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요리

by 작은영웅

출근 준비로 바쁜 아침 시간, 아빠에게서 전화가 온다.

“왜 아빠?”

“오늘 저녁에 올래? 김치찌개 끓여 줄게.”

“오늘은 시간 안돼. 요즘 연말이라서 바빠.”

“알았다”

바로 뚝 전화가 끊긴다. 딸을 보고 싶어 하는 아빠만의 표현 방법이다. 미리 약속을 정하지 않은 갑작스러운 초대에 응하기 어려운 현대인의 삶을 이해하지 못하고 아빠가 서운해하지 않을까 염려되는 마음을 갖게 한다. 그래서 변명이라도 할라치면 이미 끊겨버린 전화.


차로 20분 남짓한 거리에 친정집이 있다. 한동안은 친정집에 가면 부모님을 모시고 나와 맛집을 찾아다니며 밥을 먹었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좋아하시지만 아빠는 마뜩지 않아하셨다. 특히나 비싼 가격표를 보시면 별로 좋아하지 않으셔서 가성비 좋은 집으로 가거나 가격을 비밀로 하거나 했다.

그러면서 알게 된 게 아빠는 외식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엄마나 나나 부엌에서 요리하고 싶어 하지 않았기 때문에 툴툴거리는 아빠와 외식은 계속되었다.


그러던 와중에 아빠가 요리를 하기 시작하셨다. 처음에는 삼겹살 구이나 생선구이처럼 단순한 음식이었으나 점차 김치찌개나 동태탕 같은 요리를 하기 시작하셨다. 재료를 아끼지 않은 음식은 맛있었고, 열렬한 우리들의 호응에 아빠의 요리는 점차 발전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외식은 사라지고 아빠가 만든 요리로 가족 식사를 즐기게 되었다.


어릴 때 아빠는 음식에 관한 한 엄청 까다로운 분이셨다. 음식은 맛있게 만드시지만 만드는 속도가 느렸던 엄마는 아빠의 음식 타박을 많이 들었다. 아빠가 엄마의 음식에 대해 칭찬하는 소리를 들어본 기억이 별로 없다. ‘맛있다’는 말은 거의 안 하셨고, 음식을 드시면서 아무 말이 없으시면 그게 칭찬이 무뚝뚝한 분이셨다.

그런 아빠였기 때문에 엄마가 출타하셨을 때가 문제였던 것 같다. 정확한 상황은 기억나지 않지만 엄마가 없는 부엌에서 내가 아빠의 저녁 식사를 준비한 기억이 있다.

김치찌개를 끓였던 것 같은데 아빠가 맛없다고 할까 봐 노심초사했던 것 같다. 평소에는 부엌에 가본 일도 없던 내가 수십 번 간을 보면서 찌개를 끓였다.

아무리 노력해도 맛이 별로인 것 같아 미원을 잔뜩 넣었더니 맛이 확 변했다. 아주 맛있었다. 조심스럽게 아빠를 위해 상을 차렸더니 아빠가 국이 맛있다고 칭찬을 하셨다. 엄마도 듣지 못하던 칭찬을 들으니 너무 기뻤다.

그 상황을 지금도 기억하는 것을 보면 엄청난 기쁨이었던 것 같다. 자주 하지는 않지만 하려고만 하면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 것도 모두 이때의 경험 때문이다. 미원만 많이 넣으면 음식이 맛있어진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그 이후로 음식을 만든 기억은 그다지 없다.


어찌 됐든 아빠는 까다로운 입맛을 지닌 분 답게 음식을 맛있게 만드신다. 자기 검열이 까다로워서일 것이다. 가끔 집밥이 그리우면 아빠에게 전화를 한다.

엄마는 아빠한테 칭찬을 퍼부으면서 요리에서 손을 떼셨다. 밑반찬은 대부분 사다 먹고 국은 아빠가 끓이게 하고 엄마는 요리하는 법을 잊어버렸다고 하면서 요리를 하지 않으신다.


어느 날부터 일주일에 한 번은 아빠의 식사 초대를 받아 친정집에 간다. 퇴근하고 바로 가서 아무것도 안 하고 아빠가 차려준 저저녁을 맛있게 먹고 과일을 먹고 수다만 떨다가 집에 온다.

나이 든 부모님들이 부엌에서 분주하게 식사 준비를 하실 때, 나와 남편은 가만히 앉아서 주는 밥을 넙죽넙죽 받아먹는다. 자식을 위해 음식을 준비하고 같이 밥을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그 시간을 부모님들이 좋아하신다고 믿기 때문이다.


부모님이 더 노쇠하시면 이런 시간도 갖기 힘들 것이다. 부모님이 해주실 수 있는 시간 동안은 주는 밥을 열심히 먹을 생각이다. 아빠 음식 솜씨가 장난이 아니라고 칭찬만 해드려도 아빠는 행복할 테니까. 이런 시간들도 언제까지나 계속되지는 않을 것이고, 이런 시간들을 먼 훗날은 그리워할게 자명하다.

아빠한테 바로 전화해야겠다. 아빠표 김치찌개와 엄마표 계란말이가 먹고 싶으니 다음 주에 갈 거라고. 그러면 부모님은 또 설레는 마음으로 장을 보고 자식들을 기다리실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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