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엄청 착한 남자랑 살고 있다. 남편은 자타가 공인하는 착한 사람이다. 일단 싫은 소리를 못한다. 남에게 무언가를 부탁하거나, 따지는 것을 아예 못한다. 심지어 거절도 하지 못한다. 이런 성향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으면서도 원망조차 하지 않는다. 착한 남자를 넘어서 바보로 여겨질 정도이다. 억울한 상황이 닥쳐도 참고 만다.
사실 이런 부분은 나도 닮아 있어서 남편은 나와 다른 사람이길 바랐다. 연애 시절에는 곧잘 염치없이 구는 모습을 봤던지라 나와 다르게 조금은 뻔뻔한 사람이라 여기고 흡족했었다. 근데 결혼을 하고 보니 나하고 똑같은 유형의 사람이었다. 그래도 나는 억울한 일이 있으면 막상 대놓고 말은 못 해도 뒤에서 분노하고 스트레스받는 편인데 남편은 그런 것조차 없었다. ‘그 사람 다른 데 가서 손해 보고 벌 받을 거야. 그러니까 억울해하지 마.’ 이런 식으로 말을 하면서 나를 위로하는 사람이었다.
이런 남편의 성향이 늘 나를 열받게 하곤 했는데, 그래도 세월이 가다 보니 나도 어느 정도는 손해 보고 사는 것에 익숙해지고 시시콜콜하게 손익을 따지는 일은 그만두게 되었다. 약간의 불편함은 어느 정도 감수하면서 다음부터는 미리 꼼꼼하게 따져서 억울해하는 일이 없도록 하자고 마음먹게 되었다.
그런데 최근에 이런 나를 참을 수 없게 만드는 일이 발생했다. 어느 날 갑자기 연가가 생겼다며 집에 있던 남편은(연가도 먼저 선택하지 않고 남은 날짜를 쓴다) 가구 전시회를 가서 침대와 매트리스를 구입했다고 자랑을 했다. 워낙 튼튼한 침대라서 매트리스만 교체하려고 했는데 프레임 포함해서 별 가격 차이가 없어서 둘 다 구입했다고 했다. 침대와 같은 가구를 나랑 의논도 없이 구입했다는 점이 어이가 없었지만 20년 가까이 쓴 매트리스라서 교체할 필요가 있었다.
드디어 침대가 배달되었고, 견고하던 우리 집 침대는 해체하는 시간이 꽤 걸렸다. 그리고 새로운 침대는 금방 설치되었다. 새로운 침대는 꽤 근사했다. 바닥이 평상 형태로 되어서 로봇청소기가 걸리지 않는 것도 맘에 들었다.
하지만 그날 밤부터 나의 스트레스는 시작되었다. 오르락내리락할 때마다 침대가 삐그덕 거리는 것이다. 가만히 누워 있으면 그런 소리가 안 들렸으나 움직이면 나는 소리에 조금씩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연락을 해서 수정을 요구하라고 했다. 나의 잔소리에 시달리던 남편은 전화 통화를 못하고 문자가 보냈나 보다. 그런데 감감무소식이었다. 그래서 전화를 하라고 했다. 업체 사장님하고 전화 통화를 했더니, 수평이 맞지 않아서일 거라고 시간 내서 손을 봐주겠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안심한 우리 부부는 일주일을 다소곳이 기다렸다. 그런데 또 감감무소식이다. 또다시 시작된 나의 잔소리, 문자를 보낸 남편, 답이 없다. 전화를 하라고 재촉하는 나, 삐그덕 거리는 침대에서 내려온 아침이면 전쟁 같은 대화가 시작된다. 오늘은 남편이 전화를 할까. 나보고 하란다. 난 구입한 사람이 책임져야 한다고 말한다.
평화롭고 다정한 대화가 오가던 아침 시간에 우리 집은 살벌한 대화들이 오고 간다. 잘못된 것을 고쳐달라고 말하는 것이 뭐가 어려워서 전화 한 통화를 못할까. 아무래도 나는 결혼을 잘못했다. 억울해 죽겠다. 과연 오늘은 전화 통화를 하고 올까. 나도 남편을 닦달한 뿐이지 직접 연락할 생각은 없다. 침대 하나 때문에 가정불화가 시작되었다.
그렇게 하기를 며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생각을 바꾸면 될 텐데. 나 하나만 포기하면 그만일 텐데. 이제 ‘침대’ 얘기를 아예 꺼내지 말자. 오르고 내릴 때 삐거덕거리는 소리가 들리든,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든, 그러려니 하면서 넘어 가자.
그런 결심을 한 후에도 소리는 여전했지만 가정의 행복을 위해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기로 하자 마음의 평화가 찾아왔다. 이렇게 하면 될 것을 뭐 그리 속을 끓였을까. 오르락내리락할 때만 소리가 나도 막상 침대 위에 누우면 아무 소리도 나지 않은 것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도 가끔은 거슬릴 때도 있지만 이제는 잊혔다. 다정한 집안 분위기도 회복되었다. 뭐든 마음먹기 나름이라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해본다. 나만 마음을 바꾸면 이렇게 좋아지는 것을 왜 그리 속을 끓였을까. 앞으로의 삶에도 명심하고 살아야겠다.
다시 생각해 보면 남편의 오지랖 덕을 가장 많이 보고 사는 사람이 나인 건 맞다. 내 맘대로 여행 가고, 쇼핑하고, 남편 카드를 마음껏 긁어 대도 군소리 하나 안 하는 사람이니까. 내가 사고를 치고 겸연쩍어하면 ‘괜찮아, 그만하길 다행이지.’하면서 위로하는 사람이니까.
나한테만 다정하고 타인에게는 냉정하라고 주문하는 나의 얌체 같은 마음은 이제 내려놔야겠다. 남편 말대로 태가 타인에게 베푼 다정함은 언젠가는 나나 내 가족에게 돌아올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