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다니던 교회에서 들은 말이 생각이 난다. 주일 예배를 드리고 나면 주일학교 선생님을 두고 빙 둘러앉아 다 같이 빼빼로를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곤 했었는데, 다과와 함께한 담소가 끝나면 엄마가 쥐어준 천 원 한 장을 꺼내 헌금을 했다. 그때 선생님이 했던 말이 있다.
신은 얼마를 냈는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보답하고자 하는 마음을 보신다고. 빈곤한 사람이 단 돈 천 원이라도 보답하는 그 정성을 더욱 귀히 여기신다고. 그때 나는 참 없이 살았던 터라, 이 말이 짙게 기억 남는다.
이후, 나는 사람을 대할 때면 이 말을 떠올리며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모두에게 적용되거나, 습관처럼 쉽게 떠오르진 않지만 최대한 노력하는 편이다. 특히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더더욱.
존경했던 사회 선배에게 들은 피드백이 아직도 기억에 많이 남는다. 스무 살 초반, 뒤에서 독단적인 내 운영방식에 대한 피드백이 강하게 들려왔고, 그 사실을 전해준 선배에게 나는 누가 그런 불만이 있는지 물었다. 그러자 선배는, 정말 걱정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내게, “소연아. 너는 네가 겪지 못하면 이해를 못 해. 지금 내가 누군지 알려주면 너는 그 사람들을 네 뜻대로 억누르려고 할 거 같은데? 누군지 궁금해하지 말고, 사실에 집중하고 고쳐봐.”라고 말하며, 감정적인 대처보단 이성적으로 대처하길 권했다.
최대한 날 존중하며 방향을 짚어준 선배를 따라, 누군지 궁금해하지 않고 그저 사실에 집중하고 고치려 애를 많이 썼던 것 같다. 부끄럽지만 용기 있던 고침의 시간에선, 결과보단 과정을 보려 많이 노력했다. 당장의 결과보다는, 상대의 입장과 상황을 고려하여 ‘최대한의 노력을 했는가?’에 집중하는 것. 내가 원하는 좋은 결과를 만들고 길게 가기 위해서 냉정한 사실과 단호한 말들로 당장의 결과를 만들기보단, 본질에 집중하여 당장의 손실을 감내하고 견고히, 촘촘히 단계적인 과정이 필요하단 것을 끝없이 되뇌었다. 밭이 먼저 내 것이 되어야, 원하는 농사를 지을 수 있기 때문에.
이후 사랑하는 사람을 대할 때도 본질을 보려고 노력했다. 피곤하다며 당일 약속을 취소하는 남자친구에게 서운한 마음이 들다가도, 피곤한 사람 불러다 대화하며 당장의 서운함을 달래는 것보단, 쉬게 해 주어 편안함을 느끼게 하는 것이 길게 가는 방법이지 않을까 싶어, 걱정의 말로 조용히 서운함을 이겨냈다. 자유의 욕구가 강한 나이기에, 상대의 자유를 존중하는 것이 내 사랑의 표현이었다. 그래서 나에게 며칠간 연락이 없어도, 나에겐 고작 30분 내지 1시간의 시간을 허락하지만, 다른 사람과는 충분한 시간을 보냈던 그 사람도 이해하며 침묵했다. 내가 척량한 상대의 마음에선 이도 충분하다 여겼기 때문에.
주위를 보면 서운하다 화도 내고, 징징 거리며 자신의 감정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사람들이 있다. 내겐 너무나 부럽고 이쁜 모습이다. 그만큼 서로에 대한 확신과 사랑을 여한 없이 쏟고자 하는 강한 에너지가 남아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어서.
환경 탓에 대부분의 연애를 바쁜 사람들과 잦은 비밀연애를 해왔던 나. 이들로 인해 건조해졌다며 원망도 많았는데, 비슷한 나이와 상황이 된 지금은 그들도 참 많이 힘들었었겠다 싶어 원망은 덜어낸 상태다. 그들과 같은 입장을 역으로 당해봤는데, 아무리 노력해도 채워지지 않던 상대의 서운함을 대하는 것보단, 외로운 게 내 체질에 더 맞았다. 내 입장에선, 외로우면 다른 사람을 사랑하거나 그냥 신경 끄면 해결될 문제니까. 그래서 나중에 든 생각은, 그들은 내게 원했던 건 그들의 미래에 대한 간절함을 묵묵히 응원해 줄 침묵이지 않았을까 싶고. (근데 이것도 적당히 이해해줘야 한다고 생각.)
아무튼, 이 글을 쓴 이유는 누구를 대하든 내게 50으로 다가오는 것들이 상대에겐 100을 넘는 큰 애정일 수도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었고, 표면적인 행위보단, 본질을 봐줄 수 있는 멋진 사람이 되겠다는 작은 포부를 자랑하고 싶었다. 쉬운 길은 아니기에, 응원이 필요하니까.
이렇게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스스로를 다듬어가다 보면, 나도 언젠가 서로를 이해하고 알아주는 열렬한 사랑 안에서 잠겨살 수 있지 않을까. 속에 그저 사랑밖에 없어서 모든 것이 사랑으로 보이는 충분한 삶. 어렵게 꺼낸 나의 서운함의 감정이, 상대에게 귀찮지 않고 오히려 고맙게 느껴지는 그런 관계. 그 태도에 사랑이 더욱 짙어지는 진짜 사랑.