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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디 Jun 21. 2024

돈은 없지만 미국은 가고 싶다면

정부지원 해외인턴 프로그램



“이렇게 열심히 살아줘서 고마워요”



대학생이 되면 해외에 나갈 기회가 많아지기를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대학에 와 보니 할 일이 참 많았고, 해외에 가려는 계획도 마음처럼 잘 되지 않았습니다. 1학년 때부터 이런저런 해외연수 프로그램에 지원했지만 번번이 떨어졌습니다. 그나마도 합격한 프로그램도 금전적 어려움으로 인해 포기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맹장수술 후 알게 된 정부기관 프로그램은 어학연수 4개월 + 인턴 8개월 = 1년가량 미국에 다녀올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소득분위가 낮으면 낮을수록 더 많은 지원을 받을 수 있어 저는 2,400만 원까지도 지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다신 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이런 일생일대의 기회를 놓치면 너무나 아쉬울 것 같아 간절한 마음으로 준비했습니다.



먼저 지원 자격 중 하나였던 영어 어학 성적을 제출해야 했는데 급하게 스피킹 학원을 등록해 벼락치기를 했습니다. 영어 성적은 간신히 커트라인을 넘겨 지원할 수 있었고, 자기소개서도 꼼꼼히 썼습니다. 삶에서 겪었던 문제들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어떠한 환경에서도 잘 적응할 수 있다는 것을 특히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어학 능력을 키우기 위해 공부한 것, 한국을 알리는 활동과 교내 외국인 유학생 교류 봉사활동을 했던 이야기를 썼습니다.



관련 정보 카페에서 스터디원들을 구해 함께 모의면접을 준비했습니다. 면접 스터디원 분들이 대부분 합격해 후에 미국에서 만났을 때도 참 반가웠습니다.






미국연수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면접장에서였습니다. 기다리면서 긴장이 되어 옆 지원자분들과 수다를 떨다 떨리는 마음으로 면접장에 들어갔습니다. "면접 보기 전에 무슨 생각을 하셨어요?" 하고 물으시고는 제 자기소개서를 쓱 훑어보셨습니다. 곧 "이렇게 열심히 살아줘서 고마워요"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순간 울컥했지만 면접을 망치고 싶지 않아 꾹꾹 참았습니다.



프로그램은 언제부터 알게 되었는지?

이 프로그램이 본인의 꿈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왜 미국에 가고 싶은지?

(자기소개서에 이곳저곳 옮겨 다니며 생활한 경험 쓴 것을 바탕으로) 현재는 어떻게 살고 있는지?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친해질 것인지?

재정적인 계획은 어떻게, 얼마나 준비가 되어있는지?

재정적인 어려움 생겼을 때 도움 줄 사람 있는지?



편안한 분위기 속 자기소개서의 내용을 바탕으로 질문을 하셨습니다. 그러다 금전적인 계획에 대해서 는 아주 구체적인 이야기를 듣기를 원하셨습니다.



"집에서 도와주신다고 했어요"



돈이 없다고 하면 떨어질 것 같아 일단 질렀습니다. ‘설마 시설에서 나 몰라라 하시진 않겠지’ 하는 강한 믿음도 한몫했던 것 같습니다. 인성면접을 통과하고 다음 관문은 프로그램 미국 스폰서에서 주관하는 영어 인터뷰였습니다.



어떻게 프로그램에 대해 알게 되었는지?

하고 싶은 인턴십 종류는? 이유는?

전공에 대해서 말해달라

어학연수 선호 지역을 San Diego로 썼는데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선호 지역은 어디인지? 그 이유는?

인턴십은 거의 다 무급인데 괜찮은지?

본인이 어떻게 Qualified 되어있는지?

상사에게 unpleasant 한 피드백을 받은 경험이 있는지? 만약 그럴 경우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

재정적인 준비는 어느 정도 되어있는지?

시골로 갈 수도 있는데 괜찮은지?

본인의 약점이 뭐라고 생각하는지?



영어 면접이라 걱정했지만 다행히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범위의 질문들이라 겨우겨우 대답을 했습니다. 전공 관련 일해볼 수 있는 기회이고, 정부에서 지원금도 준다고 해서 무급도 상관없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가능하면 정치외교학 전공생으로서 인턴생활은 미국의 정치 중심지인 워싱턴 D.C. 에서 해보고 싶다고 강하게 어필했습니다. 그렇게 프로그램 참가자로 선발되고 미국으로 가는 길목에 한 걸음 더 다가섰습니다.






