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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 Jul 12. 2024

균열의 시작-학교에 오지 않는 아이

마음을 알아간다는 건, 용기를 내야 한다는 것

‘학교에 오지 않는 아이’는 일본 문학가 세이노 아스코의 청소년 소설이다.

4월의 어느 날 우연히 보게 된 아이의 독서감상문 제목이 바로 이 책이었다.


글 속의 문구를 인용한 아이의 글에는 이해받을 수 있는 또래를 원하는 무거운 쓸쓸함이 담겨 있었다.

내가 더 이상 앉고 싶지 않게 된 의자에서 너는 날마다 창 밖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하니?

학교에 오지 않는 친구(오바야시)에게 등교 격려 편지를 써야 하는 상황에서 주인공 후미카는 오바야시의 자리에 앉아 그의 생각을 읽어 보려고 한다. 그 자리에 앉으면서 오른쪽으로 기우는 오바야시의 불편한 의자도 경험한다.

아이는 자신의 자리에 앉아 자신의 마음을 알아줄 후미카가 절실히 필요했을까…


짧은 글이었지만, 아이의 함축된 심경들이 그간의 모습들과 함께 쓰나미처럼 덮쳐왔다.

나는 곧바로 아이의 심리상담을 예약했다.




중3 새 학기가 시작되고부터 아이는 학교를 힘들어했다.

내향적인 성향이 강하기는 했지만, 튀는 것을 싫어하고 친한 친구들과도 무던히 잘 지낸다고 생각했던 만큼 보통의 사춘기 아이들보다 순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랬다고 생각했다….


시작은 중2 때 친하던 친구들과 떨어져서 혼자 덩그러니 다른 반이 된 거였다.

아이는 조용히 웃고, 예쁜 말들을 좋아하고, 예의 없는 행동과 상황을 유난히 불편해하는 사람이다. 남에게 불편을 주는 것도 싫어하지만, 자기 영역을 아주 중요시 여기며 자기가 만든 세상살이의 규칙들을 정립해 나가는 중이었다. 그 시간들에 친구들이 문을 두드리고 있었고, 한 사람 한 사람과 아주 천천히 관계를 만드는 방법을 배워가고 있었다.

새로운 반은 유난히 다양한 개성과 자기 색이 강한 아이들이 모여, 아이에게는 처음부터 힘겨운 자극들이 가득한 분위기였다.

한 학급의 아이들이 우루루 같은 반으로 편성된 탓에 이미 다수의 무리를 이루는 분위기에 압도되었고, 아이는 중2 때 친구들에게 애틋함과 미련을 쉽게 버리지 못하며 쉬는 시간마다, 혹은 기회가 될 때마다 친구들의 학급으로 찾아갔다.

무리에 속해야 하는 학년 초 적응기는 1년의 학교생활을 결정하는 중요한 시기다. 이미 시작부터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친구를 놓친 것이다.

허전하고 애틋한 자신의 마음을 챙기는 동안 아이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친구를 만들지 못하고 중3 학급의 분위기에서 튕겨져 나오게 되었던 것 같다. 여러 차례 왕따 등의 학교폭력을 의심하기도 했으나 아이의 생각도, 정황도 학교폭력이라는 단어로 정의되지는 않았다. 의도치 않게 그 시기, 그 아이들 속에서 자기 자리를 찾지 못한 것이다.

사춘기 학창 시절.

그 시기의 아이들은 절대적으로 친구관계 소속감이 필요하다는 걸. 같은 방향을 보지 않으면 누군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엔 아직 어린아이들의 세계라는 걸 알고 있지만, 아이는 인생의 한순간 어느 시점, 하필 이 시기에 지나치게 외로운 사람이 되어 버렸다. 이후의 학교는 아이에게 외롭고 괴롭고 아픈 공간과 시간으로 채워졌음은 말할 것도 없으리라…


하필 그 시기의 그 시간들이라는 운 없음에 야속해하기도 했지만, 사람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일도 있는 거니까…


간간히 표현되었던 아이의 sos를 남편과 나는 사춘기의 어디쯤으로 판단해 버렸다.

아이의 학교생활이 힘들 수 있다는 건 공감하고 이해했다. 곧 적응해서 괜찮아질 거라고, 다 지나간다고, 조금만 더 즐거움을 찾아보라고….. 긍정으로 포장한 설득은 아이에겐 생생한 힘겨움을 이겨낼 수 있도록 도움을 주지 못했다. 아무도 자신을 도와주지 못한다는 슬픔의 감정들은 아이에게 독이 되어 서서히 아프게 만들었다.  

