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능 부분은, 일단 보류 중이다
나는 내가 똑똑하고 게으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일단, 게으른 건 확실하다. 그건 이미 삶이 증명한다.
주말이면 거의 기절하듯 자고, 할 일은 벼랑 끝에 몰려야 손에 잡히고, '딴짓하다 갑자기 몰입'이 나의 기본 작동 방식이다. 움직이는 게 귀찮아서 배달을 시키고, 현관 앞에 놓고 간 음식을 10분이 지나서야 가지러 간 적도 있다.
데카르트는 생각하는 자신을 의심하지 않았고, 나는 게으른 나 자신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는다.
나는 나를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여기지만, 그 생각의 대부분은 침대라는 안전기지에 누워서 이뤄진다.
이 정도면, 게으름은 충분히 증명했다.
그런데, 똑똑한 건... 잠깐 다시 생각해봐야 할지도 모른다.
나는 가끔―아니 사실은 자주 멍청하다.
핸드폰을 방금 사용하다가도 어디 뒀는지 잊어버리고, 세탁기에 들어간 지폐는 예사다.
내가 쓴 글의 논리를 스스로 못 따라가서 다시 읽고 공부할 때도 많다. 놀랍게도, 그 글을 쓴 사람은 나다.
'아, 이런 말도 했었어? 나 이 글 쓸 때 머리 좀 굴렸는걸?'
... 이건 뭐 개그 코너도 아니고
그런데 주위를 둘러보면
세상은 자칭 '게으른 천재'들로 가득하다.
"내가 진짜 마음만 먹으면 소설 한 권 쓴다니까?" 하는 사람,
"나는 다 잘할 수 있는데 흥미가 없어서 안 해"라고 말하는 사람,
"머리는 좋은데 손이 안 따라줘서" 같은 레퍼토리.
재밌는 건, 스스로를 바보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어쩌면 그것이 부끄러워서 숨기고 있는 것일 지도 모르지만,
일단 내가 지금까지 관찰한 바로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본인의 지적능력에 다소 관대하다.
왜일까?
많은 사람은 자기를 최소한 멍청하다고는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야 실패가 자신 때문이 아니라 환경 탓이 된다.
그리고 게으름은 인간의 본성이면서 동시에 면책특권으로 기능한다.
"내가 안 해서 그렇지, 하면 잘해"라는 위안.
천재는 실패해도 스스로를 긍정할 수 있다.
부지런한 사람은 실패하더라도 이를 극복하고 나아갈 원동력이 존재한다.
그러나 게으른 바보는 실패하면 그게 자기 능력의 한계일 수 있다는 공포를 마주해야 한다.
그런데 그 공포는, 게으름이 해결해 줄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잔인하다.
세상에 가장 많은 건 게으른 일반인이다.
아니, 천재는 애초에 많을 수가 없다.
이건 날카로운 사회비판이나 과도한 조롱이 아니라 단어의 정의가 그렇다.
천재가 많다면 그건 천재가 아니라 그냥 인간이라는 종이 원래 똑똑한 것이다.
진짜 천재라면 이 정도는 되어야 한다.
남들이 다 꽉 막혀있을 때 말 한마디로 시스템을 관통하는 개선안을 내놓는다든지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 것을 먼저 통찰한다든지
입을 열면 입에서 시가 흘러 나오고 글을 쓰는대로 출판 계약이 따라붙는다든지
회의 시간에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갑자기 완벽한 프레젠테이션을 선보인다든지
그런데, 나는 시스템을 갈아엎은 적도 딱히 없고,
내가 남들보다 먼저 봤다고 느낀 것은... 사실 남들도 이미 봤는데 굳이 말 안 한 것이 대다수다.
내가 하는 말은 그냥 '말'이고,
나는 회의 때 멍하게 앉아 풀린 눈으로 오늘 급식에 돈까스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렇게 세상은 그냥... 별로 특별하지 않으면서도 움직이지 않는 사람들이 다수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이건 누구도 지적하지 않는다. 지적하면 싸움 나니까.
다들 속으로만 생각할 뿐이다.
"쟤는 안 하는 게 아니라, 그냥 못 하는 거 같은데..."
나는 내가 똑똑한 사람일 가능성을 완전히 부정하기는 싫다. 그러면 좀 슬퍼지니까.
나도 가끔은 진짜 예리한 통찰을 하기도 하고,
평범한 문장 안에 의외의 깊이를 던질 때도 있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건 나의 단면일 뿐이다.
똑똑한 순간은 가끔 스쳐 지나가지만,
멍청함은 정기 구독 요금 청구서처럼 주기적으로 찾아온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게으름은 내 본성에 너무 깊게 박혀 있어서 뽑아낼 수가 없다.
하지만 내가 천재가 아닐 수도 있다는 가설을 받아들인 이상,
너무 게을러서는 안 된다.
그랬다가는 내 삶이 꽤나 고달파질 것이다.
그러니 최소한, 내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게을러야 한다.
이건 나 자신에게 남겨둔 마지막 생존 전략이다.
그래서 오늘도 글을 쓴다.
내가 천재이길 바래서 쓰는 것은 아니지만,
'감당할 수 없는 게으른 바보'까지는 되지 않게끔.
더 솔직히 말하면,
어쩌면 내가 게으른 바보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없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아마도,
인간이라는 종의 몇 안 되는 장점 중 하나가 이것일 거다.
자기를 의심하면서도 계속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
이렇게 또 한 편의 글이 나왔다.
오늘 나는 똑똑함에서는 한 걸음 멀어졌지만, 대신 부지런한 쪽으로 한 발짝 옮겨갔다.
p.s. 발행 예약을 일요일에 걸었다고 생각했는데, 수정하다 날짜를 확인 안해서 금요일에 올려버렸다.
멍청 1스택 추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