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영향을 준 사람들

by 작은영웅

살다 보면 문득 떠오르는 사람들이 있다.

내 인생의 어느 길목에서 만났던 사람, 나의 삶에 어떻게든 영향을 끼친 사람, 다시 한번 만나고 싶은 사람, 나의 일상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던 사람, 하지만 지금은 연락조차 하지 않고 어디에서 어떻게 사는지 조차 알지 못하는 사람을 떠올려 볼까 한다.

너무 멀리는 가지 말고, 내가 사회생활을 시작하고서 만난 사람들로 한정하고 시작해 보자.


먼저 K이다. 첫 직장에서 만난 그녀는 나와 나이도 같고, 심지어 생일도 같았다. 풋풋한 단발머리가 어울리고 땡글한 눈을 반짝이던 앳된 사회 초년생, K를 보면 나의 모습을 보는 듯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인기 있는 사람이 되고자 애쓰는 나와는 달리 K는 내면의 세계가 깊은 사람이었다.

늘 책을 읽고, 월급날이면 서점에 가서 책을 10권씩 산다는 그녀의 얘기를 듣고 욕심이 나서 내 월급에 맞먹는 가격의 백과사전을 전집으로 사기도 했다.

다른 무엇보다도 나는 K가 월급으로 책을 사는 것이 멋져 보였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해서 월급만 타면 백화점으로 달려가 옷을 사던 나는 그녀의 영향으로 책을 구입하게 되었다.

동생과 같이 쓰던 좁은 방에 나만의 책장을 만들고 책을 모아가게 된 것도 K의 영향이었다.

결혼 이후 사는 지역이 달라지면서 K와는 연락이 두절되었지만 젊었을 때부터 책의 귀함을 알았던 K는 지금은 무엇을 하고 사는지 가끔 궁금하다.


다음은 H. H는 남자다.

순수해 보이는 외모에 부드러운 미소를 지닌 강인하면서도 따뜻한 소년 같은 남자다.

그는 첫인상이 냉정하고 싸늘해 보이는 사람이다. 부드러운 외모와는 달리 자기 관리에 철저하고, 빈틈이 없었으며, 일처리가 능수능란한 그러면서도 곁을 주지 않은 사람이었다.

난 일단 이런 사람들을 무서워하기 때문에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그런데 어떻게 친해졌느냐고? 같은 부서에서 일하고 되면서 그가 나에게 잘해주기 시작했다.

잘 쓰이는 볼펜이라면서 생일날 선물해 주기도 했고, 일처리를 간편하게 할 수 있는 엑셀파일을 만들어 주기도 했다. 그러면서 나랑 친했던 사람들과 H도 함께 어울리면서 서로 챙겨주고 도와주는 패밀리모임이 생겼다.

알고 보니 H는 동네방네 매우 가정적인 남자였다. 집안일은 물론이고 심지어 김치까지 담근다는. 그래서 우리는 H의 부인이 너무 부러웠고 우리 남편들은 H를 싫어했다.

H는 가끔 우리를 집에 초대해 잔치상을 차려주곤 했는데 정말로 음식 솜씨가 좋았다. 수줍음이 많고 다정한 H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그렇게도 차가운 척했던 것이었다.

무슨 일이 생기면 달려와 주고 조용히 도움의 손길을 주는 H랑 같이 근무하는 것이 힘이 되던 시절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냉철하지만 나에게만 친절하다는 것도 나의 자부심을 부추겨 주었다.

이렇게 일도 잘하고 멋있었던 H는 지금은 높은 직위에 올랐다. 풍문으로만 그의 승승장구에 대해 들었다. 여전히 잘하고 있겠지. 든든한 남동생 같았던 H가 가끔 그립다.


세 번째는 J이다. J는 자존감이 세고 잘난 체 하는 여자다.

내가 두 아이를 키우면서 직장과 집안 일로 고군분투하며 밥만 잘 먹이는 게 엄마의 역할이라고 생각하던 때에 나에게 깨달음을 준 사람이다.

내 옆에 앉아 있던 그녀는 나처럼 딸 둘의 엄마였다. 아이들의 나이도 비슷해서 가끔 애들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었다. 하지만 J는 나랑 달랐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올 시간이면 아이들과 매일 통화를 했다. 어찌나 다정다감한 대화인지 퇴근하면 무뚝뚝하게 아이들이 해야 할 일만 체크하는 나하고는 차원이 다른 대화였다.

그 대화를 들으면서 집에 가면 아이들에게 조금은 다정한 대화를 하려고 노력하게 되었다.

두 아이들 친정집에 맡기고 저녁에 가서 아이들 얼굴 보고 같이 TV 보고 놀다가 집에 오는 일상 속에서 아이들 교육은 아예 뒷전이었던 나는 점차 변화하기 시작했다.

일단 아이들을 집으로 데려 왔고, 집에서 TV를 없애고 거실을 서재로 만들었다.

아이들은 낯설어했지만 바로 적응했다. 집에 일찍 와서 요리를 해주고 같이 책을 읽고 서점에 가서 바구니 가득 책을 골라오라고 하는 엄마의 변화를 좋아해 주었다.

조금 늦은 감은 있었지만 큰 아이가 초등 4학년일 때여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두 아이가 학구적이고 진취적인 아이들로 자라게 된 것은 이때 나의 각성이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J가 있다. 그녀는 잘 모르겠지만.


이렇듯 돌이켜 보면 운명 같은 만남이 존재하는 것 같다. 적재적소에 배치되어서 내 삶을 잘 이끌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존재들 말이다.

누구를 만나서 어떤 영향을 받느냐에 따라 사람의 운명은 방향을 달리할 수 있다.

앞으로도 좋은 인연을 끌어당기며 살고 싶다.

그러려면 나 자신이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게 좋은 책일 수도 있고 좋은 사람일 수도 있다.

좋은 사람을 끌어당기는 에너지로 충만한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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