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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재윤 Jul 02. 2022

모든 선택은 나의 것.

세상은 나를 기다린다.

글쓴이 주: 죽기 살기로 살아왔지만 여전히 먹고살기 힘든 5, 60대 영세 자영업자들에게 던지는 삶과 행복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들입니다. 쌀장사로 20년을 살아온 제 경험과 느낌을 바탕으로 재미있게 풀어보고 있습니다.      



모든 선택은 나의 것.

-세상은 나를 기다린다-


장애를 가진 아이가 태어나면 그 감당은 오롯이 그 가족이 해야 한다. 그 순간 가족의 삶은 수렁으로 빠져든다. 장애를 가진 가족을 위해 또 다른 가족 구성원이 늘 24시간 곁에 붙어있어야 한다. 경제적인 문제도 같이 온다. 


나는 아들이 장애가 있다는 진단을 받고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누군가 경험이 있는 사람도 없었다. 물어볼 곳도 없었다. 병원에서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가르쳐 주지도 않았다.


바로 그때 직장 바로 근처에 쌀집이 하나 생겼다. 조합 일로 가끔 방문하면 늘 바쁘게 일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직장에서 막내 축에 속했던 나는 다른 직원들보다 늘 일찍 출근했었는데, 내가 출근하는 길에도 그분은 이른 아침부터 오토바이로 전날에 다 못한 쌀 배달을 하고 있었다. 쌀집에는 5톤 트럭이 하루에 한 대 씩 와서 쌀을 부리고 갔다. 거의 매일이었다. 쌀집이 생긴 지 불과 1, 2 년 만인데도 하루가 다르게 급성장해가는 것 같아 보였다.      


그래 저거다. 나도 쌀장사를 하자. 신협 막내 생활을 해서 어떻게 아들을 보살피겠는가? 자영업을 하면 조금이라도 더 아내를 도와줄 수 있지 않겠는가. 


아! 그러나 지금에야 돌이켜 생각하니 아내가 갓 돌 지난 아들을 업고, 딸을 안고, 버스를 타고, 해운대구 반송동에서 병원이 있는 초량 성*도 병원까지 다닐 때 나는 한 번도 아내와 함께 병원에 같이 가 주지 못했구나.     

쌀장사를 하기로 마음먹은 지 꼭 한 달 만에 직장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2000년 12월 31일까지만 근무하기로 했다. 부랴부랴 가게를 알아보고 다녔다. 마음이 설렜다. 가게 문만 열면 손님이 구름처럼 모일 것 같았다.   

부산시 동래구 안락2동 사무소 근처에 충렬 시장이 있다. 

시장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단독주택이 있었다. 대지가 50여 평, 건평이 30여 평 정도에 조그만 2층짜리 건물이다. 2층에는 건물주 할머니가 아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 


1층에는 근린생활시설로 된 10평짜리 점포가 2개 있었다. 빈 점포는 6평 정도가 장사를 위한 매장이고, 나머지 4평 정도에는 방 한 칸과 부엌, 화장실이 딸려있었다. 


한 쪽 점포에서는 벽지 도배 인테리어를 하는 사장님이 7살, 5살 남매 아이를 키우면서 장사를 하고 있었다. 인테리어 사장님과 아이들을 보니 장사와 살림을 같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와 아내는 여기서 18개월 된 쌍둥이 아이들을 키우면서 함께 장사를 하기로 했다. 장사를 위해서 신혼 초에 장만했던 아파트를 처분했다. 


어? 그러고 보니 나도 내 이름으로 된 아파트를 가졌던 적이 있었네? 전에 딸에게 아빠 친구들 중에 아빠가 제일 먼저 아파트를 샀었다고 자랑스레 이야기했다. 딸이 말했다.


- 대신에 아빠가 제일 먼저 팔았잖아!     


아파트를 처분한 돈으로 점포를 얻고, 매장에 전시할 쌀을 사 넣고, 쌀 배달용 오토바이를 장만했다. 점포 앞에 간판도 달았다. 행복한쌀창고. 개업일은 2001년 1월 1일이었다. 밀레니엄의 첫 시작, 환상적인 날짜이지 않은가. 


그러나 그때부터 행복 끝, 불행 시작이었다. 인생은 쓰디쓴 것이야. 아무런 경험도 없이 세밀하게 계획도 하지 않고 아무런 조언도 듣지 않았다. 무턱대고 개업을 한 데서부터 생겨난 예견된 미래였다. 