아이는 수시로 교실이 너무 시끄럽다, 가슴이 아프다, 숨쉬기 어렵다, 머리가 아프다를 말하며, 학교생활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조용히 책 읽기와 글쓰기를 좋아하는 아이에게 그나마 아이의 성향과 글쓰기에 대한 애정을 인정해 주시는 담임 선생님의 운이라도 있다고 생각했는데(그건 순전히 내 위주의 생각이었다), 학교 생활에 회의감을 보이는 아이에게는 그런 여유를 느낄 새가 없었을 것이다. 담임 선생님의 온라인 공간을 통해 그나마 아이의 학교생활을 엿볼 수 있었던 게 다행이라고 생각이 들었던 반면, 아이의 겉돌음이 내내 느껴져서.. 부모로서 너무 마음이 아프기도 했던 시간들이었다.

1학기 마무리 글들이 올라오고 또 다른 학우들의 수많은 반응들을 지켜본다.

그 안에 아이는 없다.

아이가 없는 학교에서, 학부모로서 불편하고 서글픈 내 마음만 보인다.

난 부모로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망설이고 있는 걸까….

나는 아이를 격려하고 응원한다고 포장했지만, 결국 빠져나올 수 없는 코너로 몰아넣고 있었던 게 아닐까… 자문하며 길고 긴 1학기를 마무리했다.




종종 내가 후미코가 될 수는 없었을까 생각해 본다.

더 이상 주인이 없는 너의 그 자리에 앉아

네가 느꼈던 생각과 감정들을 나도 느낄 수 있었다면

네가 혼자 그렇게 아프지는 않았을까?


수없이 아이를 놓쳤던 시간들로 돌아가보지만

결국 지금의 내가 아닌 나는 아이를 이해하지 못했을 것 같다.

후미코가 오바야시의 의자에 앉고서야 내가 보는 것과 다른 창밖의 풍경을 이해하고 기우뚱한 의자에 불편을 깨달은 것처럼 나도 아이를 오롯이 마주하고야 아이가 보는 것을 조금이지만 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오늘도 나는 많은 후회를 하지만,

마음을 알아간다는 건, 내가 마음을 열고 비워야 채울 수 있는 것.

그때보다는 아주 조금이라도 어른인 엄마가 되었을까?…..






지극히 사적인 “용기 있는 엄마 되기” tip


처음부터 너무 걱정만 하지 마세요. 걱정은 시야를 가립니다.

적당한 걱정은 다음을 준비하게 하지만, 과한 걱정과 후회는 부모에게도 독이 됩니다.

어른의 방법, 나만의 방법으로 감정을 환기시키세요. 저는 집에서 나만의 공간(그래봤자 작은 탁자 하나지만^^)을 만들고 그 위에서 뜨개소품 만들기, 작은 그림 그리기, 미니어처 조립하기, 필사하기, 좋은 글 찾아 캘리그래피 꾸미기 등 작은 성취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능한 상황이라면 그런 방법들을 아이와 함께 나누어 보는 것도 좋습니다.(거의 대다수 거절당하고 있지만 하나라도 함께 해주면 하루가 뿌듯해요)  

아이의 감정변화에 일희일비하면 이성적인 판단이 어렵습니다.
담임 선생님, 학교의 상담 선생님과 꼭 아이의 학교생활을 점검해 보세요.

학교에서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아이의 감정과 행동은 관찰되기 어렵습니다.

교사가 못 미덥다는 것이 아니라, 자녀의 돌봄과 교육은 부모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아이를 관찰하세요.(감시와 통제가 아닙니다)

부모도 마음이 아프지만, 회피하지 마세요. 회피하는 만큼 아이가 아파요.  

충분히 대화하고 충분히 듣고, 공감해 주세요. 메시지를 주려고 하지 마세요.

‘다 지나갈 거야, 결국 다 잘될 거야’ 같은 막연한 긍정은 불안을 키웁니다.

‘이 힘든 시기가 나중의 너에게는 좋은 재산이….’ 아이에겐 의미 없는 메시지는 귀와 마음을 닫게 하는 지름길입니다.

저는 제 걱정과 불안에 휩싸여 아이에게 긍정세뇌를 하면서, 안 그래도 기질적으로 내향적인 사고를 하는 아이에게 자신을 탓하게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부모와 대화를 나누는 것에 부담을 느끼거나 싫어하는 아이라면 이런 방법을 활용해 보세요.

짧은 일기나 메모를 쓰게 하거나 그날의 감정을 날씨를 기록하듯 달력에 표시(스티커 붙이기 등)해보며 기분의 변화를 관찰해 보는 것도 좋습니다.

아이의 감정과 행동의 변화는 상담에 큰 도움이 됩니다.

말을 걸기 어려운 경우도 ‘오늘은 00이 기분이 00 하구나, 무슨 일이 있었어?’하면서요. 먼저 말을 걸어오는 사춘기 아이는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분명 내 기분도 흐림이지만, 부모로서의 나는 더 큰 용기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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