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의 의미

by 작은영웅

내 이름은 ‘소영’이다. 60년대 출생의 여자 아이에게는 조금은 세련된 이름이다. 내 친구들 이름이 영미, 경숙, 현숙, 영자 등인걸 보면 어느 정도 자부심을 느낄 만한 이름이다. 그래서 이름 예쁘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얼굴 예쁘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 없는 나로서는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이름에 약간의 문제가 있다. 그건 이름의 뜻이다.

어린 시절 이름을 한자로 써달라고 하면 아빠는 다소 복잡해 보이는 한자를 적어주시곤 하였다. 뜻을 풀이하면 ‘맑을 소, 밝을 영이었다. 어려운 한자를 따라 쓰면서 내 이름을 익혀 가던 중 호적등본에서 뜻밖의 다른 이름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것은 ‘작을소, 영웅 영’이었다.

이걸 알고 아빠에게 따져 물었더니 금시초문이라 하셨다. 이래저래 알아본 결과 내가 어린 시절 출생 신고를 하러 가신 아빠는 친구와 술 한잔 하시느라 출생 신고를 아른 친구에게 부탁하였고, 그 친구는 가던 중 아빠가 적어 준 쪽지를 잃어버렸고, 이름은 생각난 친구분이 한글 이름을 알려주고 한자는 모른다고 하자 동사무소 직원은 한글 이름에 해당하는 한자 중 가장 단순한 것들의 조합으로 내 이름을 호적에 올린 것이었다.


다소 황당한 얘기였지만 복잡한 한자에서 간단한 한자로 바뀌었으므로 내심 반가웠다. 학교 숙제하기가 퍽 쉬웠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름을 소개할 때였다. 내 이름의 ‘소’ 자가 ‘작을소’라는 것을 알게 된 아이들은 나를 놀렸다. 이름 때문에 키가 크지 않는 거다. ‘대영’이라고 고치면 키가 클 것이다. 등등.

난 그때부터 내가 형제들 중에 키가 제일 작고, 심지어 부모님보다 작은 이유는 이름 때문이라고 믿게 되었다. 이른바 나의 작은 키는 ‘이름의 저주’였던 셈이다.


어쨌든 ‘작은 영웅’이라는 네 이름의 뜻을 여러 군데에서 활용하기 시작했다. 이메일, 아이디, 닉네임 등에 이 말을 써먹었더니 그 의미가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큰 영웅은 아니지만 작은 영웅이 의미하는 바는 나름 멋있었다.

눈에 띄지 않게 보이지 않은 곳에서 영웅적인 삶을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내 이름이 정말 그럴싸했다. 남들 앞에 엄청 돋보이지는 않지만 소수의 사람들에게라도 인정받고 사랑받고 당신은 나의 영웅이다라고 말해주는 사람의 삶은 내가 추구하는 삶과도 일치했다.


그때부터 나를 소개할 일이 있으면 꼭 이름의 의미를 설파했다. 나의 작은 이미지 때문인지 이 소개는 사람들에게 각인되는 효과가 있었다. 그래서인지 내 이름이 사랑스러워졌고 내 이름을 자랑스럽게 느끼게 되었다.

전에 초등학교 친구를 30년 만에 만난 적이 있었다. 얘기를 나누다가 그 친구가 고백했다. 자신의 딸 이름이 나랑 똑같은 이름이라는 것이다. 성씨까지 나랑 같아서 참으로 신기했다. 그 친구는 말했다.

촌스러운 자신의 이름에 비해서 내 이름이 세련되어 보이고 예뻐서 부러웠다고 했다. 그래서 마음속에 새기고 있다가 딸 이름을 지을 때 자기도 모르게 그리한 것 같다고 내 연락을 받았을 때 깨달았다고 했다. 자신이 내 이름을 따라 딸 이름을 지었다는 것을.

내 이름이 그렇게나 예쁜 이름이었었나 생각만 해도 우쭐하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그저 좋았다. 나도 학창 시절에 마음에 둔 이름들이 있었다. ‘가나, 다라, 별아, 달아 등등. 이런 한글 이름에 꽂혔다. 성은 한자로 쓰고 이름은 한글로 쓴 그 아이들의 명찰이 너무 멋져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내 아이들의 이름은 이렇게 짓지 못했다. 시아버님이 하사해 주신 이름을 거부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이름은 어찌할 수 없었지만 한자는 고르고 골라서 의미를 부여하려고 애썼다. 내 이름 짓듯이 아이들의 이름을 지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최근에 딸아이가 임신을 하면서 이름을 지어달라고 한다. 아직 성별도 모르는 상태라서 중성적인 이름이 좋을 것 같다. 조금은 지적이면서도 단아하고 세련되고 신뢰가 가는 이름이었으면 싶다. 부드러우면서도 강인함이 느껴지는 이름, 아름다우면서도 단아한 이름이면 좋겠다.

GPT한테 물어보니 흔하디 흔한 이름들을 잔뜩 늘어놓는다. 다소 인상적인 이름이면 좋겠는데. 사위 성이 김 씨라서 이름이 식상해지기 쉽다.

일단 후보에 오른 이름이 아인, 서우, 시후, 이한, 이서, 은결 등이다. 이름에다 아이에 대한 기대를 담기 때문에 고민을 거듭해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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