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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 Jul 16. 2024

적응과 부적응 사이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일

심리상담을 결정하기까지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어쩌면 ‘사춘기 감정의 기복’을 우울증이라는 ‘질병의 범주’로 판단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것이었다.

이 부분은 걱정을 키워 생각하는 나의 심리적인 부담이 한몫을 했는데, ‘치료과정’을 시작하게 되면 나에게도, 아이에게도 ’큰 일‘이 현실화되는 것이 두려웠었던 것 같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우리 부부가 아이의 힘든 시기와 상황들을 거의 바로 알게 되었고 관찰하려고 노력했다는 점이다.


아이의 우울감을 무겁게 받아들이며 방안이 필요하다고 판단은 했지만, 학교의 wee센터는 아이가 학교 안에서 상담받는 것을 완강히 거절했다. 병원급의 전문 심리상담센터도 알아보기는 했지만 일단 다음 단계의 열쇠로 남겨 두었다. 글쓰기를 좋아하는 아이라 글쓰기 치유 프로그램도 알아봤지만 성인대상의 프로그램이거나 집에서 멀어 접근성이 나빴다. 미술치료나 공예활동 같은 작업치료 프로그램 역시 아이가 싫다며 거절했다.

    

관련 정보들을 찾고, 전해 들어도 선택과 결정, 추진이 쉽지 않았다.

우린 전문가가 아니었고, 막연히 시간이 해결해 줄거라, 아이가 적응할 거라고 생각한 밑도 끝도 없는 긍정의 심리도 깔려 있었다. 그리고 많은 부모들도 우리 같은 상황에 이럴 거라며 스스로를 안심시켰다.  


J인 내게는 어려웠지만 고려사항들을 극한으로 제외시켜서 집에서도 멀지 않았고, 비용적인 부담도 적고, 다른 청소년 프로그램도 활용해 볼 수 있겠다 싶어서 지역 내 청소년복지상담센터를 선택했다.


상담예약을 접수한 지 거의 한 달 만에 지역 청소년상담복지센터에서 연락이 왔다.

상담사가 배정되었고, 첫 상담 일정을 예약했다.

각종 심리검사와 더불어 아이의 현 심리상태 파악을 위해 부모작성 설문지와 부모상 담을 약 4회 차까지 이어 갔고, 아이는 상담선생님과 라포를 잘 형성하며 주 1회의 상담에 꾸준하고 진지하게 참여했다.

그 당시 아이는 선생님과 만나는 시간을 좋아했으며, 자기의 이야기를 덤덤히 쏟아 냈다. 약 6개월의 상담기간 동안 아이는 자신의 이야기를 펼치면서 자기 자신과 마주했던 것 같다. 자기가 아프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또 조금씩이라도 밖으로 표현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또한 나 역시(남편 포함) 상담선생님께 심리적인 의지를 하며 중간중간 부모상담을 통해 나를 마주하고, 아이의 상황을 받아들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아이는 방학기간에 잠깐 안정을 찾는 듯하더니, 개학 후 다시 학교 생활에 들어서며 눈에 띄게 빛을 잃어 가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심리상담만으로는 아이를 (우리가 생각하는)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릴 수는 없었다. 아이를 응원하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좋은 어른이 생긴 건 좋았지만, 마음을 나눌 또래, 특히 학교 안에서 친구를 만들 수 없으면 아이의 상황은 좋아질 수 없었다. 근본적인 문제라고 생각했던 학교에서의 힘겨운 상황을 스스로 이겨내지 못할 만큼 아이의 우울증이 깊어지고 있었고 그 부분은 사춘기라는 시기와 아이의 성향, 기질적인 부분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으리라 판단되었다.

상담과정을 통해 얻은 가장 큰 결실은 아이보다는 나와 남편의 변화였다고 생각한다.  

아이를, 아이의 상황을 온전히 마주하는 것.

