뜸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전화를 하거나 문자를 하거나 카톡을 보내는 남사친이 있다. 스마트폰 액정에 S의 이름이 뜨면 반가움보다는 약간 곤란한 느낌을 받는다. 도덕성에 기인한 찝찝함 때문이기도 하고, 그의 존재가 설렘을 주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얼굴을 본 지는 20년이 넘은 것 같은데 일단 프사로 서로의 현재 얼굴을 대충 추측할 따름이다. 한번 얼굴이라도 보자는 S의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나이 든 지금 내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고,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S의 세속적임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S는 초등학교 시절 남사친이다. 한 학년에 한 반 밖에 없는 작은 학교에 고만고만한 아이들 틈에서 그와 나는 빛나는 존재였다. 나는 지역 유지의 딸로 예쁜 옷에 빨간 구두를 신고 다니는 얼굴이 하얗고 공부도 곧잘 하는 아이였다. 농사를 짓지 않으면서 돈을 많이 버는 아빠를 둔 덕에 나는 집에서 독서를 즐겨했고, 그래서 읽은 책 내용을 친구들에게 재잘대면서 알려주는 귀엽고 뽀얀 아이였다.
이때 나와는 삶의 질이 달랐던 S는 주정뱅이에 폭력적이며 가난한 아버지 때문에 늘 어두운 얼굴의 아이였다. 마당에 정원수가 가득 심어진 멋진 집에 살았던 나와는 대조적으로 그 애는 마을 회관을 얻어 살았다. 집에서 카스텔라 등등의 요리를 하며 우아하게 사는 우리 엄마와는 다르게 그 애의 엄마는 날품팔이로 생계를 이어가는 분이었다.
S와 나의 공통점은 둘 다 공부를 잘한다는 것이었다. 그 외에는 모든 것이 달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애를 흠모했던 것 같다. 그토록 어려운 환경에서 공부도 잘하고 축구도 잘하고 의젓하고 또래 아이들의 대장노릇을 하고, 그런 점들이 멋지다고 생각했다. 그 애는 여자애들이 고무줄놀이를 하거나 공기놀이를 할 때 와서 방해하는 치사한 짓도 하지 않았고 복도를 걸어갈 때면 다리를 걸어서 넘어뜨리는 짓도 하지 않았다. 그 애는 늘 멀리 있었다.
그렇게 접점이 없이 자라다가 6학년 봄에 나는 도시로 전학을 왔고 그 애의 존재는 잊혔다. 그런데 중학교 1학년 때 정말로 우연히 그 애를 도시 한복판에서 만나게 된다. 중1 때 미술 선생님은 너무 무서웠다. 준비물을 안 가져오면 한 시간 동안 복도에서 책상을 들고 서있어야 했다. 5교시 미술 시간을 앞둔 점심시간 집에 가서 미술준비물을 가지고 비 내리는 거리를 뛰는데 누군가가 내 이름을 불렀다. 그 애였다. 학교 갈 시간인데 그 애는 평상복을 입고 거리에 서 있었다. 낮에는 신문배달을 하고 밤에 야간 학교를 다닌다고 했다. 어색하게 몇 마디를 나누었으나 나는 빨리 학교에 가야 했고 그렇게 또 기약 없이 헤어졌다.
그러다 고3 학력고사가 끝난 크리스마스이브에 S가 집에 전화를 걸어 우리 엄마랑 통화를 해서 나랑 데이트를 하고 싶다고 했다 한다. 엄마는 그걸 허락했고. 얼떨떨한 기분으로 집 앞에서 그 애를 만나 영화를 보고 돈가스를 먹고 집에 왔다. 어떻게 우리 집 전화번호를 알았는지 궁금했지만 묻지 않았다. 설렘도 잠시 난 약간 그 애의 외모에 실망했던 것 같다. 어린 시절 깡마르고 반짝이는 눈에 키가 컸던 그 아이는 약간 살이 오르고 말이 많았다. 어두운 눈빛에 사연 있어 보이던 어린 시절의 아이가 평범한 밝은 청년이 되어 내 앞에 있었다.
그 만남 이후 그 애는 서울로 대학을 갔고 나는 지방 소도시의 대학에 진학했다. 대학 1학년 때 군대에 간 S는 장문의 편지를 나에게 보냈다. 그 애의 존재는 더 이상 나를 설레게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애의 편지 내용 중에 과도한 감정표현이 부담스러웠던 나는 답장을 쓰지 않았다. 서울과 지방이라는 거리도 있었고 나는 나대로 여러 만남으로 여러 서클 활동으로 바빴고 주변에 남자들 때문에 그의 존재는 점점 잊혔다. 그래도 그 애는 가끔 전화해서 농담하는 듯이 자기가 성공할 때까지 기다리라는 얘기를 했다. 하지만 나는 그 애를 기다리지 못하고(사실은 안 하고) 다른 남자랑 결혼했다. 내 이상형이었던 마르고 눈빛이 좋은 남자.
결혼을 앞둔 어느 날 S는 전화해서 담담하게 말했다. 이제 공부할 이유가 없어졌다고, 행복하게 사라고. 이런 등등의 얘기를 했으나 우린 사귄 적도 없었으니 너도 잘 살아가라고 마무리했었다. 나중에 그 애는 5급 공무원 시험으로 공직자의 길로 들어섰다.
내가 결혼해서 딸 둘을 낳고 워킹맘으로 험난한 삶을 사는 동안 S도 결혼을 했다. S의 어머니가 입원했던 병원에서 일하던 옛 동창이었다. 늦게 결혼한 그들은 딸 셋을 낳고 지금도 잘 살고 있고 S도 승진을 거듭해서 지금은 고위공무원이 되어서 지방 소도시에서 잘 살고 있다.
그러다 일 년에 두 번 정도 전화해서 어제 만난 사람에게 얘기하듯 살아가는 얘기를 한다. 잘 나가는 자기 구역에 놀러 오라고. 그러면 VIP로 대접하겠다고. 난 이 나이에 그러고 싶지 않아서 대충 대답한다.
진짜로 그러고 싶지 않다. 이렇게 나이 들어가면서 서로의 근황을 묻고 답하면서 일 년에 한 번씩 통화하는 것 이상은 하고 싶지 않다. 직접 만나서 S가 내게 보여 주고 싶었던 성공한 모습을 보면서 경탄해 주고, 대단하다 인정해 주고 싶은 마음이 없지는 않지만, 나의 소녀 시절의 아름다움 만을 기억할 그에게 현재의 모습을 보여 주고 싶지는 않다. 일 년에 한 번 오는 그의 전화를 받으며 그렇게 세월을 보내고 싶다. 그냥 아직 살아 있구나, 잘 살고 있구나 생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