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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이 거울에 보이는 것보다 더 가까이 있음

마지막 날, 깨어있음, 월동준비

by Joung park

운전을 하는 사람들은 다 아는 것이지만 우리가 타고 다니는 자동차에는 운전할 때 뒤를 볼 수 있도록 '백미러', 그리고 양옆을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사이드미러'가 있다. 그리고 자동차 사이드 미러에는 '사물이 거울에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음'Object in mirror are closer than they appear'이라는 경고 문구 하나가 적혀있다. 나는 운전 경력이 45년 가까이 되었다. 하지만 맹세코 단 한 번도 왜 '사물이 거울에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음'이라는 경고문에 관습적 이상의 눈길을 가진 적이 없었다. 적어도 한 한국에 있는 지인의 사이더 미러에 얽힌 에피소드를 듣기 까지는 말이다.


어느 날 아들의 입영 날 이 아버지가 자신이 느꼈던 감정을 적나라하게 토로한 것을 들었다. 입영하는 아들을 기차역에 내려놓고 아버지가 감정에 북받쳐서 눈물을 흘리는 아들을 두고 자신은 자동차로 돌아와 운전대에서 감정을 추스르고 있었다. 더 이상의 약함을 보이는 것이 입영하는 아들에게 좋은 장면이 아니다 생각을 하고 아들의 모습을 사이드 미러로 지켜보기로 한 것이었다. 아들이 점점 더 멀어져 가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아이러니하게도 생전 처음으로 하필이면 자동차 사이더 미러에 있는 '사물이 거울에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음' 경고문을 보았던 것이다. 아들의 모습과 사이더 미러의 경고문이 절묘하게 오버랩을 한 것이다. 갑자기 아버지의 가슴에 후회와 회한이 거센 파도처럼 밀려온 것이다. 대한의 건아로서 언젠가는 국방의 의무를 다해야 하니 내 아들도 군대를 갈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은 했었지만 이렇게 그날이 빨리 올 줄은 몰랐던 것이다. 이렇게 갑자기 입영의 날이 찾아올 줄 알았더라면 아들과 갈등과 불화로 시간을 보내지는 않았을 턴 데라는 회한 앞에서 아버지가 어린아이처럼 통곡을 한 것이다.


아들과 헤어지면서 자동차 미러의 경고문 '사물이 거울에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음' 에 몰입된 자신을 보면서 그 아버지는 평생에 한 번도 하지 않았던 '객기'를 부린 것이다. 평생 처음으로 아들이 입영 전 그토록 좋아하는 노래 (김광석의 이등병의 편지)를 한번 듣기로 작정을 한 것이다. 노래의 첫 절 가사에 아버지가 기가 막혔던 것이다. "집 떠나와 열차 타고 훈련소로 가던 날/부모님께 큰절하고 대문 밖을 나설 때/가슴 속에 무엇인가 아쉬움이 남지만/풀 한 포기 친구 얼굴 모든 것이 새롭다/이제 다시 시작이다 젊은 날의 생이여."


그때서야 비로소 아버지는 아들이 그 노래를 들으면서 아버지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 어렴풋이나마 깨달았던 것이다. “아버지 모든 것은 생각보다 더 가까이 있어요, 아버지 모든 것은 그 순간마다 새로운 것임을 알아야 해요, 낯익은 것들과 작별한다고 생각하니 어느 것도 범상히 보아 넘길 수 없습니다, 아버지, 쳇바퀴처럼 살아가는 우리네 삶의 일상은 계속될 겁니다. 크게 달라질 것은 없습니다. 마음을 다잡고 새 삶을 다짐해 본다 해도 결국 밥 먹고, 일하고, 공부하고, 사귀고, 싸우면서 이리저리 부대끼는 일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아버지! 그렇기에 잘 산다는 것은 매 순간 일상에서 ‘사물이 거울에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음'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날 아들을 배웅하고 오면서 그 아버지는 자동차 사이더 미러에서 아들, 아내, 친구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리면서 오늘이 마치 마지막 날처럼 그렇게 살아갈 것이라 맹세를 한 것이다. 아들이 군대를 가는 날이 아버지에게는 새날이 된 것이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가장 큰 인생의 고귀한 선물을 주고 간 날이기도 했다. 그렇더라. 살다 보니 실은 어디 자동차 사이드 미러뿐이겠는가. 세상의 많은 일들이, 사물들이 멀리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덧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가까이 다가와 코앞에서 바짝 얼굴을 맞대고 있는 경험을 한 일이 어디 한두 번이었는가. 내가 제출해야 할 보고서의 마감날은 언제나 생각보다 더 가까이 있었다. 내가 갚아야 할 학자금 대출 원리금 데드라인 날짜는 항상 생각보다 더 훨씬 가까이 있었다.