말로는 이해한다고 했지만, 받아들이지 못하던 것, 바꾸지 못했던 생각들이 아주 천천히 변화되고 있었던 것 같다. (정확히는 변화의 시작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우리가 수많은 회피와 절망과 분노의 노선을 오가며 알 수 없는 망설임의 시간을 보내는 동안, 두려움에 빠진 아이는 어느 순간 울면서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고 싶다고 말했다. 너무 힘이 든다고…. 이렇게 지내는 게 너무 슬프다고…

마침, 상담선생님도 지속적인 무기력감이나 심리상태에 비추어 약물적 치료를 병행하면 아이의 경우 좀 더 긍정적인 효과를 볼 수 있을 것 같다며 병원진료를 권유하셨다. 청소년 우울증을 겪는 아이들의 상황들은 너무 다양하지만, 아이의 경우는 가족들에 대한 애정과 스스로도 적극적인 치료와 개선을 원하며 참여하는 모습이 남다르다며 안타까움과 긍정적인 기대로 우리를 위로해 주셨다. 뻔한 얘기일지 모르지만 처음으로 우리 가족과 아이에 대한 양육감정들을 드러내 보인만큼 한마디 한마디에 많은 위안을 얻을 수 있었다.

약 6개월, 주 1회의 상담일에는 아이가 좋아하는 떡볶이를 주구장창 먹었다.

어떤 날은 매운맛, 어떤 날은 덜 매운맛으로 학창 시절 분식집을 떠올리며…

아이에게 엄마가 아닌 친구가 되어 줄 수 있기를 바라며… 변하는 건 없지만 나름 좋은 시간이었다.


엄마의 눈치를 보며 간간히 조퇴와 생리결석으로 숨을 쉬고, 상담선생님과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며 바람을 쐬고, 중학교 중퇴를 생각하며 아슬아슬한 줄타기와 같은 학교 생활을 버티면서도 아이는 수행평가와 과제 제출을 빼먹지 않았고, 시험도 최선을 다해 임했다.

담임 선생님은 아이를 ‘내성적이고 조용한 성격의 글쓰기를 좋아하는 성실한 아이‘로 설명했다. 선생님들에게는 예의 바르지만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친구들과도 ‘적당히’ 지낸다고, 학교의 누가 보기에도 문제는 없었고, 아이는 잘 적응하고 있는 거였다. 하지만 그 보이지 않는 애씀이, 아이에게는 엄청난 소모였고, 고갈이었다. 아이는 학교에서의 하루를 마치고 울 것 같은 얼굴로 현관에 들어와서 아빠의 품에(그 시기 남편은 아이 때문에 재택근무를 했다) 안겨 종종 울음을 터뜨렸다고 한다.

학교에 있는 시간이 의미가 없다고.


색깔을 존중한다는 세상에서

아직 불분명한 무채색을 띠는 사람들이 소외되는 부작용이 발생한다.

내 아이는 색깔을 찾아가는 그 느린 여정에서 너무 힘든 성장통을 겪는 거라고… 믿고 싶었다.

보통의 아이들은 남들과 비슷한 생각을 하고 비슷한 걸 좋아하고 비슷한 시간들을 보내며 적당히 호응한다. 그 ‘적당함’을 나눌 누군가를 만나지 못했고, 그 ‘적당함’을 표현하지 않아도 아무렇지 않을 하트를 가지지 못한 아이가 안쓰러웠다.

적응은…어떤 사람에겐 마음의 통증에 무뎌져서 망가질지도 모르는 굴레에 가두는 것은 아닐까… 적응은 긍정이고, 부적응은 부정이라는 걸 누가 정해 놓은 걸까..

사람들에게 아이의 상황이 단순히 학교에 적응하지 못한 부적응이라고 표현될 수도 있지만, 엄마인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인생의 경로에서 실타래가 꼬인 운이 나쁜 시기가 있다고, 아이에겐 그때가 지금 온 것뿐이라고… 누구에게나 언제든 찾아올 수 있는 거라고 말하고 싶다.


이 험난한 세상에서 초졸은 어렵다고 생각한 부모의 욕심에 아이는 버티고 버티며 힘겹게 중학교를 졸업했고, 졸업과 함께 나와 남편은 이제 고난은 끝날 거라고 생각했다.

