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을 들여다보는 시간

by 작은영웅

내 몸을 들여다보는 것은 두렵다. 이 년에 한 번씩 건강검진을 할 때마다 극도의 불안감에 시달리는 것은 누구나 겪는 일이겠지만 나이가 들수록 이 시간을 버티기가 쉽지 않다. 전에 한 번 큰 병을 겪어본지라 그 걱정은 더욱 크다. 병이라는 것이 예고 없이 불쑥 찾아온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무서운 병들이 나만은 비켜가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원인이야 있겠지만 때로는 운도 작용한다는 것을 알기에 제발 나는 운이 좋기를 기도한다.

치매에 걸린 노인한테 의사가 했다는 말. ‘치매에 걸리는 것은 운이 좋다는 얘기예요. 암이랑 뇌졸중이앙 심장질환과 같은 병에 걸려 죽지 않고 오래 건강하게 살았다는 증거이니까요.’ 했다는 말이 실감 나는 순간이다.

어쨌든 나는 치매에 걸릴 나이까지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고 싶다. 하지만 늘 자신은 없다. 그러다 보니, 매번 치르는 건강검진에서 불안에 떠는 게 아닐까.


특히 올해는 대장내시경을 실시해야 되는 해이다. 대장내시경은 검진 전부터 절차가 많아서 스트레스가 더했다. 일주일쯤 음식을 조심하고, 3일 전부터는 두부와 우유만 먹다 보니, 살이 2킬로나 빠지게 되었다. 세상 살면서 먹는 즐거움이 정말 크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는 날들이었다.

그러고 나서 드디어 검진의 날. 위내시경과 대장내시경을 수면으로 마치고 의사 앞에 앉았을 때 뜻밖의 말을 들었다. 가장 우려했던 대장내시경은 용종 하나도 없이 깨끗하다는 말을 들었으나 위내시경에서 약간의 이상이 보여서 조직검사를 한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들었던 순간은 뜻밖의 상황에 경황이 없어서 의사한테 별 질문도 못하고 마무리했다.


그런데 집에 와서 생각해 보니 새록새록 걱정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조직검사라는 말이 주는 무게감이 점점 무섭게 다가왔다. 폭풍 검색을 하다 보니 걱정이 더욱 증폭되었다. 듣기에도 끔찍한 암이라는 단어도 많이 읽게 되었다. 혹을 떼려고 하다 오히려 더 혹을 붙인 꼴이 되었다.

위는 조금만 이상한 부위가 있어서 조직검사를 한다는 얘기도 많았으나 이 말이 나를 안심시켜주지는 못했다. 그래서 검진이 끝나고 일주일 동안 점점 걱정이 늘어났다. 주위에서 요즘 힘들어 보인다는 말까지 들었다. 늘 밝게 지내던 내가 일어나지도 않은 온갖 상황을 상상하면서 어둡게 지냈기 때문이다.


그러다 드디어 우편물이 왔다. 떨리는 손으로 봉투를 개봉하고 한 장 한 장 읽어 나간다. 내가 염려했던 조직검사의 결과는 위염이었다. 너무 다행이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체 내용을 훑어보니 대부분 정상이다. 남편이 고전을 면치 못하는 혈당 수치도 나는 지극히 정상적이다. 우수한 성적표를 받은 것이다. 단지 간기능 검사가 약간 수치가 높게 나왔다. 인터넷으로 알아보니 그 정도 수치는 약이나 음식으로 오를 수 있다고는 되어 있었다.

그래도 나의 음주 습관이 마음에 걸렸다. 술을 끊어야 하나 하는 생각을 잠시 했다. 하지만 쉽지 않을 것 같기 하다. 맥주 한 잔의 여유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것이니까.

어쨌든 2년 동안의 맘 편한 휴가를 받은 느낌이다. 참 좋다. 이제 좋은 것 먹고, 운동 열심히 하고 잘 살아야지 다시 한번 다짐해 본다.


집에 온 가족들에게 나의 성적표를 자랑하니 둘째 아이가 바로 '엄마는 술을 줄여야 할 듯'이라고 말한다. 가슴이 뜨끔하다. 남편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더 가슴이 뜨끔하다. 일단 집에 사놓은 맥주만 마시고 그만 사야지 다시 다짐해 본다.

맥주를 대체할만한 것은 없을까 정말 고민스럽다. 남편도 아이들도 술을 마시지 않는데 왜 나만 이렇게 맥주를 좋아하는지. 다시 한번 도전해 봐야겠다. 금주를 목표로.


친구 남편은 건강 검진 한 번 하고 다시는 안 한다고 했다고 한다. 아픈지 모르고 편안하게 살았는데 병을 발견하게 되니 정신적으로 무너져서 오히려 빨리 죽게 된다고. 모르는 게 약이라고 했다나.

어쩌면 맞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주위에 건강검진 한번 안 하고 잘 살아가는 친구들도 있다. 아무 생각 없이 아무 걱정 없이 살다가 어느 날 자는 듯이 죽는 삶이 우리가 모두 꿈꾸는 삶이니까.

미리 검진하고 미리 걱정하고 하고 싶은 것 계속 못하면서 오래오래 살다가 죽는 삶이 과연 행복할까 싶지만 발견이 빠르면 병을 고칠 수도 있는 것을 발견이 늦어서 죽는다는 말을 들으면 건강검진을 무시할 수는 없다.

정답은 없겠지만 2년에 한 번씩 몸을 들여다보고 성적표를 받으면서 살아가야 하는 게 현대인들의 운명이라는 생각도 든다.

유전자 검사를 통해 미래를 예측하는 시대에 현재의 모습을 진단하는 것은 필수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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