어디 그뿐인가. 생각하고는 무심코 저지르는 우리들의 잘못. 이제는 모두가 잊었겠지 했지만 생각보다 훨씬 더 그 잘못을 우리는 아주 가까운 곳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확인을 하곤 스스로 소스라치게 놀란다. 마치 자동차 사이드 미러의 경구를 무시하다 큰코다친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돌아보니 하루 ‘24’시간이 주어졌지만 귀한 일 또 꼭 해야 할 일을 다 하기에는 나에게 허용된 시간은 너무 짧았고 또 그렇다고 적당히 살아가기에는 하루가 너무나 길었다. 지금 와서 돌아보니 인생에는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고 훨씬 더 가까이 있었던 것들 생각보다 더 커다랬고 무엇보다 중요했던 것들의 투성이였음을 고백한다.


여러분 그것을 아시나요? 영원할 것만 같았던 이 땅의 삶의 마무리할 시간도 그렇게 생각보다 훨씬 더 가깝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긴가민가하시다면 혹시나 지금 당장 한 5분 정도만 숨을 쉬지 않고 있어보세요. 누구나가 다 곧바로 ‘아하! 이렇게 쉽게 너무나 간단하게 끝이 있을 수가 있구나’ 느낄 것입니다. 우리의 일상이 아무리 바쁘다 할지라도 주님께서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신 말씀을 귀담을 필요가 있습니다. 마치 자동차 운전대에서 '사물이 거울에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습니다'라는 경고문을 대하듯이 말입니다. 인터넷에서 많이 회자되는 유머인데 의미심장하기만 합니다. 지옥에 가면 여기저기서 '껄껄껄'소리가 많이 들린답니다.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살았을 때 잘할 껄!" "이렇게 나의 마지막이 빨리 올 줄 알았더라면 좀 더 다르게 살껄" "이렇게 심판의 날이 빨리 올 줄 알았더라면 살아있을 때 좀더 잘 해 줄 껄!"


그런데 이걸 어떡하나요? 미물인 짐승들은 겨울이 가까이 다가옴을 직감하는 것 같습니다. 겨울이 되면 아주 따뜻한 곳으로 날아가 버리는 철새가 있습니다. 또 어떤 짐승들은 겨울이 오기 전 털갈이를 합니다. 그렇다면 만물의 영장인 사람은 어느 쪽입니까? '사물이 거울에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습니다'라는 경고문을 운전대에서 내리면서 잊고 사는 것은 아닌지요? 만물의 영장인 사람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겨울을 잘 지내려고 월동준비를 하고, 인생의 겨울을 위해서는 적금도 들고 저축도 하면서 어찌하여 우리들 신앙의 겨울을 위한 준비는 하지 않는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우리는 다 '어리석은 부자'로 살아가고 말지요.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나님은 이 어리석은 부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 네 생명을 거두어가야겠구나. 네가 가진 그 많은 것을 누가 가지게 될 것 같으냐?”


제2차 세계 대전 기간 나치 독일의 잔인한 홀로코스트가 횡행하던 시절 강제수용소로 끌려간 네덜란드 유대인 소녀 '안네 프랑크의 일기'는 전쟁의 비참함을 후대에 일깨워 준 문화유산으로 전 세계인의 애독서가 되었다. 그 일기에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우리의 세계가 어둠의 세력에 점점 포위되고 있는 것을 느낀다. 공포와 죽음이 우리 앞에 다가오고 있는 것을 느낀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이 공포와 학살과 죽음과 전쟁의 건너편에서 우리를 향해 가장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는 하나님 나라의 빛을 바라본다. 우리에겐 음침한 사망의 골짜기 속에서도 이 하나님나라의 도래하심이 바로 평화의 원인이다. 우리는 이 희망 때문에 이 작은 공간에서도 우리에게 다가오는 하나님의 나라 즉 천국을 경험한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공포와 어둠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때가 되면 찾아오는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이 있었기에 그곳에서 지금도 천국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날은 '사물이 거울에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음'처럼 훨씬 더 우리 앞에 가까이 다가왔음을 기억하면서 오늘부터 깨어 하루하루를 처절하고 절실하게 살아야 합니다.


