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밤이었는데, 돌아오는 길이 가볍지 않았다

잘 놀고 돌아오는 길에, 마음이 정리되지 않았다

연휴 전날,
간만에 사람 냄새 나는 시간을 보냈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마주 앉아
맥주를 마시고,

회사와 상사 욕을 하고,
이미 여러 번 했던 이야기들을
또다시 반복했다.


옛 지인들을 만나면

항상 같은 이야기와 결론이지만

이런 시간도

즐겁고 편안하다.


딱 그 정도면 충분히 즐거운 밤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술기운은 적당히 가셨는데
마음은 묘하게 정리가 되지 않았다.


크게 아쉬운 일은 없었다.
재미있었고, 웃었고,
괜히 나 자신이 초라해질 만한 일도 없었다.


그런데도
발걸음이 가벼워지지 않았다.


이런 순간이 종종 있다.
하루를 나름 잘 보냈는데
마무리가 개운하지 않은 날.


그럴 때 나는
괜히 하루를 되짚어 본다.


뭘 잘못했는지,
어디서부터 어긋난 건지.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런 날들의 공통점은
사건이 아니라
기준이 흐려진 상태라는 데 있었다.




나는 평소에도
즉흥적인 선택을 싫어하는 편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생각을 정리해 두지 않으면
결정은 늘 즉흥적으로 흘러간다.


지출도 그렇고,
사람 관계도 그렇고,
앞으로의 계획도 마찬가지다.


그때그때의 기분과 상황에 따라
판단하다 보면
나중에 꼭 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


‘이게 맞았을까.’


이 질문을 여러 번 반복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질문 자체가 피곤해졌다.





그래서 나는
결정을 잘 내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같은 고민을 다시 하지 않기 위해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머릿속에서만 맴돌던 것들을
문장으로 옮겨 적어보았다.


지금의 선택이
오늘의 편안함을 위한 건지,
앞으로의 나를 위한 건지.


이 정도의 지출이
내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지,
아니면 잠깐의 해소에 그치는지.

선택을
다음 달의 내가 봤을 때도
납득할 수 있을지.


이런 질문들은
처음엔 번거로웠지만
점점 나를 덜 흔들리게 만들었다.


생각보다 많은 순간에
나는 선택이 어려운 게 아니라
정리되지 않은 상태였다는 걸
그제야 알게 됐다.


기준이 없으면
사소한 일에도 마음이 동요한다.
반대로 기준이 생기면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스스로를 덜 탓하게 된다.






요즘의 나도
여전히 완벽하게 단단한 사람은 아니다.


다만
아무 생각 없이 흘러가던 선택들을
하나씩 붙잡아

삶을 더 심플하고 단단하게 만들어 보는 중이다.


잘 살고 싶은 마음보다는
내 선택에
내가 책임질 수 있는 상태로
살고 싶다는 쪽에 가깝다.





다음에는

이렇게 정리해 둔 기준들을
거창한 것은 아니지만

함께 나누어 보려고 한다.


묘약같은,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꽤 도움이 되었던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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