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날을 맞이하여

by 작은영웅

오늘은 수능일이다. 우리 아이들이 자랄 때만 해도 수능일이면 진눈깨비가 흩날리고 매서운 바람이 부는 추운 날들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완연한 가을날이다. 노랑, 빨강, 초록이 어우러진 가을 풍경을 바라보며 따사로운 가을볕 가운데 앉아 노천에서 이 글을 쓰고 있으니 기후변화가 실감 난다.


이제 우리 아이들은 수능과 관련 없는 나이가 되었고 주변에 수능을 보는 가족들이 없다 보니 수능날이라는 실감이 들진 않는다. 하지만 이때가 되면 여전히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은 과거의 기억이 선명해서일 것이다.


수능과 관련된 기억을 소환하려면 내 시험부터 언급해야 할 것 같다. 학력고사 세대였던 나는 시험 보던 날의 떨림과 실수를 하면 어쩌지 하면서 불안해했던 마음이 지금도 어제 일처럼 떠오른다.

워낙 소심했던 나에게 선생님들의 반복되는 주의 사항은 불안감을 더욱 증폭시켰다. 행여 준비물이 빠졌나 보고 또 보고, 잘못 가져가는 물건이 없나 옷을 수십 번 뒤져 보면서 어찌어찌 시험을 봤다.

국어, 영어, 수학, 사회, 이렇게 4시간을 봤는데 문제는 2교시 수학시간이었다. 수학에 약했던 나의 전략은 일단 쉬운 문제를 풀고 나머지는 하나의 답으로 찍는 것이었다. 평소에는 30문제 중 20문제를 풀 수 있었는데, 이날 수학 시험은 어렵게 출제되어서 풀 수 있는 문제가 10문제 정도였다. 나머지 20문제를 찍어야 하는 상황이었으니 한 마디로 망한 것이다.


그래도 희망을 가지고 집에 와서 채점을 했는데 2교시 수학을 채점하다가 때려치우고 울기 시작했다. 나의 대성통곡에 부모님은 내 눈치만 봤고, 정말이지 그날 밤을 눈물로 새웠다. 너무너무 서러웠고, 지난 일 년이 아까웠고, 평소보다 실력발휘를 못하게 된 나의 운명이 한탄스러웠다.


이런 나의 경험은 두 아이의 수능 시험을 겪으면서 재소환되었다. 불안에 떨고, 부정적인 생각을 더 많이 하고, 아이들이 시험 보는 내내 공포에 떨며 하루를 보내야 했다. 시험을 마치고 나오는 아이의 얼굴을 마주할 자신이 없어서 친정 엄마를 대신 보내기도 했으니 나라는 인간은 참.

먼저 큰 아이 얘기를 해보자. 큰 아이는 간발의 차이로 수능 등급이 떨어졌다. 큰 아이의 성적이 나온 이후의 상황전개는 지금 떠올리는 것도 힘들 정도의 시간들이었다. 논술 시험을 치르고 면접을 치르고 여러 번 바삐 오갔으나 계속해서 불합격 통보를 받았다.

인터넷에 수험번호를 검색할 때의 느낌이 지금도 느껴진다. 예비 번호를 받는 것도 고통을 가중시켰다. 기대감이 절망으로 전환될 때의 고통은 더 크기 때문이다. 수시로 지원한 대부분의 대학에 불합격했을 때 롤러코스터를 타고 추락하는 느낌이었다.

내가 그럴진대 아이의 마음은 어땠을까. 지금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수능 등급도 간발의 차이로 떨어지고, 상향 지원한 것도 아닌 수시 대학들을 떨어지는 아이를 보며 참 운이 나쁘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런 기억 때문에 둘째 아이 때에는 기대를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둘째는 달랐다. 커트라인에 걸려서 좋은 등급을 받고, 모의고사 때보다 좋은 성적을 받았다.

게다가 수시로 지원한 대부분의 대학에서 합격 통지를 받았다. 어디를 가야 할까 고민할 정도였으니 큰아이 때의 아픔을 보상받는 느낌이었으나 이 때도 큰 아이의 마음을 걱정했던 것 같다. 모든 좋은 운이 동생에게 가는 느낌이 아니었을까.


아이의 실력 차이가 컸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둘 다 공부를 잘하는 편이었고 성실한 아이들이었다. 둘 다 열심히 준비했지만 이런 극명한 차이를 불러온 것은 자신감의 차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거기에 약간의 운도 작용을 했을 것이고.

큰 아이는 성격이 예민하고 불안감이 큰 아이라서 실수를 두려워했다. 하지만 둘째는 '뭐 어때 다음에 잘하면 되지' 하는 담대함을 지니고 있었다. 이러한 마음가짐의 차이가 격차를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오랜 세월이 지나고 둘 다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실력 발휘를 하면서 유능한 직장인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당시에는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충격에 휩싸였었다.

그래서 지금도 주변에 수능을 앞둔 아이의 부모를 보면 안쓰럽게 느껴진다. 어머니로서 아이의 고달픈 과정을 함께 겪어야 하기 때문이다. 두 아이를 키우면서 극단적이 두 가지 경험을 해본 나로서는 큰아이 때 느꼈던 좌절감과 둘째 아이 때 느낀 성취감이 지금도 생생하다.


수능은 시작일 뿐이고, 앞으로 아이들은 취업이나 각종 시험을 겪으면서 수많은 실패와 성공을 거듭하면서 살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실패의 경험은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여겨진다. 그런 경험들이 아이를 단단하게 만들 수 있도록 부모가 도와주어야 한다.

수능 결과가 나쁘면 나쁜 대로, 좋으면 좋은 대로 잘 이겨내길 바랄 뿐이다. 세월이 흐르면 수능 성적은 별 것도 아니게 될 거라는 것을 믿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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