"돈을 어떻게 마련하지?"


정부에서 지원을 해준다고 해도 인턴십이 바로 연결되지 않을 수도 있고, 지역에 따라 집값이 부담될 수도 있고, 병원을 가게 될 수도 있는 여러 변수가 있었기에 프로그램 참가자 분들의 후기를 바탕으로 예상 생활비용을 산출했습니다. 1,400만 원가량이 더 필요했습니다. 제게는 너무 큰돈이었습니다. 아르바이트를 하긴 했지만 학교도 다니면서 1,400만 원을 더 모으기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목사님과 얘기를 나누고 나서 목사님께서는 OOO협의회에 제 사정을 설명하고 도움을 요청해 주셨습니다. OOO협의회 팀장님을 만났고 펀딩을 열어보겠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후 감사하게도 펀딩을 통한 지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OO제약에서 운영하는 재단의 장학생 모집에도 지원하여 장학금을 받았습니다.



대학 교학팀에도 찾아가 도움을 구했습니다. 전 대학 총장님께서 해당 장학금을 기부하신 걸로 알고 있었는데 지금은 경기도지사로 열심히 일하고 계시는 당시 학교 총장님께서는 사회적 이동성에 상당히 관심이 많으신 분이었습니다. 제 사정을 설명드리고 지원받을 수 있도록 교학팀에서 도움을 주셨습니다.



아르바이트 200만 원 + 펀딩 500만 원 + 장학금 400만 원 + 대출 300만 원= 1,400만 원(!)



이렇게 해서 미국에 갈 비용을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제게 미국에 갈 수 있는 기회를 주셨던 것, 금전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신 분들께 너무나도 감사드립니다.






이제 금전적인 고민을 어느 정도 덜고 되어 본격적으로 미국으로 떠날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준비는 참 순조로웠습니다. 학교에서는 다행히 해외 인턴십을 학점으로 인정해 줄 수 있는 과목을 수강할 수 있었고 3학년 2학기를 마친 저는 4학년 1학기를 인턴십으로 채우고 1학기 조기졸업을 하기로 계획했습니다.



스폰서에서는 회사 리스트를 주시고 5지망까지 작성해 제출하라고 하셨습니다. 기존 프로그램 참가자분에게도 연락을 드렸는데 참 친절하게 구직 관련 정보를 공유해 주셨습니다. 영문 이력서를 쓰면서 보잘것없는 이력이 부끄럽기도 했지만 최선을 다해 이력서, 커버레터를 준비했습니다.

 


각종 서류 제출, 항공편, 해외 사용 카드 발급, 비자 발급, 보험 가입 등 할 게 많았지만 하루하루 설레기 바빴습니다. 집 구하는 일이 걱정이었는데 함께 가는 참가자분들과 저렴한 홈스테이를 구해 살기로 했습니다. 같은 침대에서 자는 것이라 약간은 불편할 것 같았지만 감안하기로 했습니다. 짐을 쌀 때는 캐리어 안에 한국에서만 팔 것 같은 화장품, 렌즈를 잔뜩 넣었고 전기장판도 함께 챙겨갔습니다.







드디어 출국 당일!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체크인을 하는데 한국-홍콩행 티켓만 주고 홍콩-LA행 티켓은 주지 않았습니다. 뒤이어 제가 승객들 중에서 랜덤으로 선정되는 ‘특별 수색 대상’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표를 한 장만 받고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인천공항에서 홍콩으로 가는 도중엔 난기류를 만났는데 사람들 소리 지르는 소리에 정말 심장이 철렁했습니다. 잔뜩 긴장한 나머지 온몸의 근육이 뻐근해졌습니다.



예정보다 홍콩 공항에 늦게 도착했고 저는 LA행 비행기를 놓칠까 마음이 급해졌습니다. 담당 직원 분은 기다리라는 말만 반복해 비행기를 놓치면 어쩌나 검색하면서 불편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가까스로 표를 받고 보안검색대를 통과했습니다.  제 표에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SSSS라는 표시가 있어 짐도 다 꺼내서 검사해야 했습니다. 돌이켜보면 별일 아닌데도 참 조마조마했던 기억이 납니다.



긴 비행 끝에 마침내 미국 땅을 밟았습니다. 긴장되고 설레고 새롭고 행복하고 감격스럽고 때로는 너무나도 감당하기 어려웠던 미국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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