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 858편, 그 아픈 이야기]
1987년 11월 29일 아침, 바그다드를 출발해 서울로 향하던 대한항공 858편이 실종되었다는 소식을 함께 근무하던 영국인 직원을 통해 듣게 되었다.
그 영국인 직원은 단파라디오를 가지고 있었는데 출근을 하자마자 우리에게 대한항공 여객기가 실종되었다는 내용이 BBC News에서 나오고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믿을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대한항공 858편은 이라크에 나와 있는 우리 모두가 한국에 갈 때 이용하는 항공편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단파라디오를 크게 틀어 놓고 함께 들었는데 정말로 그런 내용이 전해지고 있었다.
우리 현장에서도 그 항공편에 탑승한 직원과 근로자들이 있었기 때문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는 그때는 정말 답답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고 전화와 텔렉스를 통해 본사와 교신을 해본 결과 대한항공 858기가 안다만 해역 상공에서 실종이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대한항공 858기의 추락이 확인되고 난 후 현장은 비통함에 싸여 있었다.
우리 현장뿐만이 아니었고 이라크 내 현장들과 아울러 타 회사의 한국인들과 승무원들 포함 탑승자 115명 전원이 사망하였다는 소식에 모두들 어쩔 줄 모르고 있었다. 현장은 비상체제를 가동하기 시작했고 서울 본사와의 통화와 지시를 받아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일은 손에 잡히지 않고 모두들 애통함에 빠져 있었지만 공사기간에 맞추어 공사를 마무리해야 하는 발주처와의 계약 내용 때문에 최소한의 인원으로 현장은 돌아가고 있었고 비정상적으로 월권행위를 하던 이라크 발주처 직원들 마저도 현장에서의 마찰을 최소화하며 애도를 표하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그 사건이 1988년 서울 올림픽을 방해하기 위한 북한공작원 김현희와 김승일의 소행으로 밝혀지며 사태는 마무리가 되어갔지만 열사의 중동 현장에서 함께 일하던 동료들을 잃은 우리들은 충격을 회복하기까지 정말로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하루 전까지만 해도 같이 근무했던 직원과 근로자 분들과의 이별이 주는 충격이 얼마나 컸던지 말로는 설명을 할 수가 없다.
그런 와중에도 우리 현장 전기부서에서 근무하던 두 명의 직원이 업무가 바빠서 갑자기 다음번 항공편으로 일정을 변경한 것은 천만다행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일정을 변경한 사실을 집에서는 모르고 있어서 (당시에 한국과의 통화는 인근 도시로 나가 현지 우체국에서나 가능했었다.) 한국에 있는 가족들이 혼절하고 눈물바다가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나중에 직접 통화해서 살아있다는 사실을 알고 서울에서는 또 한 번 눈물바다가 되었다고 한다.
당시의 많은 뒷 이야기들을 모두 말씀드릴 수는 없다.
그저 그때 당시의 상황을 객관적인 시선으로 전달할 수밖에 없는 것은 마음 깊은 곳에 남아 있는 개인적인 미안함과 아울러 아직도 큰 아픔을 가지고 계실 분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 글을 올리기 전 많은 망설임이 있었지만 아픈 기억도 기억의 일부분이라는 생각으로 글을 쓰게 되었다. 하지만 글을 쓰는 내내 마음이 쓰리도록 아팠음을 말씀드린다.
이 기회를 빌려 당시 유명을 달리하신 모든 분들께 다시 한번 조의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