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나간 아이가 돌아왔다

by 작은영웅

작은 트럭에 짐을 싣고 둘째 아이가 집으로 돌아왔다. 대학 입학 하면서 집을 나가 살던 아이가 사전 통보도 없이 갑자기 집으로 온 것이다. 10년 남짓한 기간에 늘어난 살림살이를 들이기 위해 집의 물건들을 정리하는데 반가움보다는 불안감이 앞섰다. 아이들이 떠나고 신나 했던 우리 부부는 그런 속내를 숨기고 아이를 반겼지만 낯선 환경이 다소 불안했다. 아이는 선언했다. 6개월만 있다 나갈 거야. 다행이다. 6개월이면 해볼 만하다. 잘해줘야지. 자상한 엄마로 기억에 남게 해 주자. 태어나서 고3까지 수없이 들었던 엄마의 잔소리와 꾸중을 잊어버릴 수 있도록 해주자.


그래서 뭐든 아이가 원하는 대로 해주기로 했다. 한식으로 아침을 먹고 싶다는 아이를 위해 빵과 커피로 간단하게 먹던 식사 메뉴를 바꾸었다. 국과 밥으로 거한 아침 식사를 준비해 주고 디저트에 커피까지 코스 요리로 아침을 먹게 되었다. 늦게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는 아이 스케줄에 맞춰서 저녁 식사를 간단하게 늦게 하게 되었다. 퇴근 후 엄마랑 놀고 싶어 하는 아이를 위해 졸면서 대화를 나누다 늦은 시간에 잠들게 되었다. 나름 체계적으로 굴러가던 나의 스케줄은 엉망이 되었다.


아침 식사 준비에 시간이 많이 필요해져서 아침 5시에 하던 조깅은 물 건너갔다. 아침 시간에 진행했던 영어 공부, 아침 요가 등등은 모두 멈춤이 되었다. 아침 식사 중 수다 삼매경에 빠져 출근 시간이 늦어져 지각까지 하게 되었다. 저녁에는 늦게 귀가하는 아이를 기다리다, 아이랑 놀다가 늦게 잠드는 바람에 수면부족으로 피곤해 보인다는 말을 자주 듣게 되었다. 제대로 된 식사를 매일 하면서 운동을 등한시하는 바람에 살이 찌게 되었다. 아침에 깨우면 바로 일어나지 않고 늦게 까지 휴대폰 하느라 불을 켜놓고 잠드는 아이 때문에 열받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살 맛이 난다. 아침 식사를 위해 퇴근길에 장을 보고, 냉장고에 음식이 가득해지고, 아이가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인지 알아가는 시간이 즐겁다. 졸린 눈으로 아이의 귀가를 기다리는 시간이 행복하다. 자다가 바로 일어나서 아침을 먹으면서도 맛있다를 연발해 주는 아이가 예쁘다. 건조기에서 꺼낸 세탁물을 같이 개면서 엄마가 빨래까지 해줘서 너무 좋다 말해주는 이이 때문에 행복하다. 친구를 만나고 올 때면 꼭 엄마를 위해 간식을 사들고 오는 아이 때문에 기다리는 시간이 설렌다.


나에게 두 아이를 키우는 시간은 고달픔의 연속이었다. 직장과 육아를 병행하면서 의무감과 책임감이 컸던 나는 다정함보다는 엄격하고 무서운 엄마에 가까웠다. 늘 엄마로서 최선을 다했지만 아이들을 따뜻하게 품어주지 못했다. 그래서 아이들이 서둘러 독립했다는 생각도 든다. 가끔 용건이 있을 때만 통화하고 무소식이 희소식이다 생각하면 지내던 것이 아이들과 나의 관계였다. 그런 관계를 편하다고 느끼고 아이들을 독립적으로 키웠다고 자부하던 나였는데 이제 생각해 보니 내가 그동안 외로웠었던 것 같다. 아이가 집에 돌아온 뒤로 밝아졌다는 얘길 많이 듣는다.


아이를 양육자가 아닌 한 명의 인격으로 대하고 보니 내 아이가 참 멋진 사람으로 여겨진다. 같은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고 세상 돌아가는 얘기도 하다 보면 그 누구보다 잘 맞는 친구처럼 느껴진다. 아이랑 함께 지내는 6개월의 시간이 없었더라면 몰랐을 텐데. 아이가 다시 집을 떠나고 결혼도 하게 되면 함께 한 집에서 지낼 시간은 쉬이 오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이 아주 소중한 기회가 아니겠는가. 아이의 인생에 잊지 못할 행복한 순간들을 채워주고 싶다.

사는 동안 힘들거나 지칠 때면 생각나는 사람, 갑자기 찾아가 따뜻한 밥 달라고 떼쓸 수 있는 사람, 세상이 등 돌려도 내편이라 여길 수 있는 그런 존재로 아이 곁에 있어주고 싶다. 그게 엄마라는 존재의 의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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