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7.

배움

by 지우

초등학교시절 나는 운동을 잘하는 편이었다. 뭐 남자아이들이 대부분이 느끼는 감정이겠지만 난 축구를 정말 잘했다. 학창 시절 인천에서 거주했었다. 축구와 인천. 무슨 연관이 있느냐 싶겠지만 당시 인천 출신 유명 축구선수 이천수가 있었기에 나름 축구로서 인천은 불모지가 아니었다. 그래서 축구를 워낙 좋아하는 나와 나의 형을 위해 부모님은 이천수가 축구부로 재학하던 중학교를 찾았다. 이름은 부평중학교. 아무것도 모르는 채 그저 축구만 좋아했기에 부평중으로 진학했다. 등교시간은 대략 한 시간. 그런데 아뿔싸. 내가 입학하던 시기에 부평중학교가 아닌 부평 '동' 중으로 축구부가 이전했단다. 그렇게 나에겐 축구가 취미가 되었다.


그로부터 사실 내게 배움은 학문적 영역이었다. 누군가에게 운동을 배우거나 한 시기는 없었다. 물론 취미의 영역과 동호회정도의 영역에선 내가 '잘한다.'라는 느낌은 받을 수 있으나 그렇다고 내가 프로레벨인가 하면 절대 아니다. 그럼에도 가끔 상상을 해본다. 내가 프로의 교육을 받았다면 어느 정도 성장할 수 있었을까. 국가대표라도 뛸 수 있었을까. 가정이고 상상이지만 내가 좋아하는 분야에서 프로의 가르침을 받고 싶다는 막연한 감정이 여기서부터 피어올랐던 것 같다.


학문의 배움은 그다지 내겐 큰 흥미가 없었다. 간호학을 4년 배우면서도 별생각 없었다. 오히려 학문적인 영역에서 배운 것보다 응급실간호사로 7년 근무했던 실전에서의 체득이 더 나에겐 유용했다. 물론 그 바탕엔 학문이 있었겠지만. 나는 삶을 체득으로 살아왔다. 지금에서야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고 누군가의 강의를 듣는 것도 좋아하게 되었지만 그것 역시 과거 학문을 멀리한 내가 조금이라도 유식해지고자 하는 몸의 반응일 것이라 느낀다.


그러던 중 이번 달부터 수영을 전문적으로 배우게 됐다. 수영은 내게 YMCA시절 물장구치던 시절뿐이다. 해군을 나왔음에도 수영을 배웠다기 보단 배가 폭파된 후 살아남는 수영만을 배웠다. 왜 수영을 배우려 하느냐 하면 나의 버킷리스트와 관련된다. 현재 내 나이는 35. 나는 40살이 되기 전까지 철인삼종경기에 나가려는 목표가 있다. 달리기는 10K 뛰는데 어려움을 겪지 않을 만큼의 구력이 생겼다. 자전거는 배우진 않았지만 이것도 역시 체득한 부분에서의 자신감은 있다. 그러나 수영을 달랐다. 물에 뜨는 법도 모른다. 자유형의 방식도 모른다. 물속에서 내가 어떻게 나아갈 수 있는지 모른다.


그래서 수영을 덥석 등록해 버렸다. 수영장에 예의도 잘 모르고 수모를 쓰는 법도 몰라 엉망진창 샤워를 하고 '입문' 간판이 세워져 있는 유아풀의 높이의 수영장에 들어갔다. 이때부터 색다른 경험이 시작됐다. 다시 나에게 몸으로 체득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 여태까지 내가 삶의 형식으로 취했던 모습 그대로 지금 새로운 배움을 시작하고자 하니 웃음이 절로 나왔다. 나는 웃음이 많은 사람이 아니다. 평소엔 무표정으로 일관되어 있다. 굳이 웃음을 요구하거나 느끼려 하거나 하지 않는다. 그런데 물속에 들어가 이제 내가 모를 세계를 그것도 내가 제일 자신 있어하고 제일 해왔던 운동과 체득이라니.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수영장에 들어서며 배움의 기쁨은 꼭 학문에만 관련된 것은 아니라고 느꼈다. 나의 배움의 영역은 역시나 체득이다. 몸으로 실제 경험해 보고 그것으로 인해 나온 결과물을 습득한다. 그리고 다시 적용해 보고 문제가 생기면 수정. 다시 적용과 적응. 그리고 체득. 그것을 30여 년 하다 보니 나는 시도하고 도전하는 데에 두려움은 없는 편이다. 잘못된 경험을 너무 많이 하다 보니 잘못되었다고 판단되는 것은 나의 머리일 뿐이다. 잘못된 결정과 경험을 내가 한다고 해서 지구는 망하지 않는다. 물론 그런 경험들이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었던 적도 많다.

섣부른 감정으로 누군가에게 깊은 상처를 주었기도 했고 섣부른 결정과 결단으로 또 누군가에게 큰 상심을 주었다.


그럼에도 나는, 지금의 나는 그런 사고와 실패 그리고 얻은 경험과 결과들도 이루어져 있다. 배움의 앞에 다시 서보니 곧장 물속으로 뛰어드는 내가 또 어떤 실패를 하며 배울지에 웃음이 난다. 나는 나를 그만큼 믿고 있는 것 같다. 자존감이 너무나도 낮았던 시기 나는 나를 심각하게 믿지 못했다. 그래서 생각의 사고도 원활히 진행되지 않았었다. 사고의 결과가 정말 내가 이 행동을 해도 되는지 내가 이 말을 해도 되는지 확신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그런 고통의 시기 역시 나에게, 지금의 나에게 좋은 체득의 재료가 된 것 같다. 현재 나는 전혀 모르는 것의 앞에서도 틀림의 잣대에서 자유롭다.


외람된 말이지만 딸아이는 시소를 좋아한다. 시소를 타면 위로 올라갔다가 밑으로 내려간다. 내 삶도 시소와 같다고 느낀다. 시소의 구조물을 보면 작대기 같은 기다란 철골 양쪽 끝에 안장이 있다. 그 안장에 서로 대극점으로 앉는다. 누군가는 힘없이 가라앉는다. 또 반대편의 누군가는 힘차게 발로 바닥을 차 올린다. 올라가고 내려오고 또 올라가고 또 내려온다. 그것을 알고 있으니 삶의 자유로움이 느껴진다. 내가 어찌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이제는 세상이 어떻든 내가 그저 받아들이면 된다는 것을 안다.


수영장에서도 수도 없이 실패하고 싶다. 지난번 수업에선 자유형으로 들어가는 단계인 몸틀기를 했다. 강사님이 보여주는 몸틀기에 헛웃음이 나왔다. 내 머릿속에선 이런 말이 들렸다.


'아니 지금 나한테 저걸 하라고?'


그런데 더 웃긴 것은 내가 그날의 첫 번째 주자 역할이었다. 강사의 시범. 시범이 끝나고 나를 바라본다. '자 출발.'이라는 말이 들린다. 그리고 나는 주저 없이 일단 출발한다. 그리고 나는 너무나도 행복감과 해방감 그리고 자유를 느낀다.


실패해도 부끄럽지 않다. 웃길 뿐이다. 같은 반 수업을 듣는 사람들이 나를 보는 것은 상관없이 그저 웃기다. 너무 재밌고 너무 웃기다.


그래서 물을 너무나도 많이 먹었지만 또 내일 있을 수영수업에서 난 첫 번째 주자를 하려 한다.

배움의 앞에서 어린아이가 될 수 있는 것만 같아 그 시간이 기다려진다.


또 어떤 배움이 있을까 기대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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