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이 단어에 대해서 나는 할 말이 많은 사람이다. 최근에 대한민국에 마라톤 열풍이 불기 전부터 마라톤이라는 단어를 하루에 한 번 이상 들으면서 살아왔으니까.
그렇게나 나를 질리게 했던 사람이 바로 남편이다. 남편은 20년 전에 마라톤을 시작했다. 그러고 나서 그 특유의 끈기로 지금껏 열심히 달리고 있다. 달리기만 했던가 입만 열면 마라톤 홍보를 하면서 살아왔으니 난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마라톤이라면 치를 떨면서 싫어했다.
마라톤을 내가 싫어하게 된 배경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첫 번째는 주말이 없다는 것이다. 남편은 업무의 특성상 토요일 근무도 격주로 하고 있는 상황이라 주말에 시간적 여유가 없는 편이었는데 일요일은 매주 마라톤 대회에 출전하니 사실 우리 부부에게 주말이 없었다.
주말이면 집에 있는 것을 무척 답답해하고 어디든 놀러 나가야 인생을 제대로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 일요일마다 집을 비우는 남편은 최악이었다.
매번 징징대는 나를 달래느라 남편은 마라톤 대회장에 같이 가자고 했지만 몇 번 따라가 보고 그만두었다.
새벽에 나가는 남편을 따라 가고 일요일까지 일찍 일어나는 것이 힘들었고, 아이들을 내팽개치고 나갈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아이들이 대학에 진학한 이후로는 지방에서 대회가 있을 때는 일박이일로 따라나선 적도 있었지만 운전을 못해서 기동력이 없는 내가 낯선 도시에서 걸어 다니며 하루 종일 혼자 놀아야 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었다.
남편은 20년 동안 계속 진화했다. 체력이나 운동력이 좋은 사람은 아니라서 서브쓰리 같은 대단한 것은 못했지만 자기 페이스로 꾸준히 달리는 능력은 뛰어나서 페이스메이커로 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면서 정말이지 일요일은 아예 없는 사람 취급을 해야 했다. 그러니 아예 같이 마라톤을 뛰거나 나 혼자 일요일에 할 일을 찾지 않으면 불만을 해소할 방법은 없었다. 달리기라면 치를 떨 정도로 싫어하는 내가 마라톤을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었고 운전을 못하는 내가 활동적으로 일요일을 즐기기도 힘든 노릇이었다.
주말에는 친구들도 바빠서 함께 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나의 주말은 늘 외롭고 짜증 나는 연속이었다.
이렇게 해답 없는 불만이 쌓여갈 즈음 마라톤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예능 프로에서 연예인들이 달리기를 하는 모습이 많이 소개되고 의사들도 달리기의 효능에 대해서 역설하기 시작했다.
슬로리딩이라는 말이 확산되면서 나이 든 사람도 달리기가 몸에 이롭다는 얘기를 심심치 않게 하게 되었다. 남편이 마라톤을 하던 초기만 해도 마라톤을 한다고 하면 가족이 먼저 말리면서 달리기를 많이 하면 수명이 단축된다. 무릎이 상한다. 건강에 해롭다 등등 험한 말을 하면서 말리곤 했다.
그러던 사람들이 입을 다물고 어떤 식으로 달리는 게 좋냐고 물어볼 지경에 이르렀다.
환경이 바뀌자 남편의 위상도 바뀌었다. 남편이 마라톤 페이스메이커라는 것을 아는 친구들은 나를 부러워하기까지 했다. 일이 이쯤 되자 내 생각도 바뀌기 시작했다.
나도 한번 뛰어볼까 이런 생각이 든 것이다. 20년 동안 한 번도 안 해본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헬스장에서 걷기만 줄기차게 하던 내가, 뛰면 입에서 피맛이 나던 내가, 대학 입시 체력장에서도 우리 학교에서 유일하게 만점을 받지 못했던 내가 달리기를 해볼까 하는 생각을 하다니 실로 대단한 변화였다.
남편에게 말하기는 민망해서 몰래 헬스장에서 1분을 뛰어보았다. 힘들었지만 매일 조금씩 시간을 늘려가니 어느 순간 한 시간을 달리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리고선 남편에게 마라톤 대회에 나가고 싶다고 얘기했다.
5킬로 운운하는 나에게 남편은 무조건 10킬로를 나가라고 조언했다. 사실 전에 5킬로 마라톤은 출전해 본 적이 있었다. 남편이 걸어도 된다고 해서 동생들하고 나간 대회였다. 5킬로 마라톤은 정말로 걷는 사람이 뛰는 사람보다 많은 대회였다.
출발 신호가 울려도 연예인 사진 찍느라 움직이지도 않았고, 유모차를 끄는 사람, 아이들 손잡고 걷는 가족들로 가득 차서 그 사이에 뛰는 게 쉽지도 않을뿐더러 뛰는 사람이 이상해 보이는 그런 대회였다. 그런 기억이 남아있어서 나도 10킬로를 도전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막상 등록을 하고 대회 날짜가 조금씩 다가오자 초초해지기 시작했다. 아마도 못 뛸 것 같다. 포기해야겠다 중얼거리는 나에게 남편은 자기가 하라는 대로 하면 된다고 안심시켜 주었다.
그러면서 매일 3킬로를 뛰라고 했다. 그렇게 한 달을 하고 나면 다음 방법을 알려 준다고. 남편 말대로 한 달간 매일 3킬로를 뛰었다. 속도는 상관없다 했으므로 걷는 속도로 뛰었다. 뛰는 시늉만 한 거였다.
회식을 한 날도, 야근을 한 날도, 무척 피곤한 날도 빠짐없이 한 달을 뛰고 나니 이제 3킬로는 식은 죽 먹기로 뛰게 되었다.
그러자 그다음 달부터는 격일로 5킬로씩 뛰라고 했다. 달리기 근육을 만드는 과정이라고 했다. 5킬로도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점점 힘들지 않게 변했다. 나의 변화에 나도 놀랄 지경이다.
어찌 됐든 20년에 걸친 남편의 조언을 무시하던 내가 매스컴이나 인터넷의 영향으로 뛰기를 시작한 것이다. 이런 나까지 러닝을 하게 되었으니 앞으로 대한민국은 달리기 열풍으로 가득 찰 것 같다.
요즘에는 공원에 가도 걷는 사람보다 뛰는 사람이 많을 정도이고 서점에 가도 달리기에 관련된 책이 곳곳에서 눈에 띈다. 전에는 남편이 마라톤 한다고 하면 우려의 눈빛을 주던 사람들의 눈빛이 선망의 눈빛으로 바뀐 것만 보다도 변화를 실감할 수 있다.
나의 첫 10킬로 마라톤이 얼마 남지 않았다. 어제는 힘들긴 했지만 10킬로를 쉬지 않고 뛰었다. 완주를 위한 나의 노력이 거듭될수록 단단해지는 몸을 느낀다. 뱃살도 들어가고 몸무게가 준 것은 덤이다.
늘 무겁던 발걸음도 가벼워졌을뿐더러 매사에 도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이것저것 고려하면서 주저앉고 그만두던 나의 모습은 일단 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바뀌었다.
단지 달리기만 시작했을 뿐인데 나의 삶 자체가 리모델링된 느낌이다. 마라톤 완주를 마치고 나면 나에게 멋진 선물을 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