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바르셀로나 여행: 산파우 병원

병원이 아닌 예술, 치유가 아닌 아름다움

by 꿈 공작소

바르셀로나 여행 계획을 세울 때 FC Barcelona만큼 속을 썩이던 장소가 있다. Sercotel Rosellón라고 불리는 호텔의 루프탑 카페인데 발코니에 앉아서 음료나 음식을 즐기며 유명한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을 볼 수 있는 명소다. 당연히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많은 장소이고 테이블을 잡기 위해 경쟁도 심한 곳이라 예약이 필수인 곳이다. 하지만 예약은 3주 전부터 받기에 5월 초까지 기다려야 했고, 또 대체 몇 시에 예약을 해야 바르셀로나 최고의 여행지인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을 충분히 돌아보고 식사를 할 수 있는지 감이 잡히지 않는 문제가 있었다. 파워 J에게 이런 상황은 거의 재앙에 가깝다. 그런데 5월 초 예약이 가능한 첫날 Sercotel Rosellón 예약 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여름 성수기 준비를 위해 발코니를 수리한다고 5월 내내 문을 닫는다는 공지가 떠있었다. 비보를 전하는 공지가 이렇게 반가운 소식으로 들릴 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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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을 충분히 돌아본 후, 후문으로 빠져나와 성당이 보이는 아무 식당이나 문을 열고 들어갔다. 노천카페도 보유한 식당의 이름은 Casa Angela.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가장 처절한 Passion 파사드 (수난의 파사드)가 보인다는 것이 흠이기는 하지만 분위기가 좋았다. Pan de Coca, Patatas Bravas, Calamares a la Andaluza 와 Gambas XL al Ajillo를 시켰는데 주문을 받는 아주머니가 잘못 알아들어 오징어 접시 2개를 내왔다. 다시 만들어 달라고 할 수도 있었지만 그냥 참았다. 음식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맛있어서 아주 기분 좋은 오후를 즐기고 있는데 한 가지 문제가 발생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이 인기가 많은 만큼 관광객도 많았고, 또 그만큼 구걸하는 노숙자도 많았다. 거의 10분 간격으로 구걸을 하는 사람이 테이블로 다가왔다. 하지만 요즘은 현금을 가지고 다니지 않는 시대라 그들에게 줄 것이 없어 살짝 미안하려 했는데 한 노숙자는 돈이 없으면 먹을 것을 달라고 했다. 우리는 다 먹었으니 아무것이나 가져가라고 했더니 그는 빵을 선택해 가져갔다. 토마토에 올리브유로 간을 한 이 빵은 진정한 스페인 국민 음식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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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 후 우리는 버스를 타고 Hospital de la Santa Creu i Sant Pau를 찾았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병원이라는 별명이 붙어있는 곳인데 바르셀로나 유명한 건물 중 가우디가 짓지 않은 몇 안 되는 건물 중 하나다. 바르셀로나 여행을 준비하며 가우디의 일생에 관한 많을 글들을 읽었는데 그가 사망한 병원이 산타 크레우 (Santa Creu)라는 것을 알고 우리가 찾아가는 바로 이 병원인 줄 알고 잠시 흥분을 했었다. 하지만 가우디가 사망한 병원은 다른 지역에 위치한 병원이었고, 가우디 사망 후 한 달 후 문을 닫았다고 한다. 가우디의 저주였을까? 어쨌든 우리가 찾은 병원은 가우디와는 상관없이 새로 지어진 병원으로 카탈루냐 모더니즘의 아버지라 불리는 도메네트 이 몬타네르 (Lluís Domènech i Montaner)가 지은 건물이다. 건축, 예술 그리고 자연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곳이라 평가를 받고 있으며 당연히 1997년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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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하나하나가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병원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나 싶을 정도였다. 특히 장식들, 그중 타일들이 압권이었고, 건물 내부의 스테인드글라스도 병원이라기보다는 영주들이 살던 궁전이나 유서 깊은 성당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아침부터 시차 때문에 컨디션 난조로 고생을 하던 짱구언니가 주저앉고 말았다. 욕심 같아서는 계속해서 달고 다니고 싶었지만 더 이상은 병원으로 사용되지 않아 의사도 없는 병원 건물에서 짱구언니를 잃을 수는 없었다. 건물들이 좌우 대칭으로 도열해 있는 아름다운 정원에 볕이 잘 드는 곳에 서있는 나무 그늘이 있는 벤치에 그녀를 남겨 두고 혼자 길을 떠났다. 아름답기만 하던 병원이 갑자기 을씨년스럽게 느껴지며 외롭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항상 인생은 혼자 가는 길이라는 것을 여행 중 또 한 번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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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외로운 마음을 달래며 27개의 파빌리온 중 복원이 된 12개의 파빌리온을 하나씩 돌아보고 있는데 동양 처자 셋이 나에게 다가왔다. 그중 중국 억양을 심하게 쓰는 처자가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질문을 한다.


