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 방문하는 카페에서 문자가 왔다. 이제부터는 노키즈존으로 전환한다는 내용이었다. 정원이 예쁘고 내부에 아기자기한 장식이 많은 곳이라 번잡스러운 아이들이 있으면 훼손할 위험이 있어서 내린 결정이겠지만 마음 한편이 씁쓸했다.
요즘 유명 카페들 중에는 노키즈를 아예 내걸거나. 카페에 들어가더라도 내부나 루프탑 등에 노키즈존을 표방한 곳이 많다.
아이들이 위험해서라고는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아이들의 소란스러움과 번잡함을 용납하지 못하는 것이다.
아이들이 우리의 미래라고 하면서 아이들을 낳으라고 독려하고, 아이를 가진 부모들에게 국가적 지원도 많이 하지만 사회적 분위기가 이렇다면 누가 아이들을 낳고 싶겠는다.
어딜 가도 환영받고 사랑받아도 모자랄 판에 이렇게 배척하는 분위기라니. 그러다 보니 어딜 가도 아이들 보기가 힘들어지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를 감지한 것이 3년 전 아산에 있는 매우 핫한 카페에 갔을 때였다.
카페 건물 앞에 펼쳐진 청보리와 벚꽃의 풍경이 아름답던 곳이었는데, 이 풍경이 한창일 때 외부의 공기는 약간은 차가웠다. 그래서 밖에서 산책을 하다가 실내에 들어와서 차를 마시며 뷰를 감상하는 것이 바람직한 카페였다.
그런데 실내 공간에 아이들과 강아지를 못 들어오게 하는 것이었다. 반려견이 실내에 들어오는 것을 막는 것은 이해가 되는 상황이었으나 아이들을 실내에 못 들어오게 하는 것은 이해가 가지 않아서 여러 번 그 글귀를 확인했다.
소중한 아이들을 강아지랑 같은 취급이라니. 어린아이들이 조금 번잡스럽다고 해서 입장을 막는다면 그 누가 아이를 낳고 싶겠는가.
우리 큰 아이가 어렸을 때, 차만 타면 울어대는 통에 명절에 친정과 시댁에 내려갈 때는 비행기를 타야만 했다. 자동차 안이나 기차 안에서 4시간 이상을 줄곧 울어대는 아이를 감당할 수 없었다.
비행기 안에서도 물론 울었지만 시간이 한 시간 남짓이라 그나마 아이가 덜 지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비행기를 타러 갈 때는 아이를 최대한 예쁘게 단장을 했다.
얼굴이 하얗고 머리카락이 약간 갈색이며 반곱슬이 아이는 이목구비가 크진 않았어도 사랑스러운 아이였다. 하얀색 둥근 카라가 달린 빨간 벨벳 원피스를 입히면 인형처럼 예뻤다.
아이는 비행기에서 한 시간 동안 시끄럽게 울 예정이었으므로 그나마 예쁜 아이가 울면 주변 사람들이 덜 짜증스러워할 것 같아서였다.
그 방법은 주효해서 아이가 울기 시작하면 남편이 아이를 팔로 높이 들어 올려 사람들에게 아이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러면 주변에 많은 분들이(당시에 비행기 안에 어린아이는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아이를 어르고 사탕도 주고 하셨다. 길지 않은 비행시간이어서 그분들은 안아서 달래주고 싶어 하시는 분들도 많았다.
물론 아이는 낯가림이 심해서 절대 가진 않았지만. 한 시간 정도 우는 시간 큰 아이는 비행기에서 사랑받는 존재로 변해 있었다.
내릴 때는 다들 덕담을 한 마디씩 하고 가셨다. 우는 아이를 달래느라 힘들었지만 조금은 뿌듯했던 우리 부부의 마음을 떠올려 본다.
여러 번 비행기를 탈 때마다 다들 우는 아이를 안타까워했지 뭐라고 하는 사람들은 없었다.
작년에 유럽 여행을 다녀올 때 비행기 안에서 아이를 안고 돌아다니면서 과자봉지를 나눠주는 아빠를 보았다.
그 과자봉지는 아빠의 편지가 있었다. 태어나서 일 년이 된 아이가 귀가 아파서 울어도 이해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사랑스러운 아이와 멋진 아빠였다. 과자를 먹으면서 아이가 울기를 기다렸지만 아이는 잠을 잘 자는지 거의 우는 소리를 내지 않았다.
물론 이유는 있겠지만 어린아이들을 거부하는 카페, 식당 등은 문제라고 생각한다. 유명하고 알려진 곳일수록 이런 곳이 많다.
그런 것들을 보면서 데이트하고 지낸 커플들이 결혼해서 아이를 갖지 않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지 않을까.
아이를 갖게 되면 많이 불편하겠구나, 가고 싶은 곳도 못 가게 되겠구나 이런 생각들이 들어서 어려운 길보다 조금은 더 쉬운 길을 택하느라 반려 동물로 전환하게 되는 게 아닐까 싶다.
어제 간 카페는 사진 찍기 좋은 스튜디오가 있는 카페였는데 아이들이 정말 많았다.
키즈카페에 오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테이블마다 귀여운 어린아이들이 한 명씩 있었다.
아이 엄마들도 이렇게 여러 가족이 있어야 맘이 편한 듯했다. 아이들은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눈을 맞추며 놀았다. 소란을 피우는 아이들도 없었다.
위험한 루프탑을 노키즈존으로 설정하는 것은 안전을 위해 필요하지만 일 층 카페 정도는 어린아이들을 막지 말았으면 좋겠다.
추운 날씨에 밖에서만 떨며 있으라는 말인가. 동물을 무서워하는 나는 반려동물이 금지된 공간에 가면 안정감을 느낀다. 동물은 나에게 위험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위험한 존재가 아니지 않은가.
그 여린 아이들이 나를 불편하게 할 수는 있겠지만 나를 위험에 빠뜨릴 일은 전혀 없기 때문이다.
평등한 사회가 되려면 일단 어린아이들을 차별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납득이 가지 않은 차별은 그 자체가 타인을 해치는 일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