이 주는 어두움은 내가 가졌던 진실된 빛으로 밝혔고 시간이 필요했을지언정 어떤 문제도 더 불거지지 않는다.
그래서 진실된 침묵은 귀중하다.
그래서 되도록 침묵하려 한다.
그리고 침묵하기 위해 조용하게 살고 행동한다.
그러다 보니 내가 가진 진실성에 대한 빛이 더 확고해졌다.
침묵은 진실과 시간이 얽힌 고유한 특성을 가졌다.
진실한 침묵이 시간과 합쳐지면 외부에서 오는 어려움도 적당히 넘길 수 있다.
침묵은 가볍게 여겨지지만 그리 가볍지 않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진실과 세상에서 누구에게나 공편 한 시간과 연결되어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