“Would you help me to take pictures?”


응? 이건 무슨 말이야? 내가 사진을 찍게 도와달라고? 뭐를 어떻게 도와줄까? 반사판을 들어줄까? 하나 둘 셋을 외쳐줄까? 헛웃음이 나왔다. 어디서 영어를 배웠는지 몰라도 그냥 사진 좀 찍어줄래?(Can you take our photos for us?) 같은 쉬운 문장을 놔두고 굳이 어렵고 우아하게 말을 하려고 이상하게 말을 하네. 물론 무엇을 원하는지 당연히 알아 들었지만 중국 처자에게는 그냥 넘어갈 수 없다.


혹시 너 너네 사진 찍어달라고 부탁하려던 거니?라고 되묻는다. 그러면서 그냥 쉽게 물어보지 같은 농담도 살짝 얹는다. 보통 같으면 그냥 사진만 찍어주고 돌아섰겠지만 여행 중에는 이런 농담을 할 여유도 있다. 내가 아닌 모습으로 살아도 아무 문제가 없기에 나는 여행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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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에서 여행을 시작했을 때는 동행이 꽤 많았는데, 홀로 병원의 지하 통로를 걷다가 문득 생각이 깊어졌다. 12개의 파빌리온은 지하 통로를 통해 연결이 되어 있었는데 지하 통로는 조용하고 음침했다. 당시 산파우 병원의 의술은 바르셀로나 최고의 경지에 있어 물론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건졌겠지만 이 통로를 통해 얼마나 많은 코드 블루 상황의 위급환자들이 생사를 넘나들었을까 하는 생각에 살짝 소름이 돋기까지 했다.


나도 한때 생명을 구하는 의사가 되고 싶었다. 의술을 통해 사회에 필요한 공헌을 하는 사람으로 살고 싶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 길을 계속 가지 않은 것을 너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언젠가 병원에서 마주한 사람들의 얼굴은 피곤하고, 체념에 가득 차 있었다. 그들을 대하는 의료진들조차 기계적이고 무표정했다. 굉장히 이성적이고 어떤 면에서는 냉철하지만 내 마음 한가운데 있는 가장 말랑한 부분이, 그런 극한 상황 속에서 매일 조금씩 침식당했을지도 모른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아름답기만 하던 병원이 갑자기 서늘하고 을씨년스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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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구언니를 챙겨 병원의 메인 빌딩만 돌아보고 오늘의 여행을 마무리 짓기로 했다. 그곳의 내부는 다른 파빌리온들보다 더 화려했다. 천장, 기둥, 그리고 스테인드글라스마저 황홀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그랜드 스테어스는 병원에 위치한 계단의 느낌보다 오페라 극장에 있는 것 같았다. 모든 방마다 현란한 장식들이 가득해서 어느 곳 하나 허투루 볼 수 있는 곳이 없었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짱구언니의 상태가 더욱 악화되었다… 이제는 더 이상 걸을 수 없을 정도로 몸이 좋지 않다고 해서 다시 벤치를 찾아 앉혀 놓고 혼자 나머지 방들을 구경해야 했다. 병원은 그냥 아름다운 것만이 아니라 병원의 기능을 충실히 했던 실용적인 건물이라는 것이 더욱 놀라웠다. 그냥 건물만 놓고 보면 풍악이 울리고 잘 차려입은 사람들이 왈츠를 추고 있는 무도회장이 더 어울린다. 또 2층 중앙 홀 앞에 있는 창을 통해 밖을 바라보면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까지 바라다볼 수 있는 바르셀로나 최고의 여행지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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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호텔로 돌아가야 하는 시간이라 버스에 올랐다. 일단 저녁을 먹으러 가기 전까지 다른 스케줄이 없기에 긴장이 풀렸던 모양이다. 버스의 엔진에서 나오는 따뜻한 공기에 취해 핸드폰을 한 손에 잡은 채로 잠에 취해 버렸다. 얼마를 잤을까? 꿈을 꿀 정도로 깊게 잠을 자고 있었는데 어떤 젊은 처자가 옆자리에 뛰어들어 잠을 깨운다. 그때 문득 짱구언니가 해 준 바르셀로나 소매치기 괴담이 떠올랐다. 젊은 여자들이 팀으로 협력해 남자를 둘러싸고 정신을 혼미하게 한 후 물건을 훔친다는 이야기. 괜히 마음속에 ‘쫄’자를 크게 쓰고 핸드폰을 절대로 빼앗기지 않겠다는 신념을 손가락에 담아 꽉 쥐고 다시 졸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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