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완주기

by 작은영웅

10킬로 마라톤 완주를 해냈다. 생애 최초의 10킬로 도전이었다. 대회에 참가하면서 내가 세운 방침은 두 가지였다.

중간에 걷지 않을 것, 속도가 늦더라도 부상 입지 않고 완주할 것. 이 두 가지를 지키면서 무사히 완주를 했고, 여럿이 같이 뛰는 효과로 기록도 갱신되었다. 다른 사람들에 비하면 엄청 느린 속도이지만 은근 스스로가 자랑스럽다.


처음 출발했을 때, 뛰어나가는 사람들의 속도에 깜짝 놀랐다. 내가 속한 그룹은 E그룹이었고 대부분 기록증이 없는 마라톤 초보들이다. 처음 출발 지점이 약간 내리막길이기도 했고 힘이 넘치는 젊은 청춘들이 많아서인지 막 달리는 것이었다. 엄청난 인파가 달려 나가니 나도 덩달아 빠른 속도로 달려 나갔다. 그러던 중에 옆에서 남편이 오버페이스 하면 나중에 걷게 된다고 조언을 해서 가장자리로 나가 천천히 뛰었다.


손을 꼭 잡고 뛰는 연인들, 영상을 즐겁게 보는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달리는 아빠, 초등생 아이들을 데리고 뛰는 가족들. 다양한 모습의 사람들이 즐겁게 도심을 가로질렀다. 평소에 물밀 듯 밀려가는 차로 가득했던 곳이 사람들로 가득 차 있는 모습도 장관이려니와 아스팔트 위를 달리는 느낌도 좋았다. 평소에 차를 타고 지나가던 곳을 뛰면서 보니, 소소한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런저런 구경만으로도 심심하지 않게 달릴 수 있었다.


평소 훈련 탓인지 다리도 아프지 않았고, 뒤에서 남편이 호위해 준 덕분에 어깨를 치고 나가는 사람도 없어서 맘이 편했다. 출발하자마자 넘어진 사람들을 보고 약간은 겁이 났는데 남편의 보호 속에 편안하게 달릴 수 있었다.

반환점에 오자 다리를 절뚝이는 사람, 걷는 사람, 헉헉대는 사람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나도 힘들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런대로 달릴만했다. 평소보다 빨리 뛰는 편이라 무릎이 약간 시큰거리는 느낌은 있었다.


이렇게 힘들 때쯤 반환점을 지났다. 반환점 효과인지 갑자기 힘이 나기 시작했다. 게다가 걷는 사람을 추월하는 재미도 쏠 쏠했다. 도착지에 점점 가까워질수록 사람들은 줄어들고 있었다. 아마도 그 많던 인파는 나보다 먼저 달려 나갔나 보다. 하지만 이겨야 한다는 욕심이 없으니 달리는 그 자체가 즐거웠다.

이제 마지막 오르막길 2킬로를 남기고 있다. 멈춰서 걷고 싶은 마음이 꿀떡 같았으나 절대 걷지 않기로 한 나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몸을 앞으로 수그리고 보폭을 작게 하면서 계속 뛰어 올라갔다.


멀리 골인 지점이 보였다. 힘을 내서 그곳을 통과한 순간 기쁨이 밀려왔다. 드디어 해낸 것이다. 다리는 약간 뻐근했지만 즐겁고 신났다. 곁에서 연속 칭찬을 해주는 남편과 함께 메달을 목에 걸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당장 다음 대회를 알아보자는 남편의 말에 버럭 화를 냈지만 내심 내년에는 두 번 정도 마라톤대회에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흔히 마라톤을 인생에 비유하고는 한다. 짧은 10킬로 대회였지만 나름 깨달음이 있었다. 처음에 힘차게 다들 한 방향으로 나아갈 때 서두르지 않고 늦출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야 힘이 부쳐서 어렵지 않았지만 힘이 넘치는 이들은 느린 페이스 조절이 쉽지 않을 것이다. 처음에 오버페이스 하면 나중에 힘들어진다는 말을 명심해야 할 듯하다.

또 지나친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기록을 경신하겠다고 욕심부리다 보면 넘어질 수도 있고 부상을 입을 수도 있다. 중간에 응급차를 타는 사람들이 실력이 없어서 그런 건 아닐 것이다. 주변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만의 페이스로 묵묵히 가는 것이 중요하다.

가는 길에 주변 경치도 구경하고 주위 사람들도 살펴보면서 가면 될 일이다. 누군가는 조금 빨리 가고 누군가는 조금 늦게 가겠지만 기록이 좋은 게 무슨 소용이랴. 주위에 자랑하는 것 빼고는 써먹을 일도 딱히 없다. 가는 길에 내가 느끼는 즐거움과 행복이 더 중요한 것이다.

.

어차피 골인 지점은 같은 곳이고 누군가는 빨리 가고, 누군가는 더디 가는 것이다. 달리는 과정 그 자체를 즐기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함께 하는 사람의 중요성을 소중하게 느꼈다. 내 옆에서 달려주고, 뒤에서 지켜주고, 앞에서 사진을 찍어주면서 나와 함께하는 소중한 사람이 있어서 내가 더 잘 달릴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인생의 동반자가 함께할 때 나의 인생길이 더욱 아름답고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 가을날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준 소중한 경험이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이름의 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