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소 Oct 13. 2024

 Haru21_ 나를 아껴 쓰기

지금의 내가 알고 있는 것.

코로나가 한창 창궐하던 2020년의 어느 날

갑자기 내 눈앞에 나타난 실오라기들은 나의 세상을 바꿔버렸다.

‘비문증’이었다.

날파리증이라고도 하는 이 증상은 날파리 같은 줄, 실, 검은 점, 그림자 같은 것들이 눈앞을 떠 다닌다.

처음엔 눈을 혹사시켜 피곤한 탓이라고 여기고 별일 아니겠거니 싶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실오라기들이 시야를 방해하는 느낌이 불편한 정도가 되면서 급히 안과를 찾았다.

그 당시엔 관련 검사를 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려서 거의 1시간을 기다려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최근에는 눈동자를 확장시키는 약을 넣지 않고도 광각 안저 촬영기라는 검사장비를 이용해 간단하게 망막 검진이 가능해져서 너무 편하다.)

검사 결과를 통해 의사는 실명을 야기할 수도 있는 망막박리라는 무시무시한 질환을 들먹이며 비문증에 대해 설명했다.

피곤이 누적된 경우 일시적으로 나타날 수도 있지만, 한번 나타난 비문증, 특히 눈의 노화로 인한(내 나이) 비문증은 잘 없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현재로서는 노화로 인한 생리적인 비문증으로 판단되지만 지속적인 관찰이 필요하다며, 갑자기 떠다니는 것들이 많아지거나, 빛이 번쩍거릴 때, 커튼이 쳐지듯 시야가 가려질 땐 응급으로 병원으로 찾으라는 무서운 말로 진료를 끝내고 나왔었다.


그날 이후로 난 더 이상 맑고 깨끗한 하늘을 볼 수 없었다.

다른 풍경은 그렇다 쳐도 문득 발견하는 예쁜 하늘이 비문증으로 방해를 받는다는 건 너무 슬픈 일이었다.

종종 하늘 사진을 찍어두고 눈 컨디션이 조금이라도 좋을 때 다시 열어보기도 하지만

내 눈에 담겼을 아름다움은 간직하지 못했다.


뭐가 그리 바쁘다고 앞만 보고 살았을까…

실오라기 없는 예쁜 세상을 조금 더 많이 봐둘 것을… 마음에 담긴 후회 한 조각이다.

하긴… 알았어도 컴퓨터를 들여다보며 열심히 일한 시간만큼 지금의 나로 가까워졌으니까.. 후회보다는 안구건조증을 해소하기 위해 열심히 인공눈물을 넣고 눈을 잠시라도 쉬게 한다. (사실 이렇게 생각하기까지 오래 걸렸다)


아쉬운 대로 요즘은 일을 하다가도 문득 창밖을 본다.

또 걸어가다가도 길가에 핀 풀도 보고, 하늘도 본다.

깨끗한 하늘을 볼 수는 없지만,

내 세상을 둘러볼 여유는 생겼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고등학교 때 읽었던 류시화 시인의 잠언 시집 제목은 나를 후회가 없을 미래로 이끌어 주는 마법 주문 같았다.

그중 킴벌리 커버거의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이라는 시를 되뇌며 깊은 울림을 마음에 담았었는데..

이후로도 비슷한 느낌의 글들을 접하기는 했지만

인생을 달리느라 잊고 지냈다.


현자들의 깨달음이 응축된 주옥같은 말들을 모두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면 좋겠지만

사람은 결국 경험을 해야 배우게 된다.

몸은 점점 기능이 퇴화되고 늙어가겠지만, 내가 알게 된 것들을 실천하는 일.

그게 오늘의 행복을 지키는 일이다.


조금만 나를 아끼고 나를 위해 사용할 것.

업무의 컴퓨터에서 눈을 떼고 창밖을 살펴 나를 둘러싼 세상을 바라본다.

잠깐의 그 휴식이 나를 행복하게, 건강하게 만든다는 것을 지금의 나는 안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내 가슴이 말하는 것에 더 자주 귀 기울였으리라

더 즐겁게 살고, 더 고민했으리라

금방 학교를 졸업하고 머지않아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걸 깨달았으리라

아니, 그런 것들은 잊어버렸으리라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하여 말하는 것에는

신경 쓰지 않았으리라

그 대신 내가 가진 생명력과 단단한 피부를

더 가치 있게 여겼으리라

더 많이 놀고, 덜 초조해했으리라

진정한 아름다움은 자신의 인생을

사랑하는 데 있음을 기억했으리라

부모가 날 얼마나 사랑하는가를 알고

또한 그들이 내게 선을 다하고 있음을 믿었으리라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킴벌리 커버거 - 류시화 잠언 시집


매거진의 이전글 Haru20_ 오늘의 의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