새로운 변화와 환경의 설렘에 아이는 다시 예전으로 돌아올 거라고…


’믿음’으로 포장하고, ‘적응’으로 억지 무장시킨 우리의 착각이었다.

아이에게 도와준다고 했지만, 결과적으로 버티라고만 했고, 아이는 혼자서 싸우다 전쟁에서 살아남았지만 많이 다쳤다.

자신의 선택이 아닌 졸업으로 벗어난 아이는 온전히 ‘그곳, 그 시간’을 졸업하지 못했다.


지극히 사적인 “심리상담”  tip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 주저하지 말고 시작하세요.

몸이 아플 때 초기에 치료하면 빨리 치료가 되는 것처럼, 마음치료도 가능한 한 빨리 시작하는 것이 정답입니다. 주변의 시선이 걱정돼서, 내 마음이 받아들이지 못해서… 그 사이 아이는 혼자 아파합니다.

좋은 상담선생님, 정신과 선생님을 한 번에 만나면 너무 좋겠지만, 처음부터 아이와 100프로 맞는 선생님을 찾는 것은 어렵습니다. 열심히 검색해서 물리적 거리, 아이의 심리적 부담(집 근처는 아는 사람을 만날 수도 있어요)을 충분히 고려해서 심리상담센터나 상담전문, 혹은 심화된 심리상담을 병행하는 병원도 좋습니다. 일반적인 정신건강의학과(로컬)는 간단한 상담과 약물처방이 주를 이루며, 상담 특화된 병원도 있지만, 거주 지역에 따라 다르겠지만 생각보다 나(아이)와 맞는 병원을 초기에 찾는 것은 어렵고 특히 아동과 청소년 심리상담을 전문으로 하는 병원은 더 찾기 어렵습니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부담이 있다면 특히 거주지역 및 지자체 청소년복지상담센터*를 이용하시는 것도 좋습니다. (심리상담은 1회기로 끝나지 않죠, 한 사람을 알아가야 하니까 기본 치료회기가 길어요. 장기가 될 수 있는 치료를 위해서는 비용적인 부담도 고려해야 할 사항입니다) 저희는 전문상담사를 통한 초기 심리검사 및 상담, 부모상담까지 연계하며 아이의 초기 심리상태를 파악하고 병원진료(약물치료)를 결정하는데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단, 공공복지센터의 특성상 예약 후 실제 상담 배정까지 많은 대기로 인한 기약 없는 시간이 소요되기도 하니, 빠른 결정을 통해 예약을 진행하시고, 심리상태에서 위험이 감지되는 경우 예약상담 때 위급상황임을 특별히 강조해 두시면 센터의 판단으로 배정이 조금은 빠르게 진행될 수 있습니다.

아이가 거부감을 보이지 않는다면, 학교 안에서 wee센터와 연계한 심리상담 과정을 먼저 활용(학교마다 지원환경이나 프로그램 상이)하고, 학교 밖에서 교육청이나 여성가족부에서 지원하는 상담 프로그램 등을 안내받을 수도 있습니다.

* 한국청소년상담복지센터는 여성가족부 산하의 공공기관으로 전국에 지역별로 600여 개의 센터를 두고 청소년상담복지센터, 학교밖청소년지원센터, 청소년복지시설을 총괄합니다. 그중에 청소년상담복지센터에서는 상담정문가와의 개인상담, 심리검사, 관련치료 등을 비교적 부담 없는 비용으로 제공하고 있습니다.
*개인상담 및 심리검사를 연중 운영하고, 전화상담을 통해 상담 및 청소년 관련 정보도 안내받을 수 있습니다. 지역 및 지자체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운영될 수 있으니 아래 사이트를 참고해서 개별 사례를 적극 문의해 보세요.
* 참고사이트: 한국청소년상담복지개발원-각종 지역센터-청소년상담복지센터-해당 지역센터 선택
무엇보다 상담진행은 아이의 동의와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합니다.

부모의 공감과 이해를 바탕으로 아이와 부모가 함께 힘든 상황을 해결해 가는 과정임을 충분히 설명하고 감기에 걸릴 때 병원에 가는 것과 같은 거라고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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