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5.

감정의 이상과 이성의 감성

by 지우

감정은 너무나도 소중한 가치이다. 감정을 가진 존재로서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 얻는 축복은 다양하다. 아이가 태어났을 때 느낀 벅찬 감정. 결혼식장에서 신랑입장이라는 말과 함께 문을 박차고 걸어 나가는 발걸음 속 감정. 직장에서 처음 맡은 큰 프로젝트를 훌륭하게 마친 순간의 감정. 어린 시절 아버지와 오르던 등산길의 감정. 첫사랑과 헤어짐을 이야기하고 울음을 머금으며 뒤돌았던 그때의 감정. 감정은 삶을 다양하게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감정은 삶의 다양한 색채를 입혀주었다. 감정이 있다는 것은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는 말과 같다.


그러나 때론 감정에 의해 세상이 무너지는 경험도 해본다. 감정은 다양함을 불러일으키지만 그것이 항상 아름다움만을 가져온다고 할 수는 없다. 다양한 색채엔 어두운 색도 많다. 회색, 검정 등 짙은 계열의 색은 마음을 어둡게 하곤 한다. 아름다움을 생각할 수 있는 감정들도 다양하지만 슬픔과 좌절 고난을 표현할 수 있는 감정의 색채도 매우 많다. 파란색은 청량함 깨끗함 광활함을 가지고 있는 반면 우울함도 표현한다.


나는 감정을 매우 중요시한다. 내가 감정의 가치를 크게 여기는 만큼 누군가의 감정 역시 쉽사리 판단하지 않는다. 그래서 내가 아닌 타자의 감정 역시 잘 읽어내는 편이다. 감정을 읽어내는 것은 어렵지도 쉽지도 않다. 그러나 감정을 이해하는 것에는 굉장한 에너지가 소모된다. 나의 감정을 이해하는 데에도 굉장한 시간이 필요하다. 복잡한 사건에 휘말려 내가 일으킨 소용돌이가 아님에도 내가 마치 그 주체가 된 것 같을 때가 있다. 그런 이벤트가 있으면 해당 상황에 대한 파악을 우선적으로 한다. 그리고 곱씹는다. 곱씹으며 나의 억울함을 누그러뜨린다.


글로 표현하니 가볍고 쉽고 누구나 겪는 과정이다. 그러나 난 나의 감정을 스스로 이해하고 억누르고 해소하는 과정은 꽤 오래 걸리는 편이다. 더구나 내가 나의 감정을 이해하는데도 오래 걸리는데 타자를 이해하는데 어떻겠나. 안타깝게도 난 동료들과 일하고 가족들과 살아가고 이웃들과 생활하는 사회적 동물이다. 나를 둘러싼 내가 아닌 타자들은 정말 많다는 말이다. 그리고 하나하나에 감정이 사용된다. 각각 퍼센티지는 다르겠지만 정말 조금이라도 타자에게 감정을 사용하고 있다.


과거엔 이런 것들이 너무나도 피곤하게 느껴졌다. 신경 쓰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곤 내 행동이 부자연스러워지는 것이 너무 싫었다. 그리고 누군가의 얘기를 듣는 것도 귀찮았다. 감정을 이해하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었고 그 감정을 내가 느끼는 순간부터 그 감정을 이해하는 데에 소모될 내가 불행하다 느꼈다. 조금 아이러니하다. 어쩌면 나의 강점인 셈이다. 누군가의 감정을 잘 읽어내고 시간이 걸릴지언정 이해할 수 있다는 게. 그래서 사회생활을 약 10년 정도 해가며 직장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은 나에게 이야기하길 좋아했다. 내가 피곤한 것과는 별개로.


그러나 최근에 깨달은 것이 있다. 바로 감정을 사용하지 않는 방법이 있다는 것. 누군가가 나에게 이야기를 한다 해서 내 감정을 꼭 사용해야만 한다는 것이 아님을 알았다. 즉 에너지를 덜 소모할 수 있다고 느꼈다. 그것이 바로 이성이었다. 흔히들 이성적인 것은 감정적인 것과 반대되는 개념이다. 반대로 감정적인 것은 이성적일 수 없다고들 한다. 그러나 감정과 이성을 적절히 사용한다면 가볍게 그리고 나답게 어떤 상황들을 대응하고 헤쳐나갈 수 있다고 느꼈다.


감정이 풍부한 나에게 감정은 분명 나를 풍부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난 소설이 좋았다. 소설 속에 담긴 수많은 가상의 주인공들이 가진 감정을 모조리 읽고 이해할 수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여전히 난 소설을 좋아한다. 반대로 철학서적이나 과학서적은 내게 굉장히 어려웠다. 이성적으로 발달되지 않은 나의 캐릭터로선 마치 절대적인 분야 같은 학문은 너무나도 높은 벽을 지니고 있었다. 이성을 이해하기도 어려웠고 이성을 사용하는 데에도 어려웠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삶의 경험이 축적되어서인지 이성 역시 매우 중요함을 느끼고 있다.


감정은 사람을 굉장히 흔든다. 때론 그것이 어지럽다고 느낄 만큼 흔들어 놓는다. 삶을 송두리째 흔들기도 한다. 물론 정말로 고꾸라지고 미끄러지는 것은 아니지만 감정의 소용돌이는 면적이 아닌 깊이의 양적개념을 가진다. 그 혼란이, 그 혼돈은 무지함을 일깨워준다. 얼마나 내가 세상에서 약한 존재인지.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 그럼으로써 세상의 소중함을 알게 된다. 나의 자만을 줄여주고 나의 허상을 부셔준다.


이성은 사람을 곧게 만든다. 때론 나뭇가지처럼 딱딱하고 부자연스럽게도 느끼게 한다. 더 나아가 감정을 차단하는 경우도 많다. 글을 쓰며 생각해 보니 응급실간호사로 일할 때 이성을 더 많이 사용했던 것 같다. 사람이 죽어도 그곳에선 공감하면 안 되었다. 계속해서 밀려드는 위태로운 생명들을 위해. 나는 흔들릴 수 없었다. 그러고 보니 난 이성도 잘 쓰고 있었다. 그렇게 이성은 사람을 딱딱하게 만들지만 프로답게 살아가는 것과 해야 할 일에 대한 분명한 목표의식을 갖게 한다.


최근 몇 년 전부터 유행했던 심리검사에선 감정과 이성을 극단으로 두었다. 그리고 그것은 맞는 이야기처럼 보였다. 그러나 지금의 시각에선 그렇게 갈라칠 수 있는 요소가 아니게 느껴진다. 감정중심인 사람도 이성적이어야 한다. 이성적인 사람도 감정을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


난 이 문장의 이유를 하나로 표현할 수 있다.


우리는 사람이기 때문에.

우리는 모두 감정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이성을 지니고 있다.


두 가지의 개념은 서로를 배척하고 대립하는 개념이 아니라

서로를 보완하고 상호 하는 개념이다.


30년 넘게 감정을 사용하고 다져온 내게 이성은 이상향 같았다. 감정을 읽어내는 데엔 무리가 없었기에 그것을 쉽게 이성적으로 응할 수 있었다.


반대로 이제야 이성의 능력을 강화시키고 있자니 이성을 바라보는 나의 감상은 꽤나 중요하고 필요했던 기능임을 느끼고 있다.


감정은 축복이자 불행이다.

이성 역시 무섭지만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난 사람이자 인간이기에

그 두 가지 모두 사랑한다.


결국 그것을 모두 나를 위한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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