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을 보지 말고 달을 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말하는 사람의 지향—그가 진짜로 가리키는 본질을 보라는 뜻이다. 사소한 형식이나 전달 방식에 매달리면, 오히려 핵심을 놓치게 된다는 격언이다. 토론의 문맥에서는, 상대의 의도를 선의로 해석하라는 ‘자비의 원칙’으로 규정된다. 맞는 말이고, 좋은 말이며, 아주 유익한 말이다.
하지만 항상 맞는 말은 아니다.
나는 이렇게 한번 되물어보고 싶다. 달을 가리키는 그 손가락이 가운뎃손가락이라면, 사람들은 정말 달을 보려고 할까?
아니, 달이 눈에 들어오기는 할까?
진실은 중요하다. 어떤 메시지를 전할 때, 그 내용이 거짓이라면 메시지의 의미가 흐려진다.
아니, 어쩌면 무의미를 넘어, 잘못된 선동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진실은 중요하다.
그러나 일상에서는 진실이 반드시 전달되어야만 의미가 생기는 경우가 많다. 특히 말을 꺼내는 목적이 상대를 움직이는 것, 설득하거나 납득시키는 것이라면, 진실 자체만으론 부족하다. 그것을 담는 방식, 말투, 태도, 전달 방식 모두가 메시지의 일부다.
어떤 똑똑한 사람들은 "난 맞는 말 했을 뿐"이라며 방식의 책임을 회피하곤 한다. 그리고는, 상대방을 '본질이 아닌 곁가지에 매몰되어서 합리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는 비이성적인 사람'으로 매도하기도 한다. 그러나, '맞는 말'이 '옳은 말'이 되려면, 그 말이 목적을 달성해야 한다. 아무리 진실한 말이라도 상대를 닫아버린다면, 그것은 실패한 소통이고, 현실에선 무력하다. 결국엔 혼잣말로 그칠 뿐이다.
상대방을 '비이성적'이라고 매도하는 그 똑똑한 사람이 했던 말도 결국엔, 자신의 방식에 경도되어서 합리적인 발화를 하지 못한 단편적 이성의 실패물일 뿐이다.
'맞는말? 쳐맞는 말이겠지'라는 농담,
과연 단순한 농담일까? 어쩌면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짧고, 가장 강력한 커뮤니케이션 비평일지도 모른다.
이런 태도는 특히 사람들을 이끌거나 설득해야 하는 위치에 있는 이들에게 더욱 절실하다. 정치인, 리더, 교사, 혹은 공공 담론을 주도하는 인물들—그들은 진실을 말하는 것만큼이나, 그것이 사람들에게 닿도록 만드는 책임을 가진다. 아무리 옳은 말을 했더라도, 그것이 분노나 경멸, 조롱으로 포장되어 있다면, 사람들은 그 내용을 외면하게 된다. 리더십이란 진실을 훈수두는 태도가 아니라, 사람들이 함께 고개를 들어 달을 바라보게 만드는 힘이다.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 중지라면, 결국 사람들은 달이 아니라 모욕을 본다. 달을 보여주고 싶다면, 손가락도 그에 걸맞게 들어야 한다. 진실을 가리킨다며 던진 손끝이 누군가에겐 단절과 배제의 신호일 수도 있다. 그래서 말하는 자에게는 더욱 큰 책임이 따른다. 말의 무게는, 그것을 믿으라고 요구하는 사람의 태도로 결정된다.
그것을 무시하고 태도를 경시한 채 진실에만 집착하는 행동은, 어쩌면 무례함이나 전략적 실패를 넘어서 '설득할 수 없다'는 자신감의 결여에서 비롯된 무책임한 포기일지도 모른다.
불편한 방식으로 전달하려고 하는 감춰진 진실은 결국 아무에게도 닿지 않는다. 진실은 내용에 있고, 의미는 전달에 있다. 이 둘이 함께하지 않으면, 달은 영영 하늘 어딘가에서 외면당한 채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