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난 기대감으로 가슴이 두근거리고 조바심치면서 무언가를 기다리던 그 짜릿한 기분을 느껴본지가 오래된 것 같다. 무엇을 해도 설레지 않고, 기대감도 없는 나이가 되어버린 걸까?
여행을 앞두고 있거나 누군가와의 만남을 앞두고 있거나 이벤트를 앞두고 있으면 기대감에 설레어야 할 텐데 오히려 만에 하나 일어날지도 모르는 일에 두려움을 느낄 때가 더 많다. 즐거운 일을 모두 겪어서일 수도 있고 생각지도 못했던 어려운 일들을 많이 만나서일수도 있다. 이유야 어찌 됐든 설렘을 지니고 살아갈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
그래도 나를 가장 설레게 하는 것은 여행이다. 여행 계획을 세우고, 점점 떠나는 날이 다가오면 조금씩 기대감이 피어오른다. 특히 여행지 관련 동영상을 보고 루트를 짤 때 그 설렘은 최고가 된다.
무슨 옷을 입고 갈까, 모자는 무엇을 쓸까, 스카프는 무엇을 두르고,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쇼핑을 하는 게 즐겁다. 그리고 여러 음식점을 찾아보며 무엇을 먹을까 궁리하는 즐거움도 쏠쏠하다.
날씨를 검색하고, 여행지의 최근 상황을 알려 주는 정보들을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다.
이런 즐거운 과정을 거치면서 여행을 계획하다가 막상 떠나는 날이 되면 갑자기 걱정이 시작된다. 비행기는 안전하겠지, 렌터카를 타고 타니다 사고는 나지 않겠지, 여행 중에 내가 갑자기 쓰러지지는 않겠지. 등등. 정말 어이가 없다.
그래서 나는 여행 당일에 설렘 반 두려움 반의 감정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무사히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면 별일 없이 잘 다녀왔다는 생각에 무언가 프로젝트를 성공한 것 같은 뿌듯함까지 느낀다.
남들이 들으면 사서 일을 벌이고, 사서 걱정한다고 할 것이다. 집에 가만있으면 그런 걱정도 없을 텐데 뭘 그렇게 인생을 어렵게 사느냐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게 나인걸 어떡하겠는가. 약간의 긴장감이 삶에 없으면 인생이 무의미하게 느껴진다고 한탄할 것이 분명한 나이니까.
별일이 없는 삶이 행복한 삶이라는 깨달음을 얻은 지 오래라서 설렘이든 두려움이든 나의 심장을 뛰게 하는 일이 이제는 그리 반갑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일어나지 않는 평범한 하루에 감사하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주위에 친구들에게 일어나는 나쁜 소식을 들을 때마다 그들의 불행에 가슴 아파하면서도 나한테 그런 일이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에 안도하는 나의 모습을 보게 된다. 그러면서도 언제든 나에게도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현실에 불안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최근에 친구 딸이 암에 걸렸다는 소식을 들었다. 우리 큰 아이랑 동갑이고 자라나는 모습을 보면서 지내왔던 사이라서 그 말을 들었을 때 충격이 컸다.
같이 손잡고 울면서 젊은 아이라 잘 이겨낼 거라고 격려하고 위로했는데 친구는 모임에도 나오지 않고 연락도 잘하지 않았다. 느낌으로 아이의 상태가 좋지 않을 거라 짐작만 할 뿐이었다.
다른 친구를 통해 들으니 암이 전이되어서 항암치료를 해도 점점 나빠지고 있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친구를 위로할 어떤 말도 떠오르지 않아서 전화조차 못하고 있다.
대학 졸업하고 좋은 회사에도 들어가고 곧 결혼 예정이던 남자친구까지 있던 딸아이가 갑자기 발병해서 그 모든 것을 잃어가는 것을 지켜보는 엄마의 마음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친구가 암흑 같은 터널을 잘 헤쳐 나오길 바랄 뿐이다.
지금 친구에게 어떤 위로도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아서, 특히 친구가 보기에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이는 나의 위로가 큰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아서 전화도 못하고 있다.
그런 인간의 성향을 잘 알기에 과거에 나도 안 좋은 일들이 있을 때에는 친구들과 연락을 끊었던 것 같다. 가족 외에는 나의 아픔을 절절하게 나눠줄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기쁨을 나누는 것도 아픔을 나누는 것도 결국은 가족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기쁨은 나누려고 하면 잘난 체 하거나 자랑하는 것으로 비추기 쉽고 아픔은 드러내고 싶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니 진정으로 나를 오롯이 이해해 주는 사람은 가족 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
인생길에서 예기치 않게 다가오는 시한폭탄들을 생각하면 두렵기만 지금 이 순간 평화로움에 감사하고 그저 잘 살아갈 일이다. 내가 노력한다고 바꿀 수 있는 것들이 아니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