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많이 겪게 되는 것이 합격과 불합격이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불합격보다 합격이 많은 인생이었던 것 같다.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재수를 하거나 유급을 한 적도 없었고 직장도 단박에 들어갔으니 불합격의 경험은 딱히 많지 않다. 아마도 도전을 많이 안 했기 때문이 아닐까. 안정적인 곳에 머무르고 조금이라도 불가능하면 쳐다보지 않으면 불합격할 일은 별로 없겠지.
합격의 기억을 먼저 떠올려보면 중, 고등을 평준화로 다녔기 때문에 대학 합격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그때는 딱 한 군데만 지원할 수 있었기 때문에 원서를 써서 서울로 갔다가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 집 가정형편상 무리라는 생각이 들어 원서 마감 마지막날 집으로 내려왔다. 다시 학교에 가서 원서를 바꿔 쓰고 마감 시간에 눈치 작전을 써서 원서를 밀어 넣었다. 다행히 합격했고 재수는 면했다. 가고 싶은 곳이었고 내 점수에는 조금은 무리한 상향 지원이었기 때문에 합격 소식에 무척 기뻤던 기억이 있다.
그 후 내게 합격의 기쁨을 준 것은 아파트 당첨이다. 100:1이었던 신도시 아파트는 계속 불합격이었는데 근처 지역의 6:1이던 아파트 로열층에 당첨되었다. 약간의 아쉬움은 있었지만 그것도 모두 운명이 아니었을까 싶다. 모든 것을 내가 선택하면서 사는 것 같지만 어떻게 보면 운명에 따라 살아온 것 같기도 하니 말이다. 어쨌든 그 집은 두 아이를 좋은 환경 속에서 자라게 했고 내게도 어느 정도 자부심을 주었다. 비록 대출이 많은 집이었지만 우리 가족에게는 좋은 기억으로 남은 집이었다.
그러다 최근에 안식년 합격이라는 큰 기쁨을 누렸다. 적은 인원을 뽑아 경쟁률이 치열했고 선발 과정 중에 동료평가라는 관문이 있어서 나름 사람들에게 인정받았다는 사실이 나를 더욱 기쁘게 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합격의 기쁨이었고 나를 괜찮은 사람이라고 느끼게 해 준 사건이었다. 일 년의 안식년 동안 나를 돌아본 소중한 시간을 보냈음은 말할 것도 없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살면서 나 자신은 도전할 기회가 많지 않아 합격, 불합격의 경험이 많지 않았지만 아이들이 자라면서 아이들을 통해 많은 합격과 불합격을 겪었다.
특히 큰 애는 불합격의 경험이 많았다. 영어 영재반 합격이나 카이스트 영재 프로그램 합격 등의 기쁜 일도 많았음에도 불합격의 기억이 더 강한 이유는 무엇일까?
외고를 가고 싶어 해서 중3 때 할머니랑 경기도로 이사까지 하면서 고생했던 아이가 불합격했을 때, 싱크대 앞에 앉아 목놓아 울었던 기억이 있다. 경기도에 살아야 그 학교에 지원할 수 있었기 때문에 택한 길이었지만 부모 곁을 떠나 타지에서 겪었을 아이의 고통이 느껴져서 가슴이 너무 아팠기 때문이다.
어찌어찌 일반고를 다니고 대학에 도전했을 때 아이는 줄줄이 고배를 마셨다. 정말 열심히 하는 아이였기 때문에 아이의 좌절을 지켜보는 것이 너무도 가슴 아팠다. 계속되는 불합격 소식은 롤러코스터를 타고 계속 추락하는 느낌을 주었다.
그중 지방대 하나가 합격해 마지못해 입학했으나 1년이 지나고 아이는 또 약학전문대학에 도전을 시작했다. 2년의 불합격 끝에 아이는 다시 다니던 학교에 돌아와 전과를 하고 졸업을 했다. 그러고 나서 대기업 회사에 지원해서 또 연이은 불합격.
이 정도면 내성이 생길 법도 한데 불합격 소식은 늘 가슴 아팠고 내 마음이 이런데 아이의 마음을 어쩔까 싶어 그것이 더 속상했다. 아무렇지 않게 구는 아이의 얼굴이 지금도 가슴에 남아 있다.
자존심 강하고 도전의식이 강했던 아이는 지금은 외국계 기업에서 안정된 직장 생활을 하고 있다. 생각해 보면 큰 아이가 불합격 소식을 많이 접했던 이유는 쉽지 않은 곳에 늘 도전했기 때문인 것 같다. 다행히 큰 상처받지 않고 이제는 자신의 영역을 확보하고 잘 살아가는 것이 대견하다.
하지만 알고 있다. 이 아이가 아직도 늘 새로운 세계를 꿈꾸며 도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이를 만날 때마다 새로운 곳을 향하여 나아가고자 하는 아이의 욕심에 놀라곤 한다. 그럴 때마다 불합격의 상처들이 아이의 꿈과 도전 의식을 손상시키지 않았음에 감사함을 느낀다.
매번 달라지는 아이의 꿈, 더 이상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아이의 내공을 보면서 많은 불합격을 통해 단단하게 자란 모습이 기특하다.
무수한 아이의 좌절을 보면서 남몰래 흘렸던 나의 눈물이 아이의 인생에 따뜻함으로 가닿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