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참 운 좋게 살고 있다
운은 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믿는 편이다. 그렇다고 운이 거저 오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에게 운은 좀 지켜보니, 조금 돌아보니, 다시 생각해 보니 같은 요소들이 있다. 길을 걸어가다 줍는 돈 같은 것이 운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기분이야 좋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운은 지금의 내가 과거에 어떤 행적을 돌아봤을 때 지금 내게 좋은 거름으로 남은 것들 모두를 운으로 생각한다. 건강했던 것. 운동을 적당히 잘했던 것. 적당한 중산층의 자녀로 살았던 것. 독서광인 부모를 만난 것. 좋은 배우자를 만난 것. 아이를 낳은 것. 선택한 직업들. 사회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 생각나는 수많은 반짝임들이 지금의 나에겐 하늘에 별처럼 반짝인다. 그걸 나는 내게 다가온 운으로 생각한다.
난 공부를 정말 못했다. 안 했다가 맞으려나. 하지 않아서 못하게 된 것이거나 하지 않다 보니 못하네라고 생각한 것 같기도 하다. 그럼에도 어떻게 대학교는 갔다. 그것도 생각해 보면 참 운이 좋았다. 공부는 안 했지만 수학과 과학에 관심이 있던 나에게 간호학과를 진학할 수 있는 길이 당시에 있었다. 영어 수학 과학 2과목의 성적이 괜찮으면 입학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공부란 것을 제대로 해본 시기가 고등학교 3학년 여름방학부터였다. 불이 난 곳이 있었고 그곳에 적재적소 소화기를 들고 제대로 방화했다. 내가 돌아본 나의 고3 여름방학이다. 불이 심하게 났으니 그만큼 제대로 소화기를 흩뿌렸다. 그래서 정말 운이 좋게도 대학교를 들어갔다.
군대는 또 어떤가. 자대 배치를 받곤 옆에서 낮잠 자던 선임이 그냥 축구할 인원이 없어 당장 옷 갈아입고 연병장으로 나오래서 나갔다. 그리고 원래부터 잘해왔던 축구를 했는데 그날 이후 전역 전까지 힘들었던 군생활의 기억은 없다. 내가 축구를 '잘'해서가 아니라 이것 또한 타이밍이 너무 맞아떨어졌을 뿐. 그리고 난 군 입대 전 몸무게가 50kg 미만이었다. 남자로서 50kg 미만은 참으로 불쌍한 수치였다. 그런데 군대에서 역시나 축구를 시켰던 선임이 강제로 매일 운동을 시켰다. 그리곤 전역할 때 60kg 이상의 몸무게로 나왔다. 나의 의지라기보단 내가 나의 과거를 바라보는 시점은 운일 수밖에 없다.
사회생활은 또 어떤가. 정말 힘든 응급실 간호사 시절이었지만, 정말 하루에도 몇 번이고 불호령이 떨어졌지만 학문적으로 그리고 실무적으로 이끌어주는 훌륭한 간호사 선배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배울 것 천지였다랄까. 사람이 혼나다 보면 엉뚱한 생각을 할 수도 있다. '이 사람은 왜 자기도 못하면서 나한테 이럴까.', '내가 정말 혼날만한 일을 했나?' 등등. 그런데 그런 생각이 하나 들지 않는 선배간호사들 뿐이었다. 세부적으로 하나하나 따지면 정말 힘들었고 정말 많이 좌절했고 수도 없이 그만두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 현재의 나에겐 간호사로서의 시절은 내가 세상을 등지는 그 시기까지 자부심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누군가를 위해 맹렬히 일했고 수많은 목숨을 살렸고 수많은 목숨을 떠나보냈다. 어디서도 얻을 수 있는 경험이 아님을 난 알고 있다.
지금의 나 역시도 운이 너무 좋게 살아간다. 어디 하나 골골대며 아프지 않다. 간호사를 하면서 또 깊이 깨달은 것은 아프지 않은 감사함과 운이다. 하나의 예로 태어났을 때부터, 그러니까 정말 어린 나이부터 건강의 고통을 받는 아이들이 생각보다 많다. 그리고 그 결과가 이른 나이 세상을 떠나는 경우도 정말 많다. 그것을 목격하고 나니 건강이라는 것은 내게 주어진 것이지 내가 얻은 것이 아니라는 느낌이 강하다. 내가 태어났을 때 다행히도 건강했을 뿐이지, 확률상인 것이지 건강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는 없는 것이지 않겠나.
운이라는 것에 대해 주저리주저리 쓴 이유는 어제와 관련이 있다. 어제 직장동료 그리고 직장동료의 연인과 같이 맥주 한잔을 했다. 그러면서 직장 안에서 나누지 않는 서로의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주고받고 했다. 나 역시 나의 이야기를 했고 그러면서 내가 나의 과거를 돌아보는 그리고 과거에 대한 지금의 나의 판단을 어느 정도 했다. 그러던 도중 반짝이듯 '아 내가 정말 운이 좋게 살아왔구나.'라는 생각이 강렬하게 들었다. 돈을 벌고 있는 것도, 맛있는 필스너 우르켈 생맥주의 맛을 느끼고 있는 순간도, 내가 내 입으로 나의 과거를 누군가가 궁금해서 얘기해 줄 수 있는 것도, 다시 생각해 보니 수많은 사람들이 나를 좋아해 주고 호감을 가져줬구나 하는 것도, 집으로 가면 있는 나의 배우자도, 곤히 자고 있는 나의 딸아이도 어느 무엇 하나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혹은 내가 지나온 행적에 운이 주어졌다고 밖에 표현할 길이 없었다.
난 참으로, 정말 운이 좋게 살아왔다.
내가 죽는다면 묘비에 새겨달라고 딸아이에게 부탁할만한 문장이다. 자존감적인 영향도 있을지 모르겠으나 나는 내가 내 손으로 얻은 것은 많다고 생각하는 편은 아니다. 기독교 모태신앙이지만 지금은 기독교를 믿지 않는다. 그럼에도 지금의 나는 신 같은 어떤 초자연적인 것에 의해 운 좋게 점지되어 살아가고 있다고 느끼곤 한다. 그래서 너무나도 감사하다. 감사할 뿐이지 어떻게 더 설명할 것도 없다.
하루를 감사함으로 마칠 수 있는 것에도 감사하다. 앞으로 남은 기나긴 인생에 더 없어도 될 만큼 많은 운을 느끼고 나니 감사함 뿐이다.
그리고 그것을 내가 느낄 수 있었던 순간의 운에도 감사하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