언젠가 언론에 노배우 신영균 (92) 씨가 500억 원 규모의 재산을 한국 영화 발전에 써달라며 그가 그토록 아끼던 명보극장(명보아트홀) 쾌척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요즘에 어떻게 지내고 있는가 라는 질문에 그가 '빠르게 다가오는 인생의 겨울을 맞이하면서 "이제는 하나님에게 갈 준비에만 혼혈을 기울일 때이다. 이 세상에는 별다른 욕심이 없다. 그저 마지막으로 가지고 갈 것은 40~50년 된 성경책 하나뿐이다. 자식들에게 나중에 관 속에 이 성경 책 하나만 묻어달라고 했다"라는 소식과 함께 전해진 기사였다. 가슴 훈훈해지는 노배우의 삶의 끝자락에서 남은 자들에게 몸소 실천으로 옮긴 멋진 명불허전의 한 감동의 연기였다. 도대체 아카데미 남우 주연상은 누굴 위한 것인지 항변하고 싶기만 했던 순간이었다. 하나라도 더 가지려고 벌이는 작금의 인간들의 아귀다툼과 어떻게 해서든 더 움켜쥐기 위해서 전전긍긍하는 망신살이 뻗친 인간들의 짓거리들 보면서 부끄러움을 한없이 느낀다.


세상에 대한 모든 미련을 버리고, 오로지 경건한 모습으로 주님 앞에 설 것만 생각하며, 그날을 준비하는 아름다운 신앙인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인 그에게 진정으로 고개를 숙인다. 그렇다면 그가 이렇게 살 수 있는 삶의 비결은 무엇일까? 노배우 신영균 스승은 그의 삶을 지탱한 것은 다름 아니라 어릴 적부터 기도의 어머니에게 가슴으로 배운 것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가리라.” 그리고 "우리의 삶에는 분명 끝이 있다. 단지 끝이 언제인지 모르는 인생이기에 철저히 준비하는 것이다"였다. 그는 자신의 요즘의 삶을 겨울의 문턱이라고 정의를 한다. "지금 겨울의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습니다. 곧 흰 눈이 내리고 머지않아 긴 동면으로 들어가겠지요. 그러니 준비를 해야 합니다."


독자들에게 '성찰할 수 있는 질문 하나 해 주세요'라는 부탁에 그가 한 말이다. "글쎄, 요즘 많이 하는 생각입니다. 이런 질문을 드리고 싶군요. “세상을 떠나는 그날, 당신의 관 속에 무엇을 넣고 싶습니까?” 망설이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잊지 않는 노배우의 간절함이 뼈 속을 파고들었다. 언젠가 눈을 감으면 자신의 관 속에 낡은 50년 손때 묻은 성경 책만 넣어달라고 자식들에게 유언을 했다고 한다. 그가 진정으로 부자였구나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갑자기 나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사람이 오래오래 장수하기를 간절히 기도하기 시작을 한다.


이제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노배우 신영균 스승은 어떻게 그 나이에도 청춘처럼 저토록 기쁘게, 즐겁게, 그리고 여유롭게 삶의 향기를 내뿜으면서 늙어가고 있을까? 문득 청춘(사무엘 울만)은 이 노배우를 위해서 쓴 것은 아닐까 싶어진다. "청춘이란 인생의 어떤 한 시기가 아니라 마음가짐을 뜻하나니 장밋빛 볼, 붉은 입술, 부드러운 무릎이 아니라 풍부한 상상력과 왕성한 감수성과 의지력 그리고 인생의 깊은 샘에서 솟아나는 신선함을 뜻하나니......" 불현듯 평생을 '청춘'으로 산 사무엘 울만과 신영균의 삶에 공통분모가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바로 두 위인들의 가슴에 새겼던 '사물이 거울에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습니다'라는 경고문의 공통분모 말이다.


오늘따라 왠지 운전대에 앉으면 달라진 나 자신을 본다. 또 오늘따라 자동차에서 내리면서 세상을 새로운 안경으로 내 삶을 바라보는 느낌을 받는다. 왜일까? 아마도 사이드 미러 경고판 '사물이 거울에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습니다'라는 내 인생의 운전대에서 꼭 지참해야 할 세상에서 가장 좋은 내비게이션을 선물로 받았기 때문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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