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해야 할 것 말고 느낄 것이 없다
사실 내가 지금 눈을 뜨고 있고 글을 쓰고 있고 운동을 하고 왔고 일도 하고 왔고. 하루 삼시 세 끼까지 잘 챙겨 먹고 일하는 도중 미숫가루도 알차게 타먹고. 점심시간이 지나고 커피 한잔에 초코 티그레 하나까지 야무지게 챙겨 먹고. 집에 돌아오면 처음 들리는 소리는 나를 기다렸던 아이의 '아빠'. 그리고 또 언제나 웃는 얼굴로 인사하며 나를 맞이하는 아내. 내가 지금 느낄 수 있는 유일한 감정 그리고 간직해야 할 지금의 감정은 감사함 뿐이다.
아내는 간호사다. 당연하게도 병원에서 일한다. 어린아이의 시간과 적당한 벌이를 위해 밤근무 간호사를 하고 있다. 그런데 어젯밤, 유독 딸아이와 내가 너무나도 잘 잔 밤. 아내의 병원에서 불이 났단다. 사실 불은 아니지만 새벽에 일하던 중 병원의 화재경보장치가 작동했다. 아내는 허둥지둥 환자들 먼저 챙겼다고 한다. 환자들도 그때만큼은 다들 살아야 하기에 잘 협조하고 잘 대피를 했다고 한다. 119가 도착하여 병원전체를 수색했으나 정말 다행히도 불이 나서 장치가 켜진 것이 아니라 오작동으로 밝혀졌다.
나는 이 이야기를 아침식사자리에서 듣는데 머리가 멍했다.
아. 찰나에 아내가 없어질 뻔했다. 그리고 나와 딸아이는 그것을 어떻게 할 수도 알 수도 없었겠다.
오늘 하루 종일 내내 이 생각이 나의 머릿속에 맴돌았다. 찰나라는 순간은 언어가 주는 느낌으론 너무나도 가볍다. 그런데 지난밤 깊게 잠들었던 나와 딸아이의 밤은 찰나였다. 눈을 감았고 눈을 떴을 뿐. 그 사이. 실제 시간으론 9시간 가까이 되는 시간. 누군가의 찰나에 나의 아내가 사라져 버렸을 생각을 하니 정말 눈앞이 깜깜해졌다. 마음이 참 불안정했다. 아내가 나의 곁에 없을 생각을 할 수도 없었다. 그런 생각을 해본 적도 없으니까.
그러나 이야기가 나의 귀에 들어온 순간 그런 가정은 상상이 되었다. 아침에 딸아이는 언제나 나의 품에 안겨 덜 깬 잠을 이겨내려 시간을 보낸다. 시간을 보내고 보내도 아내가 안 온다. 핸드폰을 찾아 시계를 켜보았는데 아내가 올 시간이 꽤나 지났다. 아내에게 전화를 건다. 아내는 받지 않는다. 나 역시 간호 사였었기에 인계가 늦게 끝나나 보다 싶었을 것이다. 그런데 시간이 너무나도 멀리 간다. 뭔가 이상함을 느꼈을 것이고 딸아이는 나에게 엄마가 언제 오냐고 분명 몇 번이고 물어봤을 것이다.
직장에 가야 하겠지만 직장상사에게 일이 생긴 것 같다고 연락하고 아내를 찾아 나선다. 물론 도착점은 병원. 지금도 이 상상이 소름 돋는다. 병원 앞으로 갈수록 불안감이 엄습해 온다. 차는 너무나도 막히고 119 구조 소화차량들이 수도 없이 늘어서있다. 그 시뻘건 차들을 따라 도착한 나의 눈은 아내의 병원. 전소되는 병원과 시커멓게 그을려버린 병원.
더는 생각하기 힘들어 최대한 일을 열심히 하고 할 수 있는 움직임은 다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집에 도착한 순간. 역시나 먼저 들리는 건
"아빠!"
우렁찬 나의 딸아이의 부름. 그리고 자신의 새로 산 칫솔이 이쁘다며 해맑게 자랑한다.
나는 신발장에 신발을 벗어두고 부엌이 보이는데 아내가 보인다. 난 눈물이 많지만 갑자기 집에 들어서자마자 울면 아내가 걱정하기에 정신을 차렸다.
그리곤 우리 가족 모두 같이 언제나 그랬듯 한 식탁아래 같이 조개찜을 먹었다.
그 순간이 너무나도 감사해 아내와 딸아이의 말을 더욱 귀 기울여 듣는다.
그 순간에도 자꾸 마음이 찡하고 먹먹했다.
없어졌을 수 있는 이 행복에.
그리고 없어지지 않은 나의 행복에.
오늘 하루를 돌아보니 감사함 뿐이었다.
내가 이렇게 평안히 잠든 아내와 딸을 볼 수 있음에.
그리고 내일이 되어 해가 다시 뜨고 밝아진 방에 아내와 딸아이가 자고 있는 것을 보고 있을 생각에.
감사함이 가득한 오늘을 기억해야겠다.
언제 나의 찰나가 어떻게 나에게 다가올지 모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