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부부의 끝, 새로운 시작

전생에 나라를 구해야 할 수 있다고?

by 샤인포레스트


우리 남편은 전생에 나라를 구한 게 확실하다.

첫 아이를 낳고 60일 만에 짐을 싸서 친정으로 가게 되었으니..



아이가 돌 정도 되면 아이도 사람처럼 앉아서 밥을 먹고 말도 하고

홀몸으로 자유로웠을 때처럼 인간답게 다시 살 수 있을 줄로만 알았다.

어라?

너무 택도 없는 소리 었구나를 깨달았다. 대책 없는 해피엔딩 동화와는 달리 육아의 세계는

녹록지 않은 장기레이스임을 나는 너무나 몰랐다.

사람 관계에 있어 큰 문제없이 잘 살아온 나는 육아도 편안하게, 우아한 척

잘 해낼 수 있을 거라 자만했다.


와장창~~~!

결과는 처참했다.

나 혼자서는 할 수 있는 게 없었고, 멘털도 오락가락 제멋대로 나댔다.

내가 이것밖에 안 되는 사람이라는 걸 인정하기까지가 참 오래 걸렸다.

인정하고 나니 오히려 편했다.


7년이었다. 주말부부로 산지...

남편의 큰 부재는 친정아버지와 엄마가 대신 채워주셨다.

집에 계셨던 아버지와 함께 첫 아이를 키우며 어린 시절 내 마음의 상처를 들여다보았고,

아버지 또한 당신의 젊은 시절을 회상하며 자식들에게 쏟지 못했던 깊은 애정과 관심을

첫 손주에게 쏟아부으셨다.


물론 어디까지나 주 양육자로서의 책임은 온전히 나의 몫이었기에

때로는 외롭고 슬픈 나날들도 많았다.

하지만 아이들은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의 사랑을 받으며 정말 말 그대로

무럭무럭 건강하게 자라주었다.

그리고 고대하고 고대하던 네 사람의 첫 보금자리를 제주에서 꾸리게 되었다.

우리를 포함해 우리를 아는 모든 가족과 친구들이 함께 설레어해 주었고,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쉽지 않았다.


신혼생활을 처음 시작하는 느낌이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아니, 백까지 작은 퍼즐 조각들을 하나하나 맞추어 내는 느낌.

게다가 우리는 더 이상 각각의 몸이 아니었다.

8살, 5살의 혈기왕성한 남자아이들을 키워내며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운 집에서,

새로운 직장과 변화를 온몸으로 받아내며 가정이 저절로 안정될 것이라 생각했던 것은

무지와 욕심이었을지도 모른다.


갈등은 필연이었던 것이다.


처음엔 '왜 이러지?' 였다가 '이건 아닌데?' 했다가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니야?'까지 도달했다.

심지어 제주에 잘 못 온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그저 오래 헤어졌던 우리 가족이 다시 만난다는 사실에 취해

현실적인 것들은 아예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다.


제주에 이주해 온 많은 가정들은 주로 우리와 반대의 경우가 많다.

함께 살다가 주말부부로 가정의 형태가 바뀐 집이 대부분이거나

간혹 부모의 직장 문제가 해결된 집은 가족 전체가 함께 이주해 오기도 했다.

아마 각각의 가정에서 우리와 같진 않더라도 가정 형태의 변화로 인한 문제가 분명히 있으리라 생각한다.

혹시 제주 이주를 고민하며 이 글을 읽는 분이 계시다면 새로운 가정 형태에 대해

충분히 이야기 나누고 오시면 좋겠다.



함께 산다는 것

같이 잠들고 눈뜨고 밥을 먹고 생활한다는 것은 너무나 일상적이지만

그래서 더 소중하고 가치 있는 일이다.



그 대단하고도 일상적인 일들을 우리는 제주에서 다시 시작하고 있다.

함께 자고 일어날 시간을 정하고, 아침과 저녁 메뉴를 정하는 일.

집안일의 역할을 분담하고 소소한 물건의 위치를 세팅하는 일.

보통의 가정에서는 이미 일상이 되어 인식하지 못할 일들을 우리는 0에서부터 다시

차근차근 맞춰가고 있는 중이다.


결혼 10년 차.

콩깍지가 벗겨진 서로의 속살을 마주하며 진짜 결혼생활을 다시 시작한다.

아무래도 남편은 전생에 나라를 구하려다 말았나 보다.

혼자 누리던 통제 가능한 삶에서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통제불가능의 좌충우돌 제주살이를

시작한 걸 보니.

이젠 다시 만난 아이들과 헤어져 살아라고 해도 본인이 그렇게는 못 살 거 같다고 하니,

아직도 나는 그를 다 알지 못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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