쌀 시장의 전체적인 현황과 산지 쌀 공급처 등을 세밀히 알아보고 신중히 결정하지 않은 과오를 저질렀다. 그런 사람에게 세상이 은혜를 베풀어 줄 이유가 없었다. 


다시 사주마고 약속한 아파트는 간 데가 없어졌다. 열 평짜리 전셋집을 전전했다. 그간 고생은 필설로 형용할 수 없다. 흑흑.. 


장사 초기 2년 정도는 점포에 딸린 한 칸짜리 방에서 장사와 살림을 겸했다. 아내와 쌍둥이 아이들이 너무 힘들어했다. 특히 장애가 있는 아들을 보살피는 일은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 뭐?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 그렇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이 땅의 장애인을 보살피는 모든 어머니들은 사람이 아니다. 신이다. 하느님보다 천 배 훌륭하고 부처님보다 만 배 훌륭하다. 


장사와 살림을 분리해서 아내와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편히 쉴 수 있도록 해야 했다. 가게 옆에 주택을 전세로 얻어 살림을 분리했다. 이후 살림집은 10평 정도 전셋집을 전전했다. 


시간은 빨리 흘렀다. 개업한 지 12,3년이 흘렀다. 사업은 여전히 지지부진했다. 어느덧 내 나이 마흔 중반을 바라보고 있었다. 


유통업을 하는 동생뻘 사장이 있었다. 이곳저곳 정이 많은 동생이다. 


-행님, 임대아파트에 신청해 보이소. 우리 친구가 임대아파트에 사는데 요새 임대아파트가 너무 잘 돼있다 아임니꺼. 

-흠.. 임대아파트라. 


대부분의 임대아파트는 부산 시내에서 너무 외진 곳이 아닌가. 학교는 어떻게 다닌단 말인가. 딸이 중3인데.. 한창 예민한 시기인데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지금은 딸 걱정을 할 때가 아니고 내 코가 석자다. 딸아 미안하다. 아빠를 용서해라. 


2013년 22평형 LH 임대아파트에 입주 신청을 했다. 많은 신청자들이 있었다. 다행히 나도 당첨되었다.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입주 전날 아파트를 미리 둘러보았다. 현관문을 열었는데 거실에 쏟아져 들어오던 햇살이 얼마나 눈부시던지. 사직 야구장만한 마루는 그렇게 넓어 보일 수가 없었다. 거실 앞쪽으로 트인 베란다는 또 어떻고.. 


나는 거실 마루에 길게 드러누웠다. 거실 통유리에 푸른 하늘이 들어왔다. 속으로 생각했다.


- 아, 진짜 좋다. 이제 이사 안 다녀도 되겠다.


지금 나는 9년째 이 집에서 살고 있다.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온 가족이 다모여서 같이 뒹굴고 있는 지금이 최상의 행복이다.      


나는 20년 차 쌀장사다. 2001년에 시작한 쌀장사는 자리 잡히는 데만 10년 넘게 걸린 듯하다. 이 책은 사업을 잘하기 위한 방법을 이야기하는 책이 아니다.      


-어? 이 사람은 나보다 더 힘든 것 같은데 오히려 더 즐거운 마음 같아 보이네?      


이런 마음을 가져가시면 나는 글을 쓴 보람이 있다.



-by 하재윤-


글쓰기 프로젝트

가제: 쌀장사 20년, 인생은 아름다워

부제: 외롭고 높고 쓸쓸한 당신에게


들어가는 말


목차     

1. 인생은 닥치는 대로 사는 것.  


순전히 내 탓이다.

인생은 느닷없이 오고..

-모든 선택은 나의 것

적당히 하고 살아요.

아들 성요셉마을로 가다

일기 아빠의 사과문 2009년 3월 29일 

천직

선택은 나의 몫. 아들 탓하지 마라

물밑에서 일하는 사람도 있다.

세상은 공평하지 않다. 

인생은 불공정하다.  



2. 장사는 힘들어  

3. 세상이 만든 질서에서 벗어나기 

4. 내 인생의 주인 되기 

5. 인생은 한 방향으로 버티는 힘이다. 

6. 인생, 놓치지 말아야 할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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