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by 작은영웅

매년 연말이 되면 딜레마에 빠진다. 크리스마스니까 뭔가 특별한 이벤트가 있어야 하고 아무것도 안 하고 보내는 것은 도리가 아닌 것 같은 느낌 말이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크리스마스에 선물도 주고 파티도 하고 나름 즐겁게 보낸 것 같은데 이제는 크리스마스트리 만들기도 하지 않는다. 먼지만 나고 꾸밀 때는 조금 설레지만 나중에 치울 때는 쓰레기를 치우는 듯 번거롭기만 하다.

그래서인지 올해 어느 날 다이소에서 트리 장식물들을 싸게 사길래 트리나 만들어 볼까 하고 찾아보니 먼지 풀풀 날리던 나무가 없다. 아마도 작년에 트리 잔해물을 치우다가 홧김에 다 버린 게 아닌가 싶다. 요즘은 버리고 나서 다시 찾는 증세가 심해지고 있으니 여러모로 걱정이다.


어렸을 때 기억나는 크리스마스 기억은 친구들의 놀림이다. 시골에 살지만 할 것 다하고 사셨던 낭만적인 우리 부모님들은 트리를 만들었고 아이들에게 양말도 걸게 했다. 착한 아이들만 선물을 준다는데 그다지 선물을 받을 자신감이 없었던 나는 큰 기대감 없이 잠이 들었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내 양말 안에 선물이 있었다. 하얀 플라스틱 통에 백설공주 그림이 그려진 예쁜 필통이었다. 당시에는 보기 드문 귀한 필통이었던 것 같다. 다음 날 학교에 가서 산타 할아버지가 주셨다고 자랑을 했는데 바로 산타가 세상에 어디 있냐는 눈 밝은 아이의 한 마디를 듣고 의심에 빠졌다. 3학년쯤 되었던 것 같다.

그 의심스러운 말에 격하게 공감된 나는 집에 오자마자 엄마한테 따져 물었고 좀 울었던 것 같다. 그러고 나서 나의 마지막 크리스마스 선물은 책상 서랍에 처박혔다. 그때 나의 유년시기가 끝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엄마가 되어서 똑같은 거짓말을 아이들에게 했다. 아이들 어릴 때 비디오를 보면 두 아이가 무릎 꿇고 산타할아버지에게 선물을 바라는 모습이 있다. 아이는 천장을 올려다보면서 주주인형을 달라고 하고 있다. 그 모습을 보노라면 귀엽다는 생각도 들고 우리 아이들은 언제 엄마의 거짓말을 깨달았나 궁금해지기도 한다.

어쨌든 우리 아이들은 엄마, 아빠, 이모, 삼촌, 외할머니가 주는 선물 공세에 크리스마스를 무척 좋아했다.

지금은 조카들이 많지만 당시에는 귀했던 우리 아이들은 엄청난 사랑과 함께 다양한 선물을 받았으니 애들에게는 크리스마스가 축제였을 것이다. 게다가 크리스마스이브에는 화려한 파티를 했고 크리스마스날에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곳으로 놀러를 갔다. 왠지 크리스마스는 아이들의 날 같은 느낌이었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커서 그 많은 바비인형들을 더 이상 거들떠보지 않게 되자 베란다에 방치된 다섯 채의 집과 머리가 잔뜩 헝클어진 인형들을 버리면서 우리 아이들은 거창한 선물을 다시 받지 않게 되었지만 계속 태어나는 조카들로 인해 파티와 선물 나눔은 계속되고 있다.


12월이 되어서 캐럴송이 울려 퍼지고 화려한 조명들이 반짝거리기 시작하면 올해가 다 갔다는 쓸쓸한 마음이 들기 마련이다. 그래도 이런 음악과 조명이 그 아쉬운 마음을 달래주는 것도 사실이다.

요즘은 카페에서 트리를 찍어 인스타에 올리는 것이 유행이라서 곳곳에서 특이하고 이색적이며 아름다운 트리들을 만날 수 있다. 그러니 굳이 나 혼자 보려고 우리 집에까지 치장을 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조금은 아쉽다.

연말에는 가족이나 친구들과 즐겁게 지내고 연시에는 조용히 새해를 맞이하는 것이 나의 모토이다. 한 해를 보내는 것은 이별이기 때문에 마지막 날은 돌아보면서 일 년을 잘 살아낸 나 자신을 보듬어주는 시간을 갖는 게 좋겠지만 그전에 나의 행복을 도와주는 사람들과의 인연을 소중히 여기면서 즐거운 시간을 가지면 좋을 것 같다.

그러기에 크리스마스는 파티를 즐기기에 최고의 환경이다. 반짝거리는 트리는 마음을 들뜨게 하고 조금은 비싼 집에서 호사를 누리면서 나를 위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아름답게 나의 일 년을 마무리하고 나면 다음 해에 대한 기대감을 가질 수 있다. 일주일 남짓 남은 시간, 친구들과 가족과 남편과 소중하고 아름다운 시간을 보내야겠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우산 속의 추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